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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학교엔 AI교사 도입, 대학은 교육부에서 독립시키자

중앙일보

입력

(5) 교육분과 제언 - 팬데믹 이후의 교육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학생들의 학력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지난달 공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분석보고서(2020)'에 따르면 고교생 중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급증한 반면, 우수학력 비율은 급감했다. 1년 만에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이렇게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2 학생의 기초학력미달 비율은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국어 4%→6.8%, 수학 9%→13.5%, 영어 3.6%→8.6%로 급증했다. 반면 교과 내용의 80% 이상을 이해하는 우수학력 비율은 국어 28.8%→23.3%, 영어 40%→37.1%, 수학 29.3%→29%로 줄었다. 학업성취도평가는 기초학력 미달부터 우수학력까지 전국 학생들을 4단계로 나눠 표집(標集) 평가한다.
 학력저하의 주요인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의 증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혁신이 교육 분야에서 정체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즉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근대 학교체제가 일찌감치 수명을 다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장인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19세기 학교 체제가 21세기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AI 교육혁명을 추진하기 위해 규제 중심이었던 교육정책의 기조를 자율, 개방, 포용적 혁신지원 등 3개의 원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시대에 갇힌 학교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앨빈 토플러(1928~2016)는 『부의 미래』에서 현재의 학교 체제를 산업화 시대의 노동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묘사했다. 단일화·표준화·대량화라는 산업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 체제가 최적화돼 있다는 지적이었다. 토플러에 따르면 현재의 학교 시스템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훈련된 노동력을 공급하는 게 핵심 목표다.
 그렇다 보니 19세기 이전과 이후의 교육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미래교육 전문가인 찰스 파델에 따르면 19세기 이전까지의 교육은 암기보다는 토론, 지식습득보다는 인성교육, 기술보다는 인문교양을 강조했다. 주요 교과목도 독해·작문, 수사학, 역사, 철학, 수학, 음악, 미술, 라틴어 등이었다.
 일종의 전인교육 형태로 시민의 교양을 갖춘 공동체의 구성원을 키우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창의적인 과학자와 예술가, 철학자 등을 양성했다. 파델은 “전인적 역량을 기르는 르네상스식 교육에서 창의성이 배양되고 혁신적인 사고가 싹틀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21세기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앞 다퉈 19세기 학교 시스템을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과목 중심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협업,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등 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주입식 수업 대신 토론·발표 등의 고차원적 사고 훈련을 강조한다. AI 시대엔 단순 지식과 스킬만 가진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차 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들은 세 가지 핵심 과제를 꼽았다. 첫째는 AI를 활용한 일대일 맞춤과 동기부여 시스템으로 ‘하이터치(high touch)·하이테크(high tech)’ 교육을 도입하는 것이다. AI를 이용해 르네상스식 교육을 구현하자는 취지다.
 둘째는 교육의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다. 특히 온갖 규제에 발 묶인 대학을 교육부 산하에서 독립시켜 세계 유수의 고등교육기관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뜻이다. 셋째는 영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교육격차가 시작되는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미취학 아동부터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교육의 지각변동

미네르바스쿨 온라인 수업 [미네르바스쿨 사이트 캡처]

