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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뺏긴 바이든…대선 승리 1년 만에 외교도 내치도 '빨간불'

중앙일보

입력

글렌 영킨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공화당 후보가 3일(현지시간) 새벽 당선이 확정된 뒤 소감을 이야기하기 위해 지지자들 앞에서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글렌 영킨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공화당 후보가 3일(현지시간) 새벽 당선이 확정된 뒤 소감을 이야기하기 위해 지지자들 앞에서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가 공화당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2일(현지시간) 열린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50.7%의 표를 얻은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가 민주당의 테리 매콜리프 후보(48.6%)를 물리치고 당선을 확정했다고 CNN 등이 3일 보도했다.

접전이 예상됐지만 이날 민주당이 받은 패배의 충격은 컸다. 최근 선거에서 버지니아는 줄곧 민주당의 텃밭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10명의 버지니아 주지사 중 7명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는 여러 선거에서 대부분 민주당이 승리를 거뒀다.

12년 만에 공화당 출신 버지니아 주지사가 된 영킨은 당선이 확정된 뒤 지지자들 앞에 나와 "각종 세금을 감면하고 교육에 더 투자하는 등 임기 첫날부터 개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당선 1년 만에 외교·내치에 빨간불

3일(현지시간) 새벽 유럽 순방을 마치고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돌아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새벽 유럽 순방을 마치고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돌아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영킨이 당선 소감을 말하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의 전용기가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마치고 유럽 순방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영국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그는 "내가 잘하건 못하건, 내 어젠다가 통과되건 안 되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이기거나 지는데 실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증거도 본 적 없다"라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추진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선거에 이겼다고 주장하지 않았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선 후 1년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좋든 싫든 바이든 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 의회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한 역점 사업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추진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거란 전망이다.

CNN 정치 평론가 글로리아 보거는 이날 개표방송에서 "버지니아 선거 결과는 바이든 정부에게 인프라 법안 등에 대해 속도 조절을 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교 전문가를 자임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잇단 악재 속에 지지율이 떨어진 것도 선거 결과와 연관돼 낭패스러운 지점이다.

지난 대선 당시 바이든은 버지니아주에서 10% 포인트의 격차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겼다. 매콜리프 후보 역시 선거운동 초기에는 두 자릿수 이상 격차로 앞서갔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판세가 달라졌다.

그 직접적인 계기로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의 혼란, 카불공항 폭탄테러, 아이티 이민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단속 등 외교적 실책들이 꼽힌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이번 COP26이 바이든 입장에선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회복할 기회였다. 하지만 중국·러시아의 불참 등으로 진전된 기후대책을 마련하는 데도 실패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 문제를 통해 미국뿐 아니라 자신의 리더십을 재평가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년 중간선거의 풍향계 된 버지니아

민주당 입장에서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내년 11월에 있을 중간선거다. 주지사 선거 자체가 중간선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민심이 어떤지 풍향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연방 하원에서 다수당이지만 공화당과의 의석 차는 불과 8석이다.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 숫자가 50 대 50인데,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덕에 간신히 과반을 유지하고 있다.

새 행정부 출범 후에 치르는 중간선거는 집권당에 불리하기 마련인데,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에 큰 변화가 있지 않은 한 상하원 모두 공화당에 다수 석을 내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럴 경우 재선을 준비하는 바이든 대통령에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프랭크 룬츠 공화당 선거 전략가는 "지난 50년 동안 하원 선거에서 야당이 집권당을 이기고 다수당이 된 게 4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버지니아 선거 결과가 전조가 됐다"면서 "지금 정치권이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라고 CNBC에 나와 말했다.

탄력받는 트럼프 재선 도전?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관람했다. [AP=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관람했다. [AP=연합뉴스]

이번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바이든과 트럼프의 '전·현직 대통령 대리전' 양상이었다.

승리가 절실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이틀 앞둔 지난달 26일 직접 지원 유세에 나섰다.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주말에 버지니아를 찾아 매콜리프 후보를 응원했다.

이들 모두 영킨 후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의 졸개"라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하며 '공화당 후보=트럼프'라는 공식을 밀어붙였다. 의회 폭동의 사실상 주범이면서 선거 불복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론으로 전략을 짠 것이다.

영킨 후보는 "이번 선거는 버지니아의 문제"라며 트럼프를 자신의 유세장에 부르지 않았다. 일정 부분 '거리 두기'를 한 것인데, 그의 지지 선언은 받아들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전날에도 성명을 내고, 자신이 영킨과 가까운 사이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두 나가 영킨을 위해 투표하라"며 응원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킨 후보가 당초 불리했던 지지율을 뒤집고 당선된 것은 트럼프의 승리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이미 2024년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트럼프의 재선 도전이 더 탄력을 받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반대로 민주당 입장에서는 앞으로 선거에서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NBC는 보도했다. 중도층의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반(反) 트럼프 정서를 자극하는 전략이 더는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함께 열린 뉴욕시장 선거에선 경찰 간부 출신의 뉴욕 자치구 브루클린 구청장 에릭 애덤스(민주당)가 예상대로 승리했다. 애덤스는 1990∼1993년 시장이었던 데이비드 딘킨스에 이어 흑인으로서는 두 번째 뉴욕시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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