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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섭외전화 하루 수십통…세리 키즈 길 닦아주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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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첫 책을 낸 박세리.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이혜련 작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첫 책을 낸 박세리.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이혜련 작가]

박세리는 서울 강남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여러 회사가 나눠 쓰는 공간의 한 켠. 그가 2019년 만든 회사 바즈 인터내셔널의 사무실이다. “여기가 편해요. 갓 시작한 회사에 적당하고요.”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와 있던 박세리가 쾌활하게 설명했다. 몇몇 사람이 곁을 지나다 박세리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

"내 두번째 삶이 사람들에게 위안 되길" #후배, 스포츠 인재 위한 학교 설립이 꿈

21세이던 1998년 미국 LPGA 투어 첫해에 맥도널드LPGA 챔피언십 우승. 같은 해 US 여자오픈 우승을 비롯한 4승으로 신인왕 수상. 2007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LPGA 명예의전당 입회. 전설적 기록을 쓰면서 골프를 한국 국민의 관심 한 가운데에 가져다 놨던 선수다. 2일 만난 박세리는 “사회생활은 초년생”이라며 “신입 사원이 까치발 들고 파티션 너머를 기웃거리는 기분”이라고 했다. 2016년 은퇴 후 맞이한 인생 2막에 대한 설명이다.

영예롭던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목표는 분명하다. “후배들의 길을 내가 걸었을 때보다 좋은 길로 만들어 놓겠다. 언젠가 스포츠 학교를 만들어 모든 종목 선수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 최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호화로운 집, 남다르게 통 큰 선물 등으로 ‘리치 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 출연 중인 프로그램만 넷이고, 광고ㆍ강연 제의가 끊이지 않는다. “섭외 전화가 하루 수십통씩 온다”고 했다.

98년 외환위기 시절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리며 위기 극복의 상징이 됐듯, 코로나19 시대에 박세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나의 두 번째 삶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며『세리, 인생은 리치하게』(위즈덤하우스)를 출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골퍼가 안됐다면 사업가”라 했는데 정말 사업가가 됐다. 회사 상황은 어떤가.

“골프 관련 콘텐트 제작, 제품 판매, 교육까지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더이상 현역도 아닌 ‘박세리' 브랜드 하나로 시작해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살면서 사람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 덕인지 좋은 연결고리가 만들어졌고 4명으로 시작한 회사 규모도 꽤 커졌다.”

최정상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 후 사업도 순조로운데다가 방송 출연으로 사랑도 받고 있다.

“직원 전원이 주7일 근무에, 신경쓸 일도 많고 어렵다. 다만 인상 쓰고 있지 않으려 한다. 그런다고 일이 풀리지는 않으니까. 운동할 때도 그랬다. 심지어 트로피를 안고 세리머니까지 끝내고도 호텔로 들어가면서 ‘그 홀에서 왜 바보처럼 그렇게 했을까’ 생각했다. 내가 최고라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선수 생활 하며 은퇴 이후를 상상해본 적이 있나.

“언젠가 은퇴한다는 생각을 늘 했다. 특히 은퇴 3년 전부터 구체적이었다. 할 일 중 첫째가 내 이름을 건 브랜드였다. 의식주 전부에 관심이 많았고, 또 교육과 관련한 꿈이 있었다.”

실제 은퇴 후의 생활은 그 상상과 얼마만큼 비슷했나.

“시작이 쉽지 않았다. 골프는 개인 운동이기 때문에 내 위주로 시작해 끝나고 나만 돌보면 됐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면서 바뀌어야 했다. 누구를 어디에서 몇 시간 동안 만나고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특히 운동을 하면서 시간 강박관념이 생겼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시간 강박관념이라면?

“20년 넘게 알람 시계보다 먼저 눈을 떴고 지금도 그렇다. 경기에 늦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금도 어떤 약속이든 일찍 움직이고, 먼저 도착해 있어야만 한다. 또 미팅이 정해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불안하다. 선수 시절의 습관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하는 중이다.”

1998년 US 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가 해저드 옆에서 친 ‘맨발의 투혼’ 장면. [중앙포토]

1998년 US 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가 해저드 옆에서 친 ‘맨발의 투혼’ 장면. [중앙포토]

영광스럽던 20ㆍ30대를 지나 새로운 인생이다. 언제가 더 행복한가.

“그때는 영광인지도 몰랐다. 대회 준비, 대회 끝, 이동, 다시 대회 준비가 반복됐다. 한 치의 여유도 없었다. 기쁨ㆍ슬픔ㆍ아픔 다 경기장에서 겪었고, 모든 추억은 골프로 시작하고 끝났다.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이다. 기대감과 걱정이 겹치지만 멈춰있진 않으려 한다. 나라는 인간이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선수 시절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했다. 지금 박세리를 지탱하는 꿈은 무엇인가.

“그림은 크다. 교육과 훈련이 같이 되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 골프뿐 아니라 타 종목 선수들이 체계적 훈련을 받으며 다른 공부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여유와 휴식도 물론 주고 싶다.”

개인 운동인 골프를 하면서 ‘주장’과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 계기는 뭘까.

“내 꿈을 꾸면서 골프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누군가의 꿈이 됐더라. 그때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1세대라고들 하시는데, 2세대가 없었으면 내 삶이 굉장히 달라졌을 거다. ‘세리 키즈’ 덕에 나도 많은 것을 알게 됐고 할 수 있었다. 이제 후배들의 길을 닦아주고 좋게 만드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예능 섭외도 많지만 이런 방향성이 맞는 것으로 골라서 출연하고 있다.”

골프는 종종 치는지.

“골프는 멀리한다. 희한하게 미련도 그리움도 없다. 후회 없이 은퇴하리라는 다짐이 그대로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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