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입주자 70%가 잔금대출…대출 막혀 청약도 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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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강력한 대출규제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주택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시중은행 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최근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내년부터 잔금대출을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잔금대출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은행으로부터 집단으로 받는 주택담보대출이다. 실제 올해 입주를 시작한 한 아파트 단지를 조사해보니 입주자의 약 70%가 잔금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내년부터 DSR 규제가 적용되면 개인소득에 따라 대출 가능 여부가 정해지는데, 대출 한도가 올해에 비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가계대출 총량관리 대상에 잔금대출이 포함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잔금대출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입주를 시작한 몇몇 아파트의 경우 은행권에서 대출 총량 관리에 들어가면서 잔금대출이 막히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피해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에서 비싼 이자를 내고 대출을 받는 경우가 늘 것이란 얘기다.

대장동 아파트 입주자 67.9% 잔금대출 받았다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지역 모습. 뉴스1

2일 중앙일보가 부동산정보 제공업체 '세모집'에 의뢰해 올해 5월 입주를 시작한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의 판교A아파트 974가구(1단지 529가구, 2단지 445가구) 가운데 소유권 이전을 마무리한 960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입주자의 67.9%인 652가구가 잔금대출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모집'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전국의 모든 주택 및 상업 건물의 권리 분석 및 부동산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아파트에서 잔금대출을 받은 가구의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 채권최고액 합은 2858억3195만원으로 나타났다. 통상 금융기관이 주택담보대출 때 대출액의 120%를 채권최고액으로 잡는 것을 고려하면 대출총액은 2382억원 규모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아파트는 전용 84㎡ 단일 면적으로 구성됐으며, 평(3.3㎡)당 분양가는 1단지 2026만원, 2단지 2036만원이다. 분양가는 타입, 층, 유상옵션 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가구별로 7억~8억원 수준이다.

이 아파트에서 잔금대출을 받은 가구는 평균 3억6533만원을 금융기관에서 조달했는데, 이는 분양가의 40~50%다. 분양가의 절반이 넘는 4억원 이상을 잔금대출로 조달한 가구는 전체의 29.9%(287가구)로 나타났다. 제2금융권 등을 통해 5억원 이상 대출받은 가구도 15.4%(148가구)나 됐다.

정부는 대출규제를 내놓으면서 논란이 많았던 전세대출은 총량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잔금대출은 규제 대상에 넣었다. 다만 정부는 실수요자의 피해를 우려해 유예기간을 둬 내년 1월 전에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경우에는 차질없이 잔금대출이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한 관계기관 합동의 '입주사업장 점검 TF'를 발족해 잔금대출 취급 정보를 주 단위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입주한 판교 아파트 잔금대출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청약 시장 혼란 불가피

하지만 벌써부터 주택시장에서는 잔금대출 규제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내년 규제가 본격화할 것을 대비한 건설사에서 연내 분양을 위해 '분양 밀어내기' 를 준비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이달 전국에서 총 76개 단지, 총 5만4798가구 가운데 4만4947가구가 일반분양되는데, 이 같은 일반분양 물량은 지난해 11월보다 91%가량 증가한 것으로 올해 들어 월별 최대 규모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내년부터 청약 가수요가 줄고 청약 경쟁률이 떨어지면 건설사들이 수익성 등을 고려해 입지가 다소 떨어지는 지역의 신규 분양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며 "가뜩이나 부족한 주택 공급난이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무주택 실수요자의 혼란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정부의 대출규제가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을 꿈꾼 무주택 실수요자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도 "내년부터 돈을 빌릴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한 무주택자는 청약조차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청약 시장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분양 아파트의 집단대출을 막으면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