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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갑 of 갑’ 美 SEC와 싸우는 韓암호화폐 설계자, 왜?

중앙일보

입력 2021.11.01 19:30

업데이트 2021.11.01 20:28

테라폼랩스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

테라폼랩스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

전 세계 암화화폐 중 시가총액 12위(약 20조원)에 오른 암호화폐 루나(LUNA). 루나를 만든 테라폼랩스의 권도형(31) 공동창업자(CEO)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을 시작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갑(甲) 중의 갑’으로 통하는 SEC가 자신에게 발부한 소환장이 적법하지 않다는 이유다. SEC는 왜 한국 국적의 권 대표에게 칼날을 겨눈 걸까.

무슨 일이야?

● 지난달 22일 권도형 대표가 미국 연방 뉴욕남부지법(SDNY)에 SEC를 고소했다. 8월 미국 뉴욕의 한 암호화폐 분석업체 행사에 연사로 참석했다가 SEC가 고용한 민간 서비스업체로부터 소환장을 발부받았기 때문. 이 업체 관계자는에스컬레터를 내려오던 권 대표에게 미러 프로토콜 관련 자료 제출 및 워싱턴DC(SEC 본부)의 증언 요구가 담긴 소환장을 전달했다.
● 권 대표의 변호인 측은 소환장이 '공개장소에서 부적절하게 전달됐다'며 적법성 문제를 제기했고, 한국 국적인 권 대표의 관할권 문제를 들어 SEC의 소환장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도형은 누구? SEC는 또 누구?

● 스탠포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권도형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서 일하다 2015년 애니파이(와이파이 공유서비스)를 창업했다. 2018년엔 신현성 티몬 창업자와 블록체인 기술기업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 블록체인 핀테크 '테라 프로젝트'를 글로벌 규모로 성장시키며 블록체인 업계의 큰 손으로 유명해졌다. 2019년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에 꼽히기도.
● 권 대표가 소송을 낸 SEC는 주식·파생상품 등 증권 관련 핵심 규제기관. 최근 암호화폐 시장을 바짝 들여다보고 있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나 탈중앙화 거래소(DEX) ‘유니스왑’을 조사한 바 있고, 비트코인 선물상장지수펀드(ETF)도 여기서 승인했다.

테라폼랩스의 합성자산 거래 플랫폼 미러 프로프로토콜.

테라폼랩스의 합성자산 거래 플랫폼 미러 프로프로토콜.

SEC가 왜 소환장을?

● SEC는 테라의 디파이(DeFi·탈중앙 금융) 프로젝트인 ‘미러 프로토콜’이 미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러는 테라의 스테이블코인 UST(알고리즘 기반으로 가격 변동성을 없앤 코인)와 미국 상장 기업의 주식을 연결한 합성자산(mAssets)을 누구든 생성하고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 미러는 현실을 '거울(Mirror)'처럼 반영한다는 의미. 그래서 미러 플랫폼 참여자들은 애플·테슬라·넷플릭스 등 기업의 실제 주가와 같이 움직이는 토큰(mAAPL, mTSLA, mNFLX)을 발행하고 유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미러 플랫폼에 예치된 자산 규모만 16억 달러(약 1조 8800억원), 합성자산(mAsset)의 시가총액은 약 5000억원이다.
● SEC는 이 미러프로토콜에 ‘증권 성격이 있다’며 지난 5월부터 테라폼랩스에 참고인 조사를 요구했다고 한다. 권 대표는 기밀 조사를 약속받고 지난 7월 온라인 조사에 5시간 가량 응했다. 하지만 9월 들어 SEC측은 강제 집행조치를 포함한 제재 가능성을 통보하고 소환장을 발부했다.

미러프로토콜에서 확인가능한 미국 주식기반 합성자산.

미러프로토콜에서 확인가능한 미국 주식기반 합성자산.

이게 왜 중요해?

