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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명절 때 딸이 인사시킨 남친 알고보니 이웃집 아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207)

사돈 간은 참 어려운 관계라 한다. 출가할 자식들의 양쪽 부모가 상견례라는 형식으로 만나 인사 나누고 나면 자주 만나기 힘든 게 사돈 관계란다. 자식을 두고 평생을 기싸움 하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부모들의 인연으로 성장한 자식들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아닌 남에게 금쪽같은 내 자식을 기꺼이 맡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관계가 있을까. 내 아이에게 애틋하고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내 사돈님을 소개한다.

남편과 요양 차 내려와 1년을 산 곳은 청량산 뒷줄기의 산속 외딴집이다. 아랫마을까지는 5Km 정도 산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오르내리며 마주치다 보니 마을 입구 집과 정이 들었다. 외출 갔다 올라갈 때면 잘 챙겨 먹고 기운 내라며 온갖 농산물을 차에 실어 올려 주곤 했다. 1년 후 동쪽 마을로 이사 내려왔다. 며칠 후, 그분들은 집들이 선물이라며 두부를 한 찜통 해왔다. 1년의 시한부를 이겨내고 살아서 하산하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밤새 콩을 갈고 두부를 만든 두 분, 이웃들에게 따뜻한 두부를 나눠 주며 우리를 부탁하던 그 날의 고마움은 지금도 가슴 저리는 풍경이다.

사람이 온다는 것도, 떠나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겪으며 아픔과 함께 감동도 컸다. [사진 Hippopx]

사람이 온다는 것도, 떠나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들을 겪으며 아픔과 함께 감동도 컸다. [사진 Hippopx]

어느 날 소중한 인연의 연결선을 안방 벽에 걸린 가족사진에서 찾았다.

“언니, 저 사진 속에 아들 장가갔나?”
“안 갔지. 속 터진다.”
“우리 딸도 안 갔는데 바꿀까. 호호호.”
“흠마야, 그럼 얼마나 좋을꼬. 흐흐흐.”

우리는 가장 멋지게 나온 아이들의 사진을 손바닥 폰 위에 올려놓고 자랑하며 깔깔댔다.

두 아이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동네 어른이 소개한 좋은 사람이라며 딸에게 전화번호를 주며 만나보라고 하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리부터 질렀다.

“아직 결혼 생각 없거든. 이런 거 하지 마. 촌스러워.”
“네 아빠가 소원이라니 딱 한 번만 만나나 봐라.”

궁금증에 모가지가 빠질 만큼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아빠를 위해서 만나는 봤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야. 됐지?”

그 집에서도 전화가 왔다.

“노총각인 주제에 제 스타일이 아니라나, 뭐라나, 김칫국만 마싯따야. 흐흐.”

우리는 서로 미안함에 머쓱해졌고, 또 단칼에 잘라버리는 자식들이 섭섭했지만 각자의 스타일이 아니라는데 뭐, 우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 식으로 허탈한 웃음을 안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다시 친한 이웃으로 살았다.

1년 후 추석날이었다. 딸이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명절 때 인사하러 같이 온단다. 넙죽 큰절하고 일어서는데 얼마나 의젓하고 잘 생겼는지, 내 딸이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하며 감동했다. 남편이 말했다.

“그래. 자네 고향은 어딘가? 부모님은 다 살아 계신가?”
남자는 멋쩍어하며 말했다.
“네. 제가 000님의 아들입니다. 예쁜 따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 시에서 말했듯이 사람이 온다는 것도, 떠나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겪으며 아픔과 함께 감동도 느꼈다. 사람으로 인해 홀로서기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수선하고 삭막한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가는 내공이 쌓였다.

앞집 어른이 친하게 지내는 귀촌 이웃과 자식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나이든 자식들을 바꿔보자며 어마어마한 작전을 짰다. 자식의 전화번호가 007작전같이 오가고, 마음 급한 두 아버지가 벌써 몇 번째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자식 자랑에 입이 마른다. 서로 잘해보자며 술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어른의 발걸음이 하늘을 날 것처럼 가볍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지만 좋은 사람과 사돈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맘이 들뜬다.

누구 말마따나 어른들끼리 상견례도 하고 살 집도 상의하고 결혼 날짜도 대충 잡아놨는데 정작 그 남자 그 여자는 만나서 마음이 오고 간 건지 상황을 모르니 아직은 대략난감이다. 눈치 주지 말고, 묻지도 말고 기다리라는 부인의 말에 입 다물고 기다렸는데, 기린 목이 되어 기다리던 아버지의 폰에 드디어 아들의 전화번호가 떴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봄날은 간다’ 노랫말이 오늘따라 더 애간장을 태운다. 잘~ 돼야 할 텐데, 어마어마한 일을 이미 경험한 내 가슴이 더 벌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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