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학교는 19세기, 학생은 21세기…AI 맞춤형 학습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차기 정부 정책 어젠다 ⑤ 교육분과 제언 - 팬데믹 이후의 교육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미네르바스쿨. [사진 미네르바스쿨]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미네르바스쿨. [사진 미네르바스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학생들의 학력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지난달 공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분석보고서(2020)’에 따르면 고교생 중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급증한 반면, 우수학력 비율은 급감했다. 짧은 시간 이렇게 학력 수준이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먼저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국어 4%→6.8%, 수학 9%→13.5%, 영어 3.6%→8.6%로 급증했다. 반면 교과 내용의 80% 이상을 이해하는 우수학력 비율은 국어 28.8%→23.3%, 영어 40%→37.1%, 수학 29.3%→29%로 줄었다.

학력저하의 주요인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의 증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혁신이 교육 분야에서 유독 정체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근대 학교체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장인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19세기 학교 체제가 21세기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AI 교육혁명을 추진하기 위해 규제 중심이었던 교육정책의 기조를 자율, 개방, 포용적 혁신지원 등 3개의 원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T선진국인데 디지털 교육 정체
개개인에 맞는 창의성 키워줘야
대학 규제 줄이고 교육부서 독립
유아교육·보육 통합도 서둘러야

코로나19가 앞당긴 교육 지각변동

호주 애덜레이드의 한 유치원에선 휴머노이드 로봇(모델명 나오)을 실제 수업에 활용한다.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디지털교육을 실행중인 선진국과 달리, IT선진국인 한국은 유독 에듀테크가 정체돼 있다. [중앙포토]

호주 애덜레이드의 한 유치원에선 휴머노이드 로봇(모델명 나오)을 실제 수업에 활용한다.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디지털교육을 실행중인 선진국과 달리, IT선진국인 한국은 유독 에듀테크가 정체돼 있다. [중앙포토]

리셋코리아 자문위원들은 교육의 지각변동이 코로나19로 훨씬 빨라졌다고 진단했다.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늘면서 디지털 교육 전환을 급격히 앞당겼다”며 “팬데믹이 끝나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AI 교육으로의 진화가 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20세기에는 대량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양성하기 위해 표준 기술을 가르쳤다”며 “그러나 21세기에는 생산양식이 맞춤형·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변해 필요한 인재와 교육의 내용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디지털 교육의 현실은 열악하다. 김진형 인천재능대 총장은 “2018년부터 정보 과목을 정규 과목으로 지정했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6년간 17시간, 중학교는 3년간 34시간에 불과하다”며 “컴퓨팅 교육시수는 선진국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고 정보교사를 채용한 중학교는 31%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다수의 선진국은 디지털 역량을 증진하기 위해 공교육에서 컴퓨팅 수업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은 2014년 9월부터 5~16세 모든 학생에게 컴퓨팅을 독립교과목으로 지정했다. 미국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을 선언하며 디지털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2025년부터 대학입시에 정보 과목을 반영한다.

초등 학력격차가 성인까지 이어져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이주호 전 장관은 “AI로 모든 학생에게 맞춤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창의성과 인성을 키워주는 ‘하이테크(high tech)·하이터치(high touch)’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칸랩 스쿨, 네덜란드의 스티브 잡스 스쿨처럼 개개인의 목표와 능력을 고려한 최적의 학습을 제공하고 암기 위주에서 문제 해결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AI와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교사의 일방적 수업 대신 맞춤형 학습 지원이 가능하다”며 “단순 지식 전달과 기본 개념 이해는 AI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하이테크 교육을 실행할 수준에 이르렀다. 정 교수는 “지금도 얼마든지 AI를 이용한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지만 제도적 한계 때문에 어렵다”며 “모든 학생이 똑같은 진도 아래 중간·기말 고사를 일률적으로 봐야 하는 상황에선 맞춤형 학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화된 국가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풀어주고 평가방식도 총괄평가·상대평가가 아니라 과정평가·절대평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이테크를 통한 교육격차 해소도 필요하다. 김성열 교수는 “팬데믹 이후 교육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시작하는 학습격차를 바로잡지 않으면 청소년·성인이 돼서도 격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IT 산업의 허브가 될 수 있던 이유는 스탠퍼드·버클리 같은 명문대가 만들어 놓은 혁신 생태계 때문이다. 이주호 전 장관은 “혁신의 동력을 제공하는 미국 대학들은 한국처럼 교육부 규제를 받고 있지 않다”며 “규제와 지원이 어느 한 부처에 집중된 나라는 선진국 중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지금까지 억지로 붙어 있던 대학 관리 업무를 분리해야 한다”며 “첨단 학문을 다루는 고등교육기관은 자율 영역으로 넘기고 직업교육 중심의 대학(또는 전문대)은 다른 패턴의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셋코리아 자문위원들은 대학이 교육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행정 업무는 국무총리실로, 지원 업무는 혁신전략부(가칭)를 신설해 이관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입시 같은 기존의 규제 업무는 총리실 산하 행정위원회로 옮겨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대학을 4차 혁명의 허브로 키워야