미네르바스쿨 온라인 수업 [미네르바스쿨 사이트 캡처]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들은 4차 혁명으로 인한 교육의 지각변동이 코로나19로 훨씬 빨라졌다고 진단했다.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늘면서 디지털 교육으로의 전환을 급격히 앞당겼다”며 “팬데믹이 끝나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디지털 교육에서 한 발 더 나아간 AI 교육으로의 진화가 가속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호 전 장관은 “학생의 잠재력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표준화된 시험으로 역량을 평가하는 대량생산 교육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I로 모든 학생에게 맞춤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교사는 인간적 연결을 강화해 학생의 창의성과 인성을 키워주는 프로젝트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미래교육은 그 동안 해왔던 근대 학교 체제 아래에선 불가능하다”며 “전통적인 칠판과 책상과 같은 물리적 공간부터 완전히 혁신하지 않고선 미래교육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래교육을 위한 제도의 보완과 스마트 교육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과감한 시설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대량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이 중심이었던 20세기에는 대중교육을 통해 표준적인 기술을 배워야 했다”며 “그러나 21세기에는 생산양식이 맞춤형,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변해 필요한 인재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직능이 매일같이 바뀌는 4차 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교육 체제를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진형 재능대 총장도 “AI의 발전으로 고도의 정신노동까지 자동화 돼가는 추세여서 자격증으로 보호되던 전문직조차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디지털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AI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꼭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들이 디지털 역량을 증진시키기 위해 공교육에서 컴퓨팅 수업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은 2014년 9월부터 5~16세 모든 학생들에게 컴퓨팅을 독립교과목으로 지정했다. 미국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을 선언하며 디지털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25년부터 대학입시에 정보 과목을 반영키로 했다.
 반면 한국은 갈 길이 멀다. 김진형 총장은 “2018년부터 정보 과목을 초중고 정규 과목으로 지정하긴 했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6년간 17시간, 중학교는 3년간 34시간에 불과하다”며 “컴퓨팅 교육시수는 선진국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고 정보교사를 채용한 중학교는 31%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김 총장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데, 지금처럼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공급자 위주로 결정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대신 “교육과정위원회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도 있고, 학부모 대표도 참여해 여러 수요자들이 모여서 무엇을 배웠으면 좋겠는지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 교육혁명

칸랩스쿨

칸랩스쿨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제일 먼저 학교 교육에서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교육열과 수준 높은 IT 기술을 갖췄지만 유독 에듀테크에 있어선 소극적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의 칸랩 스쿨, 네덜란드의 스티브잡스 스쿨 등 선진 학교들의 미래교육 시스템을 분석해 세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다.
 첫째 AI 기술을 이용해 개인별 맞춤 수업을 한다. 이를 통해 학생 개개인의 목표와 능력을 고려한 최적화된 학습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국가교육과정이라는 틀 안에 모든 학생을 집어넣던 것을 탈피해 학업 수준에 따라 유연하게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무학년제를 시행하고 있다. 셋째 지식전달 수업 대신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
 세 가지 공통점을 바탕으로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들은 ‘하이터치·하이테크’ 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했다. 정제영 교수는 “하이테크 교육으로 전환해 AI와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 교사의 일방적 수업 대신 맞춤형 학습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단순 지식 전달과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은 AI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교사들에겐 하이터치 역량이 요구된다. 정 교수는 “교사는 정서적 학습이나 동기부여를 통해 협업이나 소통 능력 등 소프트 스킬을 길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AI 교육혁명의 핵심은 학생 한명 한명이 학습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고, 교사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정서적 학습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터치·하이테크’ 교육을 실현하는데 있어 기술적으로는 이미 충분한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과거의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지금도 얼마든지 AI를 이용한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지만 제도적 한계 때문에 어렵다”며 “모든 학생이 똑같은 진도 아래 중간·기말 고사를 일률적으로 봐야 하는 상황에선 맞춤형 학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표준화된 국가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풀어주고 평가방식도 총괄평가·상대평가가 아니라 과정평가·절대평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에 대한 무거운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조훈 서정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2020년 전문대에서도 AI 교육을 전공으로 개설하면 학생들이 많이 몰릴 줄 알았는데 대부분 정원미달이었다”며 “AI가 학생들의 인식 속에선 굉장히 높은 단계의 교육으로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래에는 AI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초중고에서부터 AI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이테크로 교육격차 해소

지난 9월 17일 호주 애덜레이드 소재 세인트 피터스 걸스 유치원에서 4~5세 여아들이 휴머노이드 로봇(모델명 나오)을 활용해 수업을 하고 있다. 강대석 기자

지난 9월 17일 호주 애덜레이드 소재 세인트 피터스 걸스 유치원에서 4~5세 여아들이 휴머노이드 로봇(모델명 나오)을 활용해 수업을 하고 있다. 강대석 기자

