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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의 시선

국민대 윽박지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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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제22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연구부정 행위를 근절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핵심"이라며 국민대 특정감사 실시 방침을 밝혔다.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제22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연구부정 행위를 근절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핵심"이라며 국민대 특정감사 실시 방침을 밝혔다. 뉴스1

"우리가 스카이(SKY)대학이었어도 이랬겠나."

교육부의 김건희 논문 검증 압박 #국민대, "시효만료" 본조사 거부 #'재조사 방식' 검증으로 방향 틀어 #"언젠가 왜 그래야했는지 말할 것"

 급기야 대학교수 친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감정이 차츰 고조되더니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번개 저녁 자리에서 김건희씨(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박사학위 논문 부정 의혹과 검증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이었다. 시작은 하소연이었다. 국민대에 적을 둔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어지간히 시달린 모양이었다. "교육부가 너무한다. 김씨 논문 본조사는 학칙상 시효가 지나 불가능하다. 그걸 하면 직권남용이고 업무방해다. 만약 김씨가 고소라도 하면 민형사상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한다. 감방 간다. 불가능한 걸 하라고 시킨다. 군부독재 때도 안 하던 짓이다."
 나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때 벌어진 장면을 떠올렸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청와대 요구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부하 직원들에게 "너 죽을래?"라고 윽박질렀다. '에이스' 공무원들은 한밤중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내부 서류를 파기했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30·40대 산자부 에이스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직장을 떠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업보지 싶다. 선배들이 느끼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대신 느껴서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민대가 김씨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한 건 지난 7월 초. 김씨가 2008년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이 표절 시비에 휩싸였다. 국민대는 예비조사를 벌인 뒤 9월 초 "논문 검증 시효(5년)가 지났다"며 본조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융단폭격이 쏟아졌다. 대학 행정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국정감사 때도 난타당했다. 국민대의 자체 결정은 2011년 개정 때 검증시효를 폐지한 교육부 훈령(연구윤리지침)을 위반한 것이라는 교육부의 질타에 부딪혔다. 누가 옳으냐고?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윤리 실무 매뉴얼(2014), 법제처 유권해석 등에 따르면 국민대가 원칙을 지키는 중이다.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교육부가 '특정감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학위수여 과정 등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국민대가 보여준 모습은 연구윤리에 대한 대국민 신뢰를 저하하는 것이므로 묵과할 수 없다"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일갈과 동시 통보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뜻 같다. "국민대니까 깔보고 저런다"는 푸념이 나왔다.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야당 대선후보 결정(5일)을 코앞에 두고 특정감사 방침이 발표되자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다. 결혼 전에 야당 후보 아내가 쓴 논문 하나 검증을 놓고 대학에 "너 죽을래?" 식으로 옥죄는 것도 격에 맞지 않는다. 교육부가 국민대에 보낸 특정감사 통지서도 특이하다고 한다. 요청자료 목록에 '김건희'가 실명으로 줄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감사는 절차와 과정, 즉 시스템을 점검하는 건데 특정인을 적시한 통지서는 처음 본다는 뒷말이 국민대 측에서 나온다.
 교육 행정도 공권력이다. 공권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심 없이 쓰여야 한다. 학자적 양심 문제인 논문 표절은 더욱 그렇다. 재작년 9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서울대 법학 석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을 때 교육부가 서울대에 논문 검증을 요구한 적이 있었나.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석·박사 논문 표절 논란 때는 더했다. 서울대가 '연구 부적절 행위'라고 결론짓자, 당시 교육부는 "연구 부정은 아니다"라며 옹위했다. 지금의 교육부 행태는 비교육적이다. 나는 김씨 논문 검증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원칙을 거스르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역사 교과서 사건을 보라. 지시를 이행한 교육부 실무자들은 정권 바뀌고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공직을 떠났다.
 유 장관은 대학이 검증 못 하면 교육부가 직접 검증하겠다며 제도 개선도 언급했다. 정치가 사법과 검찰을 덮쳐 2, 3류로 떨어졌다는 비명이 생생한데 교육마저 덮치려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국민대가 묘수를 찾고 있다. 독립기관인 연구윤리위원회의 본조사 착수는 불가하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국민의 알 권리도 충족시켜주는 방법 말이다. 예비조사에 누군가 이의를 신청하면 '재조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 모양이다. 교육부의 재검토 요청을 이의신청으로 간주, 별도의 재조사위를 꾸린다면 미봉책은 될 것이다. 다만 이게 끝은 아니다. 딸깍발이 월급쟁이 교수의 경고다. "언젠가는 왜 우리가 끝까지 본조사를 거부하다 재조사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청문회든, 수사기관이든."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