규제 기관 vs 탈중앙 금융의 충돌.
● 자본시장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기관의 '디파이' 규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지난 7월 "증권성이 있는 모든 플랫폼은 분산형이건, 중앙집중식이건 증권법의 영향을 받고 우리 규제의 테두리에 있다"고 말했다. 겐슬러 위원장의 이 경고 이후, 세계 최대 중앙 집중형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올 4월부터 운영하던 주식 토큰을 즉시 종료했다.
● 이번엔 미러 프로토콜 차례다. 문제는 중앙집중형 바이낸스와 달리, 미러는 300만개 이상의 커뮤니티(익명 운영)가 합의 운영(Govern)하는 구조라는 것. 누구에게 '책임'을 따져야할 지가 불분명할 수 있다. 테라폼랩스나 권 대표를 압박해도 미러를 수정하거나 프로젝트를 종료할 방법이 없다. 탈중앙 거래소 유니스왑 조사도 SEC가 칼을 빼들긴 했지만, 개발사(유니스왑랩스) 조사말고는 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자본시장은 SEC의 절차상 오류를 지적한 디파이 기업가와 SEC의 맞대결 자체도 주목하고 있다. 공은 일단 법원으로 넘어갔다.

테라폼랩스, 권 대표의 입장은?

● SEC의 조사에 협조하며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SEC가 무리하게 소환장을 발부했다고 주장한다. 소장에서 권 대표 변호인은 "SEC가 제공이 불가능하거나 범위가 비현실적이고 부적절한 서류 제출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법 집행 과정에서 SEC의 실행규칙(150b, 소환은 변호인을 대리하는 자에게 전해져야 한다)을 위반해 소환장 자체가 무효라고도 주장한다.
● 권 대표는 지난달 25일 올마켓 서밋 인터뷰에서 "테라폼랩스가 (미러) 프로토콜의 제작자이긴 하지만, 소유권과 운영은 커뮤니티로 넘어가 있다"며 "규제 당국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분산된 미러 프로토콜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SEC가 분산형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
● 그는 지난달 29일 미국 블록체인 전문 팟캐스트 ‘언컨펌드’에도 출연해 "다수의 법이 상당히 낡았고 그 프레임워크는 글로벌에서 제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며 "무엇이 신뢰할 수 있는 탈중앙화 자산인지, 증권을 구성하는 건 무엇인지 결정하기 위해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규제기관과 (암호화폐) 업체들은 함께하기 힘들 것"이라고도 말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10월 25일 올마켓서밋 인터뷰 중. 야후 파이낸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10월 25일 올마켓서밋 인터뷰 중. 야후 파이낸스.

앞으로는

당장 암호화폐 시장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소송이 알려진 22일과 비교해 11월 1일 현재 루나·미러 같은 테라 생태계 주요 암호화폐 가격은 소폭 상승했다.
● 우려는 남아 있다. 미러 프로토콜이 테라 생태계에서 3~4번째로 큰 예치자산(TVL)인만큼, 향후 소환장 적격성 소송에서 패하고 SEC의 본격적 조사가 진행되면 테라 생태계 전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 SEC와 법정에서 싸우는 암호화폐는 더 있다. 한때 비트코인·이더리움과 3대 가상자산으로 꼽힌 리플의 암호화폐(XPR)는 증권성 여부를 두고 1년 넘게 SEC와 소송 중이다. 바이낸스는 주식토큰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겐슬러 위원장은 지난달 25일에도 "디파이는 혁신적이지만 규제의 보호 없이는 불행한 종말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테라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조사로 불똥이 튀면 싸움이 커질 수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EC는 최근 미 재무부의 '가상자산 보고서'에 스테이블코인 규제 감독기관으로 명시됐다. SEC는 미국 달러 가격과 연동된 USDT(테더의 스테이블 코인, 시총 4위)나 USDC(써클의 스테이블코인) 등에 대한 세부 규제를 만들 예정이다. 이번 소송 여파로 테라의 스테이블코인(UST)이 SEC의 규제 레이더에 일찍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모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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