 하이테크 교육은 교육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이주호 전 장관은 “한국이 처한 가장 큰 학교의 위기 중 하나는 교육격차”라며 “팬데믹을 겪으며 이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특히 “교육 격차는 성년이 된 후 일자리 격차로 이어지고 사회적 양극화를 공고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김성열 교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하는 학습격차를 바로 해소하지 않으면 청소년, 성인이 돼서도 격차를 좁히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며 “삶의 기회와 질이 교육의 결과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교육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학교 전반에 확대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선 지난해부터 계속된 코로나19로 학습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9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 교사들의 79%가 코로나19 이후로 학습격차가 커졌다고 응답했다. 김 교수는 “공교육으로서 학교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습격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AI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일대일 맞춤 수업은 학생 간의 학습격차 해소에 긍정적이다. 2018년 대구 하빈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5학년 담임을 맡았던 신민철 교사는 1년 동안 수업에 ‘칸아카데미’ 프로그램과 태블릿PC를 적극 활용했다. ‘칸아카데미’는 미국의 살만 칸이 개발해 무료로 제공하는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당시 신 교사는 간단한 개념 설명 후 마치 게임하듯 문제를 풀며 학생들의 흥미를 북돋았다. 신 교사는 “칸아카데미를 활용하면 일일이 채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맞춤형 지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사이 신 교사는 교실을 돌며 각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지도했다.
 태블릿에는 학생별로 자주 틀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왜 틀렸는지 등이 기록된다. 교사가 학생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신 교사는 “칸아카데미를 활용하면서 학생들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5학년은 수학 성적이 평균 70.2점에서 74.4점으로 향상됐다. 60점 이하의 학습 부진 학생 3명은 36→50점, 48→49점, 52→66점으로 모두 올랐다.
 정제영 교수는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는 AI 튜터링 시스템은 이미 많이 개발돼 있어 초·중등은 도입만 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다”며 “여기엔 기본적으로 학습관리시스템(LMS)이 장착돼 있기 때문에 학생 개인별 데이터와 학습 성과를 관리해줄 수 있어 교사들의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대학은 4차 혁명의 허브

VR은 이미 다수 선진국에서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연합뉴스]

