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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채권 금리…화들짝 놀란 정부, 2조 투입해 진화 나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식으로 치면 거래 없이 연일 하한가를 맞는 상황이다."(한 증권사 채권 운용역)

국내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고채 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채권값은 급락세다. 채권형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후유증도 나타난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2일 국고채를 다시 사들이겠다고 진화에 나선 덕에 불안은 다소 진정됐지만, 앞으로도 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2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 주재로 '국채시장 점검 긴급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 주재로 '국채시장 점검 긴급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2조원 긴급 바이백 나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시장 금리의 지표물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108%로, 2018년 8월 2일(연 2.113%) 이후 최고치였다. 상승 속도도 빨랐다. 지난 9월 말과 비교하면 0.5%포인트 넘게 뛴 수준이다.

시장 금리가 치솟은 것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에 미국 등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우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시장에선 한국은행이 이번 달을 포함해 내년까지 금리를 3~4차례 올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내년 말 기준금리가 연 1.5~1.75%에 이른다. 단기 금리의 상승 폭이 장기물보다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채 금리 상승(채권값 하락) 전망에 채권 매수세가 실종된 탓도 크다.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채권 금리 급등은 인플레 등 우려보다 수급 요인이 크다"며 "채권시장에서 연기금·보험·은행 등 기관의 '팔자'만 있고 '사자'는 자취를 감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인과 기관의 '손절매' 물량이 금리를 뛰게 하고, 이는 또 다른 손절매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주장한 것도 한몫했다. 재난지원금을 1인당 50만원씩 추가로 지급할 경우 25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재원 마련은 국채 발행에 기댈 수밖에 없고, 시장에 국채 공급이 늘면 채권값 하락(채권 금리 상승)은 불가피하다.

시장 금리가 오르면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대출금리 지표인 5년 만기 금융채 금리(AAA등급)는 2일 연 2.538%를 기록했다. 올해 초(연 1.536%)와 비교하면 1%포인트 넘게 올랐다.

채권 투자에 대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값은 떨어지기 때문에 채권을 팔아 얻는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국내와 해외 채권형 펀드의 평균 3개월 수익률은 각각 -1.03%, -0.75%였다. 이들 펀드에서 3개월간 빠져나간 자금은 6500억원에 달했다.

치솟는 국고채 금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치솟는 국고채 금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채권 금리, 여전히 상승 압력 높아"

채권 시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기획재정부는 이달부터 국고채 발행물량을 축소하기로 한 데 이어 2일엔 2조원 규모의 긴급 바이백(매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미 발행한 국고채를 다시 사들이는 조치다. 시중에 국채 공급량을 줄여 채권값은 상승, 금리는 낮추는 효과를 낸다. 정부의 바이백 시행 발표에 금리 급등세는 다소 진정됐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038%로, 전날보다 0.07%포인트 내렸다.

정부 진화로 시장은 다소 안정됐지만, 금리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달 19~22일 채권 전문가 1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5%는 이달 채권 금리 상승을 예상했다. 금리 하락을 예상한 비율은 10%에 그쳤다.

여소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시장 안정화 조치에도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 정상화 등 주변 환경은 그대로라 금리 상승 추세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 말까지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18%, 10년 만기는 2.63%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과거 채권금리가 고점을 찍고 하락할 땐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중후반이다. 아직 상승 압력이 높다"고 했다.

정부의 바이백이 불안한 투자심리를 진정시킬 것이란 시각도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당국의 조치가 수급 우려를 완화해 과도하게 올라온 금리를 일정 부분 되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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