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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쓰러 휴가까지 낸다…구걸하듯 '머지투어' 떠나는 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 본사 모습. 뉴스1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 본사 모습. 뉴스1

“내 돈으로 샀는데, 왜 ‘머지거지’ 같은 시선을 받아야 하나요.”
300만 원어치의 머지포인트를 가진 이모(39)씨의 말이다. 8월 머지포인트 환불 사태 이후 어떻게든 포인트를 써서 피해를 복구해 보려는 상황이 마치 구걸을 하는 ‘거지’처럼 비친다는 한탄이다. 이씨는 매일 한두 차례 ‘머지포인트 피해자 모임’ 카페에 들어간다. 머지포인트 환불 대란이 일어난 지 약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복구는 사실상 진척이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머지 투어’ 하는 소비자들

머지포인트 측은 서비스를 정상화한다면서 모스버거와 모 돈가스점 등 프랜차이즈와 일부 가게를 다시 입점시켰다. 하지만, 환불 대란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사용처가 확연히 줄었다. 개인당 월 1만원 한정 혹은 사용금액의 일부만 포인트 사용 등의 제한이 생겼다.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머지포인트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피해자들의 비판이다.

머지포인트 이용자들이 모여있는 카페. 실시간으로 머지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가게 정보가 올라온다. [머지포인트 피해자 모임 캡처]

머지포인트 이용자들이 모여있는 카페. 실시간으로 머지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가게 정보가 올라온다. [머지포인트 피해자 모임 캡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인트를 소진하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 직장인은 연차를 내거나 하루 일정을 비워서 포인트를 쓸 수 있는 곳을 찾아가 소진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를 ‘머지 투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모인 카페에선 ‘오늘의 머지 투어’ ‘머지 투어 코스’ 등 사용 가능한 매장을 알려주거나 포인트 소진 노하우를 알려주는 게시물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경기도에 사는 박모(30)씨는 지난달 27일과 지난 1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만 3600원과 19만 5000원을 사용했다. 박씨는 “27일에는 논현동과 건대·홍대 거리를 돌았고 1일에는 마곡동과 삼성역 부근을 돌며 포인트를 썼다.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사서 빨리 포인트를 소진하기 위함이다. 한 가게에는 머지포인트 고객만 약 50명이 줄을 섰는데, 두 팀 빼곤 모두 포장이었다”고 했다. 그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줄을 서면서 괜히 눈치가 보이고 주눅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방에 거주하는 소비자에겐 이런 투어조차 쉽지 않다.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이씨는 “머지머니가 293만원이 남았는데 이곳에는 사용처가 없다. 서울까지 올라가면 차비가 더 들어 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했다.

1일·10일엔 ‘오징어게임’…“포인트 다 쓴 사람이 우승자”

머지투어는 1일과 10일에 특히 몰린다. 가맹점에 따르면 머지포인트 측에서 매장별 월 최대 포인트 사용액을 150만원으로 한정하는데, 매달 1일이나 매장이 머지포인트 측으로부터 정산을 받는 10일 하루 만에 포인트가 동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머지포인트 사용처인 한 매장은 “머지포인트를 일일 제한 없이 받는지 혹은 특정 메뉴에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지는 점주 마음이다. 우리는 1일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하루 만에 전부 팔린다. 그날은 전화가 수백 통씩 온다”고 했다.

이런 경쟁률 때문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빗대 ‘머지게임’이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나왔다. 한 소비자는 “1일과 10일에 포인트를 먼저 쓰는 사람이 승자라는 의미로 머지게임이라는 말이 소비자들 사이에 유행한다. 머지포인트를 다 쓴 사람은 우승자다”라고 했다. 머지포인트 소비자들이 모여있는 카페나 단체메시지방에서는 실시간으로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매장과 대기시간 등이 공유된다.

8월 13일 머지포인트 환불 대란 당시 모습. 이용자들이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 본사를 찾아 포인트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11일 머지플러스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뉴스1

8월 13일 머지포인트 환불 대란 당시 모습. 이용자들이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 본사를 찾아 포인트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11일 머지플러스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뉴스1

“순차적으로 환불 진행”… 소비자들은 ‘불신’  

소비자들이 포인트 소진에 나선 것은 머지플러스에서 진행하는 환불 대책이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머지플러스는 환불 대란이 터진 8월 11일부터 온라인 환불 신청을 받으며 “환불신청 페이지를 통해 접수해주시면 순차적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혀 왔다.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가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한국소비자원·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권남희 머지플러스 대표가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한국소비자원·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머지플러스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피해자 약 330명을 대리하는 강동원 변호사(법무법인 정의)는 “조금씩 환불이 진행되는 거로 알고 있지만, 첫날 환불 신청을 한 피해자 중 아직도 환불이 안 된 경우도 있다. 특히 금액이 큰 경우는 더욱 환불이 어렵다. 사측에서 추후 형사사건을 고려해 보여주기식 환불을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머지플러스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와 사기 혐의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8월 11일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로 영업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이어 머지포인트 이용자들도 9월 머지플러스 경영진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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