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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명의 파시오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오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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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1948년 1월 16일 서울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가 공연됐다. 일제강점기 시절 의학도였던 한 젊은이가 성악가의 꿈을 꾸며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해방 이후 의사로도 활동하며 국제오페라사를 창단하는 등 우리나라에 오페라가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오페라의 선구자 테너 이인선(1906~60) 선생이다. 그때 한국 최초의 비올레타(춘희 주역)로 생애 첫 오페라 무대에 오른 이가 훗날 한국 오페라계의 대모라 불리게 된 김자경(1917~99) 선생이다.

1962년 국립오페라단이 창단된 이래 서울시 오페라단, 대구시립 오페라단, 광주시립 오페라단이 창단됐다.  최근에는 대전에도 시립 오페라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도립이나 시립 오페라단이 전 지역으로 확산하며 안정적인 공연 활동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최근 주요 콩쿠르서 잇단 수상
한국 순수예술의 명맥 이어와
오페라 페스티벌 예산 반토막
정부 지원방식·규모 달라져야

오늘날 한국 성악계의 눈부신 성장을 이야기할 때 전국 각지에서 힘들게 오페라의 명맥을 이어온 민간 오페라단의 역할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2007년 120여 개의 민간 오페라단이 모인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가 설립됐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2010년에는 국내 최초의 오페라 페스티벌도 선보였다. 올해 12회 행사를 치른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이다. 매년 공모를 통해 전국적으로 공연단체와 작품을 선정하고, 제작환경이 녹록지 않은 민간 오페라단에 정부가 제작 예산의 일부와 대관 예산을 지원한다. 수준 높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지만 올해에는 대극장 오페라 세 편과 소극장 오페라 두 편이 성공적으로 공연됐다.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수장이자 페스티벌 조직위원장에 새롭게 선출된 조장남 이사장(호남오페라단 단장)은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권역별 개최와 후원회를 구성하여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위한 재정기반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오페라 제작환경을 고려하여 본래 취지대로 문체부에서 직접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호소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현주소는 열악한 편이다. 문체부 직접 지원 사업에서 2018년 문화예술위원회 공모사업으로 전환되며 전체 예산 규모가 50% 삭감됐다. 지난해 예산이 4억5000만원에 그쳤다. 국립 오페라단의 한 해 예산이 120억원, 대구 오페라 페스티벌의 예산이 20억원인 것에 비하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축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다. 명성과 규모에 걸맞은 예산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 오페라는 올해로 73년이란 역사를 쌓아왔다. 그리고 종합예술로서 문화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왔다. 뿌리는 서양음악이지만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도 유럽이 부러워할 만큼 많은 인재들을 배출해왔고, 최근에는 전 세계 오페라 콩쿠르도 석권하고 있다. 흔히 오페라를 뮤지컬과 많이 비교하는데,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효율성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흥행 수치나 일시적인 파급 효과로 비교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난센스다.

정부는 무엇보다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순수예술 사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 이를 요구하는 것은 예술인의 당연한 권리다. 국가가 참여하는 문화예술 정책은 당장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 예술과는 다른, 미래를 위한 투자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오페라는 음악과 언어와 시각예술이 총망라된 복합예술이다. 정부는 오페라가 창출하는 문화산업 인프라의 중요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산도 보다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그나마 반 토막 난 예산 대부분이 산하단체 대관비로 지출되고,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겨 담는 듯한 현행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오페라 발전을 위해서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전국화가 꼭 필요하다. 음악계와 중앙정부, 지자체는 이제부터라도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윈원(win-win)으로 페스티벌을 지원한다면 재정적인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페라계의 대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순수예술의 기초 또한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