VR은 이미 다수 선진국에서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IT 산업을 주도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던 것은 스탠포드와 버클리 같은 명문대가 만들어 놓은 혁신 생태계의 영향이 크다. 혁신 생태계란 “기업가와 연구자·투자자·정부 등이 함께 협력하면서 경쟁하고, 고위험·고부가가치의 기술개발로 새로운 사업 모델·플랫폼·상품 등을 만들며 사회 전체를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주호 전 장관)이다.
 이 전 장관은 “혁신의 동력을 제공하는 미국의 대학들은 한국처럼 교육부 산하에서 규제를 받고 있지 않다”며 “규제와 지원이 어느 한 부처에 집중돼 있는 나라는 선진국 중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이 교육부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야만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혁신가들이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사회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이 교육부의 통제를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정부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1년여의 시간 동안 미국 대학엔 큰 변화가 있었다. 애리조나주립대의 경우 AI를 활용한 맞춤 수업을 12만 명에게 제공한다. 퍼듀대는 온라인 대학인 캐플란대와 통합해 학생 수가 3만 명으로 늘었다.
 이 전 장관은 “코로나19 이후 1400여개의 미국 대학이 입시전형에서 SAT 등 시험점수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꿨다”며 “국가가 관리하는 교육과정과 입시체제가 과거의 공장형 대량생산방식에나 부합하는 낡은 대학 모델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AI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맞춤형 지원하는 시대에 한 번의 시험으로 일생을 결정하는 입시체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천세영 교수는 “대학의 역할에는 혁신의 발판을 마련하는 연구 기능과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능 등 두 가지가 있다”며 “지금까지 억지로 붙어 있던 두 기능에 대한 관리 체계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첨단 학문을 다루는 대학원 이상의 고등교육기관을 자율적 영역으로 넘기고 직업교육중심의 대학(또는 전문대)은 다른 패턴의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욱 교수는 프랑스의 예를 들어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필요한 생물학 이론을 수립한 사람이 파스퇴르인데 그의 고국인 프랑스는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다”며 “대학이 평준화 돼 있는 프랑스에선 혁신 생태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통제로 대학이 균질화 되고 있는 한국도 자율과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키우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을 교육부에서 분리하자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들은 대학이 교육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행정 업무는 국무총리실로, 지원 업무는 혁신전략부(가칭)를 신설해 이관하자고 제안했다. 이주호 전 장관은 “대학의 연구개발 기능이 강화될 수 있게 정부가 통제보다는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혁신전략부를 신설해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대신 대학입시와 같은 기존의 규제 업무는 총리실 산하 행정위원회로 이관해 최소화 하자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대학을 혁신 주체로 만들려면 규제완화와 전략기획이 필요한데 지금같이 교육부의 통제를 받는 구조에선 대학의 자율성 확보가 어렵다”며 “혁신전략부에서 전략을 만들어 지원하고, 정부출연연구원처럼 총리실에서 최소한의 규제와 조정 업무만 담당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육부의 고등교육정책실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미래인재정책국을 떼어내 혁신전략부를 만들고, 이곳에 대학 연구지원과 산학협력을 맡기자는 취지다. 박상욱 교수는 “정부의 연구지원 사업이 흩어져 있어 국가적 차원의 혁신전략을 세우는데 한계가 있다”며 “혁신 생태계의 핵심인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 기능을 집중시켜 4차 혁명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혁신전략부가 국가 미래전략 수립에 효율적이려면 과학기술과 산업 부문의 통합·조정 기능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영국의 기업혁신기술부(BIS)처럼 고등교육과 과학기술, 사회경제 정책이 융합돼 포괄적 혁신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통합부처가 있어야 한다”며 “산업통상자원부의 일부 기능과 기획재정부의 혁신성장 업무를 혁신전략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주호 전 장관도 “영국의 BIS는 규제개혁을 통해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AI와 빅데이터 등 유망 산업을 육성했다”며 “한국도 1960~1980년대 눈부신 성장 과정에서 국가적 차원의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경제기획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폭넓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합부처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정책 업무를 교육부에서 떼어냄과 동시에 전문대 관련 업무는 고용노동부로 이관할 필요가 있다. 조훈 교수는 “4년제 대학 졸업후 전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연간 1만 명이 넘는다”며 “고등직업교육 수요는 많지만 담당 부처가 일원화 돼있지 않아 국가의 책무성이 굉장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연구가 중심인 대학과 직업교육이 중심인 대학의 담당부처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상욱 교수도 “폴리텍대학 등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에서 전문대 정책을 담당하면 분산돼 있던 전문직업인 양성, 직업능력개발 정책 수립 등에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미래에는 연구기능이 강한 대학, 일자리를 많이 연계시키는 대학, 지역사회에 서비스하는 대학, 평생학습을 잘하는 대학 등 다양한 역할 분화가 필요하다”며 “각자의 역할에 맡는 소관부서가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성열 교수 역시 “모든 대학이 서울대가 될 수는 없다”며 “이미 존재하는 대학의 서열화를 인정하되 이를 기능의 다양성으로 전환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대학 특성화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노력을 해왔지만, 한편으론 일률적인 평가와 재정지원 연계로 모순된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과거 역량강화사업처럼 몇 개의 주요 지표를 중심으로 지원하고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뿐만 아니라 대학도 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진형 총장은 “대학이 반성하지 않고 교육부만 문제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대학이 먼저 왜 이렇게 잘못됐는지 통렬하게 반성하면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주호 전 장관도 “대학에 자유를 주자는 것은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라며 “대학이 지금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자유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요람부터 책임지는 교육