이주호 전 장관은 “대학을 혁신 주체로 만들려면 규제완화와 전략기획이 필요하다”며 “혁신전략부에서 전략을 만들어 지원하고, 정부출연연구원처럼 총리실에서 최소한의 규제와 조정 업무만 담당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박상욱 교수는 “정부의 연구지원 사업이 흩어져 있어 국가적 차원의 혁신전략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다”며 “혁신 생태계의 핵심인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 기능을 집중시켜 4차 혁명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정책 업무를 교육부에서 떼어내면, 전문대 관련 업무는 고용노동부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 조훈 서정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4년제 대학 졸업 후 전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연간 1만 명이 넘는다”며 “고등직업교육 수요는 많지만 담당 부처가 일원화 돼 있지 않아 국가의 책무성이 굉장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연구가 중심인 대학과 직업교육이 중심인 대학의 담당부처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진형 총장은 “대학이 반성하지 않고 교육부만 문제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대학이 먼저 왜 이렇게 잘못됐는지 통렬하게 반성하면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했다.

자문위원들은 또 영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여성가족부의 가족 기능, 복지부의 보육 업무를 교육부와 합치자고 제안했다. 천세영 교수는 “발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0~5세 영유아 교육 환경에 국가가 혁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며 “이 시기 가족과 공교육은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하므로 교육가족부로 통합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둘로 나뉜 초등·중등 교사양성 개혁을

현재 0~2세 영아교육과 3~5세 어린이집의 소관부서는 복지부인 반면, 3~5세 유치원은 교육부다. 복지부의 보육 업무를 교육부로 옮겨 영유아 교육 관할을 하나로 합치는 게 유보통합이다.

이와 더불어 정제영 교수는 K학년제 도입을 제안했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 연령인 만 5세를 정규 학제로 편성하자는 이야기다. 그는 “지금도 공사립 유치원 모두 누리과정에 따라 재정지원을 받고 있지만, 학교로 편입이 안 돼 재정 투명성과 회계 등의 문제가 있다”며 “만 5세는 K(Kindergarten)로, 만 3~4세는 Pre-K로 해 유치원을 정규학제에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교원양성체계도 변해야 한다. 김진형 총장은 “2020년 교사들에게 AI를 가르치는 수업을 했는데 대부분이 ‘컴맹’이었다”며 “이런 분들이 몇 시간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AI를 활용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제영 교수는 “자격증만 부여하는 교육대학원의 역할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가르치는 진짜 재교육 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교육대학(초등)과 사범대(중등)로 이분화된 폐쇄된 교원양성 체계의 변화도 필요하다. 김성열 교수는 “미래 교사는 지금보다 훨씬 융·복합적인 역량을 가져야 한다”며 “사범대와 일반대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개방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초등교사의 경우도 “지금처럼 교육대학으로 따로 떼놓기보다 종합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을 만나며 개방·관용성을 경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교육분과 위원들의 제언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교육분과 위원장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교육분과 위원장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교육분과 위원장 
“대량생산 교육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AI 교육혁명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인성 역량을 키우는 하이터치·하이테크 교육으로 가자.”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
“교사도 단순한 ‘티칭(teaching)’ 역할은 AI에게 맡기고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소질을 키우는 ‘코칭(coaching)’에 집중해야 한다.”

김진형 인천재능대 총장

김진형 인천재능대 총장

김진형 인천재능대 총장
“AI 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기업, 학부모 등 수요자 입장에서 무엇을 배우면 좋을지 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자.”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영국의 기업혁신기술부(BIS)처럼 대학에 자율성을 주고 사회경제 정책을 융합해 국가 발전전략을 수립·실행할 수 있는 혁신전략부를 만들자.”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AI 시대에 교사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개개인에게 동기를 부여해 협업이나 소통 능력 같은 소프트 스킬을 길러줄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조훈 서정대 호텔경영학과 교수

조훈 서정대 호텔경영학과 교수

조훈 서정대 호텔경영학과 교수
“미래에는 인간이 AI와 경쟁하려 해선 안 된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중고에서부터 AI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교육감은 어린이집이 자기 관할이 아니라 돈을 쓰려 하지 않는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구조적 차별을 없애려면 하루빨리 유보통합을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