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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속 한국, 뉴요커의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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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지난달 26일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하 오겜)’ 이벤트가 열렸다.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가 열혈 시청자 80명을 선발해 달고나 뽑기, 딱지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드라마 속 게임을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했다.

주로 20~40대인 참가자들이 ‘오겜’을 접한 경로는 크게 세 부류였다. BTS나 블랙핑크 등 K팝 가수 팬이 드라마로 확장한 경우,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빛난 영화 ‘기생충’을 본 뒤 관심을 갖게 된 경우, ‘오겜’이 처음 접한 한국 문화상품인 경우였다.

이들은 한국 문화를 즐기지만,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이야기를 백지처럼 흡수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참가자는 드라마를 보고 나니 “한국에 살지 않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노동자 계층의 생활은 힘겹지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미국 뉴욕에서 ‘오징어 게임’ 팬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지난달 26일 미국 뉴욕에서 ‘오징어 게임’ 팬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공교롭게도 해외에서 초대형 성공을 거둔 ‘오겜’과 ‘기생충’은 비슷한 생각 거리를 던진다. 빈부 격차와 양극화, 소득 불평등, 계급 충돌, 계층 간 이동 제한, 무한 경쟁, 청년 실업, 기회 박탈 같은 키워드가 두 작품을 가득 메운다. 드라마와 영화로 한국을 배우기 시작하는 이들에게 한국 이미지는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두 작품이 주목받으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지니 계수로 본 소득 불평등 상위권(39개국 중 11위)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사실 미국(6위)은 한국보다 소득 불평등이 더 심하다. 그런데도 미국인이 디스토피아로 흐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풍성한 일자리 때문일 것이다.

미국 실업률이 8.5%까지 치솟은 2011년 미국에서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일어났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 3.5%까지 내려갔고, 지금은 임금을 아무리 올려준다 해도 일할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구인난에 시달릴 정도다.

행사장에서 만난 다른 참가자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경쟁에 내몰렸는지 알고 놀랐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청년의 삶이 고단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학 졸업생들은 수천 또는 수만 달러씩 학자금 대출을 떠안는다. 하지만 “미국은 일자리를 찾기 쉬워서 해결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문화 제작자들이 스토리텔링과 연출력, 세련된 영상미와 무대 미술 실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제 한국을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것은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