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단 2분 조우도 브리핑…靑, '교황 방북' 띄우기 속내

중앙일보

입력 2021.10.31 13:12

업데이트 2021.10.31 14:37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다시 방북을 제안했다. 코로나19 국면 이후 흔치 않은 대면 정상외교의 기회를 ‘교황 방북’ 띄우기에 활용하는 데 여념이 없는 분위기다.

文 “교황 방북, 한국인 기대 커”

29일(현지시간) 문 대통령은 바티칸 교황궁 2층 교황의 서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교황님께서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라며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평화를 위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북한에) 갈 수 있다”고 답했다.

이튿날인 30일(현지시간)에는 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방북을 요청한 사실을 직접 설명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로마 누볼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 환영식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교황이)한반도 평화를 위해 축원해 주셨고, 초청을 받으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반가운 소식”이라며 “(한반도 문제 해결에)진전을 이루고 계시다”고 답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지지한 것처럼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전 정상 라운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누볼라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전 정상 라운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청와대의 절박함을 부각하는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2~3분간 ‘조우’를 한 것에 불과했다. 통역 등을 고려하면 행사장에 선 채로 매우 짧게 인삿말 등의 이야기를 나눈 셈인데, 서면 브리핑까지 발표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백악관은 해당 조우에 대해 보도자료를 발표하지 않았다.

교황청은 “한반도 평화 노력”만

이와 관련, 교황청 공보실은 문 대통령의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 결과 보도자료를 내면서 방북 관련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회담 중 “남북 간 대화와 화해를 증진하는 데 있어 특별하고 부단한 노력”에 대한 사의 표시가 이뤄졌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노력과 선의에 대한 희망”을 공유했다고 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을 같은 날 만났는데,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에 교황께서 G20 정상 중 두 분을 연이어 만나셨기 때문에 (종전선언이나 방북과 관련해) 의미있는 역할을 해 주실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백악관과 교황청의 발표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갖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갖고 있다. 뉴스1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전 세계의 빈자와 기아, 분쟁, 탄압에 고통받는 이들을 교황이 대변하고 있는데 감사를 표했으며, 백신 공유와 평등한 세계 경제 회복 등을 통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양 측은 코로나19에 맞서 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의 전념과 이민자 및 난민을 주제로 협의했다. 종교 및 양심의 자유 등 인권 보호 역시 언급됐다”며 “정치적 협상을 통한 세계 평화 증진에 대해서도 대화했다”고 밝혔다.

北, 직접 입장 밝힌 적 없어

물론 보도자료에 없다는 게 꼭 관련 논의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교황 방북’과 관련해 청와대의 드라이브만 눈에 띄는 모양새다.

게다가 당사자인 북한의 교황 초청 의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2018년 교황 알현 때도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한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극적 환대 의사를 받았다”는 문 대통령의 ‘전언’만 있었을 뿐, 김 위원장 스스로 이런 의사를 공개한 적은 없다.

지금은 비핵화 대화가 교착 국면을 맞아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또 교황 방북에 집중하는 건 임기 말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 북한이 고립을 탈피하고 나올 명분을 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임기 마지막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 대통령이라는 외교적 레거시를 남기려는 생각과 북한을 어떻게든 설득해보려는 절박함이 강해 보인다. 다만 통상적인 덕담에 가까운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축복처럼 해석하는 등 과한 행보는 오히려 지나친 아전인수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선 등 국내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 띄우기가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용은 ‘종전선언 협의’ 집중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회담애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외교부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회담애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외교부

또다른 트랙에서는 문 대통령을 수행 중인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주요국들과의 종전선언 협의에 집중하고 있다. 정 장관은 29일(현지시간)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30분 남짓 회담했다.

외교부는 회담 뒤 보도자료에서 “양 측은 종전선언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을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 솔직하고 심도 깊은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왕 위원은 중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하며, 한반도의 정치적 안정을 위한 모든 제안과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했다.

정 장관은 31일(현지시간)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은 당초 30일(현지시간)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본회의 지연 등의 이유로 하루 늦춰 일정을 다시 조율 중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정 장관과 블링컨 장관 간 만남은 약 40일 사이 벌써 세 번째다. 이번 회담에서도 종전선언 관련 논의가 주된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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