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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기만 하세요”라더니…인구대책이 노인복지정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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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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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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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8월 출생아동은 지난해보다 3% 줄었다. 대개 하반기에 출생아동이 더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면 4% 정도 감소할 듯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서형수 부위원장은 2일 “출생아 수가 지난해 27만2337명에서 4% 정도 감소한 26만 명 정도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합계 출산율은 0.84명(2020년)에서 0.7명대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0.8명에서 간당간당할 전망이다. 인구는 2019년 11월 이후 22개월째 자연감소(사망〉출생)가 이어지고 있다. 주민등록 기준으로 9월 말 인구는 지난해 12월보다 16만1335명(0.31% 감소) 줄었다.

저출산·고령화 대책, 나아가 인구 대책이 있기나 한 걸까.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위원회), 보건복지부에 인구총괄과, 기획재정부에 인구TF가 있다. 형제 같지만 결코 친한 것 같지 않다. 이웃보다 못한 형제일 수도 있다. 저출산을 다루는지, 인구를 다루는지 명확하지 않다.

국책기관 연구원 작심 비판 주목
모든 것 해줄듯이 기대치만 높여
정치권·정부보다 전문가 책임 커
인구기본법으로 종합전략 짜야

서울의 대형마트에 기저귀가 쌓여있다. 출생아 감소로 인해 다른 물건이 전시대를 채울 날이 머지 않았다. 8월 출생아가 또 줄었고 이번에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연합뉴스]

서울의 대형마트에 기저귀가 쌓여있다. 출생아 감소로 인해 다른 물건이 전시대를 채울 날이 머지 않았다. 8월 출생아가 또 줄었고 이번에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올해 356개 과제에 46조6845억원을 쓴다. 아동수당·육아휴직급여 등 직접 지원에 17조9399억원, 주거·고용 등 간접 지원에 28조7446억원을 쓴다. 간접지원이라는 게 이상하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고용안정 장려금, 학교 공간 혁신 같은 게 있다. 아무리 봐도 복지 대책, 교육 정책인 것 같은데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슬쩍 끼어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한 해 50조를 쓰는데도 왜 0.84명으로 떨어지느냐”는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인구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저출산 고령사회 대응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구정책 제언’ 포럼을 열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패러다임 변화를 위한 거버넌스 개편 과제’ 발제에서 그간의 허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문가로서 그간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쏟아냈다.

백화점식 정책 나열 효과 없어

인구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인구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박사는 “현 대책이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개별사업의 모음에 불과하다. 기존에 하던 사업을 끼워 넣고 리스트를 쌓아가는 구조라서 장기적·구조적 접근이 힘들다. 고령화 문제는 미래 대응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현재의 노인복지정책으로 축소해버렸다”고 말했다. 또 “출산 문제는 경제학적 프레임으로 접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용을 줄이면 출산이 증가할 것이라며 지원하는 식이다. ‘낳기만 하세요’라면서 모든 걸 해줄 것처럼 기대치를 올린다. (해결이 불가능한데도) 모든 문제를 책임질 것처럼 정부 책임화했다”고 비판했다.

이 박사는 “대통령 임기와 저출산·고령사회계획(5개년 계획)이 일치하지 않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약과 정치적 입장을 반영해 바꾼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임기에 2년밖에 계획을 시행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부처와 전문가의 이해가 일치하는 관련 사업을 끼워 넣고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것처럼 포장한다”고 주장했다.

인구전략 조직구성 개념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인구전략 조직구성 개념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책 실패와 관련, 이 박사는 “정치권과 정부 부처 탓으로 돌리는데, 전문가의 잘못이 더 크다. 100명 넘는 전문가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들어가 있다. 전체 인구 문제보다 자기 영역을 대변하는 사람이 많다. 정책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를 뽑는다는 미명하에 사실상 정부에 잘 협조하는 전문가만 뽑았다. 일부는 ‘저는 저출산 문제에 신경 안 쓴다. 제가 하는 영역, 젠더나 보육 같은 데 신경 쓰려고 왔다’라고 말한다. 전문가가 위원회를 매운맛 나게 평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업 평가가 제대로 안 되니 환류(되돌아옴)가 안 된다고 한다. 이 박사는 “사업 수(356개)가 너무 많아 위원회가 이행 실적 챙기기에 급급하고 예산권이나 집행관리권한이 없어 효과적으로 책임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위원회가 중점 과제만 챙기고 나머지는 행정부처가 관리하기로 했으나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계획(2021~2025년)에서 다시 나열식으로 원점으로 되돌렸다고 지적했다.

인구사회부총리 만들어 정책 총괄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정부가 출산과 고령화만 따지면서 지엽적인 인구해석에 기반을 둔 정책을 하고 있다. 인구 정책이 복지 정책으로 변질했고, 주무부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인구정책기본법으로 바꿔 지역 간 인구이동, 이민, 가구 변화, 실버산업, 교육, 안보, 사회보장 등을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상림 박사는 “저출산·노인 복지 중심 정책을 종합적 인구전략으로 전환하고 인구사회부총리가 관장하는 인구전략본부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 아래에 인구대응전략실(정책집행)과 인구전략위원회를 두자고 한다. 인구전략위원회는 민간전문가로 구성해 미래 이슈를 발굴하고 정책을 냉정하게 평가해 국회에 보고하는 기능을 하자고 설명했다. 이 위원회 상임위원은 국회가 추천해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생각이다.

이원희 한경대 총장은 “저출산고령화기본법을 인구 관련 기본법으로 바꾸고 현금 지원 방식에서 의식 개선으로 전환하고, 인구 부총리를 둬 여러 부처를 컨트롤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복지부 장관이 부총리를 해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