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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왕’ 박정환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3일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박정환 9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일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박정환 9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정환(28) 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했다. 박정환 9단은 3일 한국기원에서 온라인 대국으로 열린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국에서 당대 일인자 신진서(21) 9단을 상대로 166수 만에 백 불계승하며 종합 전적 2승 1패로 우승컵을 안았다. 생애 처음 삼성화재배 결승에 진출한 박정환 9단은 우승컵과 함께 상금 3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결승 2국 전까지 세계 대회 연승을 이어갔던 신진서 9단은 결승 2국에서 패배한 뒤 3국까지 패하면서 2년 연속 준우승(상금 1억원)에 머물렀다.

결승 최종국은 의외로 초반에 형세가 기울었다. 대국을 시작한 지 20분 만에 박정환 9단이 우세를 확보했다. 신진서 9단이 서둘렀다. 너무 성급하게 우변 백 대마 공격에 나서는 바람에 실리에서 크게 뒤졌다. 딱 한 수를 빠뜨렸는데 형세가 넘어갔다. 대국 시작 후 한 시간도 안 된 시각, 인공지능 승률 그래프는 백 승률이 90%가 넘는다고 알렸다.

이후부터 승부는 단순해졌다. 불리한 형세를 인식한 신진서 9단이 ‘닥치고 공격’을 선언했다. 실리 손해를 무릅쓰고 상변 백 대마를 잡으러 나섰다. 백 대마를 잡으면 흑이 이기고, 못 잡으면 백이 이기는 백척간두의 중앙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바둑 격언대로 대마는 불사(大馬不死)였다. 신진서 9단의 총공세에도 박정환 9단은 노련하게 활로를 찾아 나갔다. 더는 공격이 어렵다고 판단한 신진서 9단이 항복을 선언했고, 결승 최종국은 166수라는 비교적 단명국으로 끝났다.

대국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정환 9단은 “운이 좋았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럴 만도 하다. 박정환 9단은 16강전과 8강전에서 기적과도 같은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왔다. 특히 롄샤오 9단과의 8강전에선 대국 중반 승률 그래프 3%의 절대 열세였던 바둑을 뒤집었다. 박정환 9단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했을 때 바둑 팬들은 “하늘이 박정환을 돕는다”며 응원했다. 결승전에서도 1국에서 패배한 뒤 2국과 3국을 연거푸 이겨 역전승을 일궈냈다.

박정환 9단은 1993년생이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다. 20대 초반이 세계 바둑계를 장악한 요즘, 박정환 9단의 지치지 않는 활약은 놀랍다. 최근 들어 그는 2000년생 천재 기사 신진서 9단에게 계속 밀리고 있었다. 지난해 박정환 9단은 신진서 9단과 16번 싸워 2번밖에 못 이겼다. 올해도 두 번의 국내 기전 타이틀전에서 박정환 9단은 신진서 9단에 우승컵을 내줬다. 쏘팔코사놀 최고기사 결정전과 용성전 결승에서 모두 패했다.

준우승 신진서 9단.

준우승 신진서 9단.

바둑계에서 “박정환의 시대는 가고 신진서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수군거릴 때, 박정환은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섰다. 박정환 9단은 “작년부터 신진서 9단과 정말 많이 바둑을 뒀고 정말 많이 졌다”며 “그렇게 계속 지면서 내 약점을 알고 보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환 9단은 국내 랭킹 2위이자 세계 랭킹 2위다. 포석부터 끝내기까지 빈틈이 없어 무결점 바둑을 둔다는 평을 듣는다.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하면서 박정환 9단은 개인 통산 다섯 번째 메이저 세계 대회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가장 최근 기록이 2019년 춘란배 우승이니 2년 만의 메이저 세계 대회 타이틀 획득이다. 이날 승리로 박정환 9단은 신진서 9단과의 상대전적이 22승 26패가 되면서 간극이 좁혀졌다.

박정환 9단의 우승으로 한국은 중국에 빼앗겼던 삼성화재배 우승컵을 7년 만에 찾아왔다. 한국은 통산 13회, 중국은 11회, 일본은 2회 우승했다. 삼성화재배는 삼성화재가 후원하고 중앙일보가 주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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