 리셋코리아 교육분과 위원들은 세 번째 과제로 ‘국가교육계획(Korean Education Plan)’ 수립을 제시했다. 이른바 ‘요람부터 책임지는 교육“이다. 현재 한국의 청년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 부족과 미래역량 교육의 부재다. 이주호 전 장관은 ”혁신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교육을 통해 청년들의 새로운 역량을 증진시켜야 한다“며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국가교육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영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다. “인지능력 뿐 아니라 사회·정서적 영향에 따른 인성과 창의력은 어릴 때 상당부분 형성되기 때문”(이주호 전 장관)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교육에 개입을 한다면 대학 입시 때 할 게 아니라 영유아 때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특히 “교육은 이제 초중고 몇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교육분과 위원들은 국가의 조기교육 강화를 위해 여성가족부의 가족 기능, 복지부의 보육 업무를 교육부와 합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천세영 교수는 “발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0~5세 영유아 교육 환경에 국가가 혁신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며 “이 시기에 가족과 공교육은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가족부로 통합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0~2세 영아교육과 3~5세 어린이집의 소관부서는 복지부인 반면, 3~5세 유치원은 교육부로 업무가 분산돼 있다. 복지부의 보육 업무를 교육부로 옮겨 영유아 교육 관할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유보통합이다.
 이주호 전 장관은 “누리과정을 시작한 것도 유보통합을 위한 기초 작업이었는데 아직까지 통합되지 않고 있다”며 “소관 업무가 복지부와 교육부로 나뉜 상황에선 앞으로도 진전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세영 교수도 “영유아 교육을 위해 유보통합이 왜 중요한지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부처 간 관할싸움으로 진척이 없다”며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구조적 차별은 하루 빨리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천세영 교수는 특히 “교육감에게 초·중등에서 쓸 돈이 넘쳐나도 어린이집은 자기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쓰지 않는다”며 “같은 유치원도 사립과 공립의 차이가 크다, 재정 배분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립유치원은 학급당 인원을 25명까지 꽉 채우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인원을 줄이면 그 만큼 재정지원이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제영 교수는 K학년제 도입을 제안했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 연령인 만 5세를 정규 학제로 편성하자는 이야기다. 그는 “지금도 공사립 모두 누리과정에 따른 재정지원은 이뤄지고 있지만, 학교 제도로 편입이 안 돼 재정 투명성과 회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며 “만 5세는 K(Kindergarten)로, 만 3~4세는 Pre-K로 해 유치원을 정규학제로 포함시키자”고 했다. 그는 특히 “사립 유치원의 가장 열악한 점은 공립의 절반가량에 불과한 교사의 임금 문제인데, 유치원을 정규학제로 편입하면 교사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원양성과 학교자율

 끝으로 교원양성체계도 미래교육 시스템에 맞게 바꿔야 한다. 김진형 총장은 “2020년 중앙대에서 교사들에게 AI를 가르치는 수업을 했는데 대부분이 ‘컴맹’이었다”며 “이런 분들이 몇 시간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AI 시스템을 활용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컴퓨팅 교육 시수가 늘어나고 교사들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AI 교육혁명은 이상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정제영 교수는 미래 교원 양성시 필요한 역량 2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AI 리터러시(Literacy)다. 교사가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AI의 기본적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하이터치 교육을 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 동안 지식 전달자, 평가자의 역할로 전락했던 교사들이 학생들과 정서적 동기화를 이루고, 프로젝트 학습 같은 고차원적 교육을 이끌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 교수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역량을 기르는 것은 그동안 교사가 해왔던 일들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라며 “문제는 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았는데 교사양성 방법부터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시스템 전환과 함께 교원연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격증만 부여하는 교육대학원의 역할도 이제 끝났다, 교육대학원은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가르치는 진짜 재교육 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대학(초등)과 사범대(중등)로 폐쇄된 교원양성체계도 변화가 필요하다. 김성열 교수는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융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므로 교사들도 양성 과정에서 다양한 학문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며 “사범대생이 일반대로 갈 수 있고, 반대로 일반대생이 사범대로 올 수 있는 개방된 교류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초등교사도 “특수성 때문에 따로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요즘 학생들이 워낙 다양한 만큼 초등교사도 종합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을 만나며 개방·관용성을 경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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