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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지키자면서 메뉴 그게 뭐냐" 뭇매 맞는 COP회의 식탁

중앙일보

입력

샐러드(0.2㎏), 모닝 빵(0.5㎏), 훈제 치킨(1.7㎏), 소고기 버거(3.3㎏)….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 때 정상들의 식탁에 오른 요리들이다. 메뉴 안내에 표기된 숫자는 이산화탄소 환산 수치(CO2e)다. 음식에서부터 탄소배출량을 줄이자는 취지였는데, 오히려 환경운동가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메뉴 하나당 0.5㎏ 미만’ 기준을 훌쩍 뛰어넘으면서다. 이는 글로벌 환경단체 세계자연기금(WWF)이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음식 메뉴 하나당 탄소발자국을 줄여야 한다면서 제시한 기준이다. 여기에 환경을 파괴하며 재배된 식재료를 사용한 것도 문제가 됐다. 환경운동가들은 당장 식단부터 바꾸지 않으면 ‘산림파괴 중단 선언’도, ‘메탄 감축 선언’도 모두 공허한 약속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어 요리. [픽사베이]

연어 요리. [픽사베이]

2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는 COP26 정상회의 때 오른 식사 메뉴에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식재료로 만든 요리가 올랐다는 비판이 잇따른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게 연어 요리다. COP26 주최에 따르면 정상들의 식탁에는 스코틀랜드 북서부 서덜랜드에 위치한 양식장에서 기른 연어가 올랐다. 이 양식장은 “친환경 방식으로 연어를 양식하고, 동물 복지에 앞장서는 기업”으로 홍보해왔다.

그러나 영국 환경자선단체인 ‘연어 보존 신탁’은 이 양식장이 해양 오염과 생태계 교란을 이끄는 곳으로 꼽혀왔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르면 이 양식장은 올해 스코틀랜드에서 ‘바다 이(Sea Lice)’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최악의 양식장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해양 오염 유발 문제로 올해 정부로부터 두 차례 시정 명령을 받았고, 광고심의기관도 ‘친환경적’·‘지속가능한’이란 홍보 문구에 대해 삭제 명령했다고 단체는 설명했다.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데일스 인근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 [AFP=연합뉴스]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데일스 인근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 [AFP=연합뉴스]

바다 이는 주로 대서양 연어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다. 연어의 피와 살을 갉아먹고 또 다른 질병을 퍼트리는데, 2차 감염 시 즉시 폐사한다. 바다 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연어를 빽빽하게 가두고 기르는 양식장에서는 바다 이가 한번 발생하면 폭발적으로 확산한다.

문제는 양식장에서 발생한 바다 이가 야생 연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바다 이에 감염된 상태로 양식장을 탈출한 연어가 자연에 서식하는 어류 개체군을 감염 시키고, 야생 연어 무리까지 집단 폐사시킨다. 연어 개체 수 감소는 범고래, 곰 등 상위 포식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다.

COP26 기간 식사 메뉴를 관리하는 'arecipeforchange' 가 공개한 식사 메뉴. [홈페이지 캡처]

COP26 기간 식사 메뉴를 관리하는 'arecipeforchange' 가 공개한 식사 메뉴. [홈페이지 캡처]

WWF는 이 외에도 양식장에서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항생제가 해양 오염 원인이 될 뿐더러 사람의 건강까지 해치고. 플라스틱 어구는 미세플라스틱을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연어 보존 신탁의 책임자인 앤드류 그라함-스테워트는 “지속 가능성 없는 식재료인 양식 연어를 COP26 메뉴에 올렸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라며 “메뉴 선정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arecipeforchange' 는 메뉴 옆에 이산화탄소 환산 수치를 기록했지만, 상당수가 표준 수치인 1.5kg을 넘어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

'arecipeforchange' 는 메뉴 옆에 이산화탄소 환산 수치를 기록했지만, 상당수가 표준 수치인 1.5kg을 넘어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

이 외에도 환경운동가들은 COP26 식단의 60%가 육류 또는 유제품으로 구성됐다는 점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동물을 사육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인간이 유발하는 배출량의 약 14.5%를 차지한다. 이런 이유로 영국 정부도 쇠고기 등 동물성 식재료의 수요를 자제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후위기 대응을 논의하겠다고 모인 정상들이 먹은 요리의 절반이 고탄소 요리로 채워졌다는 지적이다.

식물성 식품 권장 운동 단체인 ‘애니멀 레벨리온'의 조엘 스콧-하커스 대변인은 “COP26 메뉴에 육류와 유제품, 해산물을 무모하게 포함한 건 여전히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폐암 극복 콘퍼런스에서 담배를 권유하는 것과 같다. 즉각적인 행동 변화가 없다면 기후 비상사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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