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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전까지 공사 금지"…'강남 8학군' 아파트엔 이런 안내문

중앙일보

입력

“2022학년도 수능에 응시할 단지 내 수험생들을 위해 11월 1~18일 단지 내 공사를 중지하고자 하니 입주민들의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내 게시판과 엘리베이터 등 곳곳에 이와 같은 내용의 안내문이 붙었다. 은마아파트뿐만이 아니다. 대치동 선경아파트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 이른바 ‘강남 8학군’ 내 아파트 단지들에 최근 비슷한 내용의 공고가 붙었다. 오는 18일 치러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인테리어 등 공사를 중지해달라고 아파트 관리소 측이 입주민들에게 요청한 것이다.

3일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단지 내에 '공사를 중지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건 기자

3일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단지 내에 '공사를 중지해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건 기자

강남 8학군에 ‘공사 중지령’…“주민 민원 때문”

강남구는 교육열이 강하기로 유명하지만, 이런 조치는 이례적이라는 게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다. 대치동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매년 이맘때쯤 이사나 인테리어 공사를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서도 “올해처럼 단지 내에 공고가 붙은 건 처음 본다”고 전했다.

3일 강남구 일대에서 만난 아파트 관리인들은 “매해 수능을 앞두고 주민 민원이 많아 이런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도 대체로 공사 중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주민 양모(62)씨는 “수능 때뿐만 아니라 학교 내신 시험 기간에도 이웃에게 ‘발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하는 게 이 동네 주민들”이라며 “자녀 교육 때문에 낡은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온 부모들이 많으니 그 입장이 이해된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단지. 뉴스1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단지. 뉴스1

그러나 수험생을 위한 배려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달 중순 인테리어 공사를 앞두고 있었다는 주민 유모(56)씨는 “공사 한 달 반 전에 업체와 일정을 잡아뒀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공고가 올라와 계획이 통째로 틀어졌다”며 “공사 기간 내내 소음이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주민들 간 협의로 조율할 수 있는 문제를 관리소가 강제하는 건 과도하다”고 했다.

인근의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들도 난색을 보였다. 강남구의 한 인테리어 업자는 “소음이 심하게 나는 작업은 대부분 수능 직전을 피해서 진행한다. 일정이 갑자기 바뀌면 시공업자들과 다시 약속을 잡아야 해 공사 기간이 무기한 연장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자 장모(44)씨는 “위층에 수험생이 있는 집인 줄 모르고 공사를 시작했다가 항의 끝에 공사가 한 달 넘게 지연된 적도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수능 막바지 대비 집에서”

자난 9월 1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대전 서대전여자고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고3 모의평가가 치러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자난 9월 1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대전 서대전여자고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고3 모의평가가 치러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강남구 일대에 ‘인테리어 금지령’이 내려진 건 과거와 달리 수능을 앞두고 등교하지 않는 학생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 중인 수도권에서 고교 3학년과 초등학교 1~2학년은 전면 등교가 원칙이다. 그러나 지난 9월 교육부는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하는 학부모를 위해 가정학습 허용 일수를 40일에서 57일로 확대했다. 이에 수험생들이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고자 학교나 학원 대신 집에서 막바지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여기에 3일 신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 중 10대가 전체의 2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등교 기피 현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은마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주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수험생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안내문을 붙인 것”이라며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해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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