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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TBS, 당신들 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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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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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나 CNN은 선거철이 되면 공개적으로 ‘누구를 지지한다’고 한다. 아예 드러내놓고 성향을 밝히는 게 낫지 실질적으론 다 그렇게 지지하면서 공표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문제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강택 TBS 대표가 지난 2일 서울시 행정사무감사장에서 말했다. 개인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재명 후보 지원을 촉구한 김어준씨를 TBS 프로그램 진행자로 두는 게 적절한지를 묻는 말에 그렇게 답했다.

이 대표 주장은 사실에 부합한다. 뉴욕타임스나 CNN은 공개 지지를 한다. 지난해 말의 미국 대선 때 119개 언론사가 조 바이든 후보 지지 입장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를 천명한 언론사는 6개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이어서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의 대결 때는 124대 42로 갈렸다. 영국에서도 총선 때 언론사가 정당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한다. 더타임스·더선·데일리 텔레그래프·데일리 메일은 보수당 편에, 가디언·데일리 미러는 노동당 편에 선다. 프랑스도 비슷하다. 리베라시옹은 좌파를 밀고, 르피가로는 우파 쪽에 선다.

대표가 “CNN도 후보 공개 지지”
해외 공영방송에 그런 사례 있나
‘시민 세금으로 운영’ 잊지 말라

“언론사가 특정 후보 지지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도 않고, 오히려 숨어서 사실 조작이나 왜곡을 통해 암암리에 특정인을 도와주거나 깎아내리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정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훨씬 낫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했던 말이다. 이강택 대표의 말처럼 공표하지 않는 게 더 문제라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현재 한국에선 법이 언론사의 특정 정당·후보 지지 선언을 금지한다. 공직선거법 8조에 ‘방송·신문·통신·잡지, 기타의 간행물을 경영·관리하거나 편집·취재·집필·보도하는 자와 인터넷 언론사가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의 정견, 기타 사항에 관하여 보도·논평하는 경우와 정당의 대표자나 후보자 또는 그의 대리인을 참여하게 하여 대담을 하거나 토론을 행하고 이를 방송·보도하는 경우에는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보도·논평이 ‘공정하게 하여야’에 포함된다.

한국에서는 왜 언론사의 중립성이 법적인 강제사항에 속하고 사회적 미덕이 됐을까. ‘강력한 통치권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특징이 반영된 현실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현실 권력에 언론사들이 줄서기를 강요받을 때 ‘언론 중립’은 이에 따르지 않을 명분을 제공했다. 언론사 독립에 보호막으로, 권력 비판과 표현의 자유 보장에 방패로 작용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승자독식의 한국 대통령 권력은 언제든 미운 언론사를 존망의 기로로 몰 힘을 갖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경험했다.

이쯤에서 이강택 대표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미국 언론사의 특정 후보 공개 지지 이야기를 꺼냈다. 시의원의 질문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김어준씨가 TBS 프로그램 진행자로 적절한가”였다. 이 대표는 뉴욕타임스와 CNN을 거론하며 논점을 비틀었다. A를 묻는데 B를 답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답변 자세가 유행이다.

TBS는 올해 서울시에서 375억원의 운영자금을 받았다. 서울시의 조례 제정으로 지난해에 독립 미디어 재단이 됐으나 여전히 시민 세금에 의존한다. 따라서 사실상 공영방송이다.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민간 회사가 아니다. TBS 대표가 감사장에 불려나온 것도 그래서다. 공영방송 진행자가 공공연히 특정 대선후보를 돕자고 한다. 이 대표에게 묻는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해외 언론사 중에 이런 경우가 있는가.

서울시 설립 조례에 쓰여 있듯이 TBS가 ‘교통 및 생활 정보’에 충실한 방송이 되길 고대한다. 이 대표나 김어준씨가 정히 ‘선진적 언론’을 구현하고 싶다면 유튜브로 하면 된다. TBS는 시민의 돈에 의한 시민의 방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