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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시까지 열공할 수 있게 됐다”…숨통 트이는 노량진은 지금

중앙일보

입력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공시촌에 위치한 한 스터디카페 모습.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26명 가량의 학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양수민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공시촌에 위치한 한 스터디카페 모습.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26명 가량의 학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양수민 기자

“공부하다가 10시만 되면 집에 가야 하니 노량진의 신데렐라나 다름없었죠.”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유현(26)씨는 지난 11개월간의 수험 생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을 2년 차 ‘공시생’이라 소개한 김씨는 “시험은 다가오는데 스터디카페가 일찍 문을 닫아 부담이 컸다”며 “10시에 짐을 싸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9시부터 집중이 안 돼서 불안했다”고 말했다.

10시면 책 덮어…“나에겐 인생 걸린 문제”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시촌 모습. 학생들이 신호를 건너기 위해 대기 중이다. 양수민 기자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시촌 모습. 학생들이 신호를 건너기 위해 대기 중이다. 양수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는 ‘노량진의 신데렐라’들에게도 가혹한 시간이었다. 노량진은 각종 공무원 시험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이 밀집해 이른바 ‘공시촌’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오후 10시가 되면 책을 덮고 집으로 향해야 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강화로 24시간 운영하던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는 그동안 오후 10시면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은 코로나19 감염보다 공부하기 어려웠던 현실이 더 무서웠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직을 준비 중인 수험생 장모(28)씨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시험 준비를 시작해 마음이 더 급했다”며 “다른 사람들한테 10시 제한이 좀 불편한 일이라면 나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고 말했다. 같은 직렬을 준비 중인 오모(24)씨에게도 강화된 방역 수칙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씨는 “집에 가족들이랑 있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며 “집에 일찍 가야 해 가족들 눈치가 보였다는 친구들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10시 제한’이 풀리자 수험생들 “여유 생겼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공시촌에 위치한 한 스터디카페의 입구.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이용수칙과 함께 오후 12시까지 운영시간이 연장됐다는 안내가 붙어있다. 양수민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공시촌에 위치한 한 스터디카페의 입구.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이용수칙과 함께 오후 12시까지 운영시간이 연장됐다는 안내가 붙어있다. 양수민 기자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신데렐라’ 생활에도 변화가 생긴 건 지난 18일부터였다.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의 준비 기간으로 일부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서다. 거리두기 4단계 지역의 독서실과 스터디카페 등의 운영 시간이 기존 오후 10시에서 자정까지로 연장됐다.

지난 25일 운영시간이 자정으로 연장된 이후 찾은 노량진의 한 스터디카페는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좌석 절반 이상이 차 있었다. 수험생 배예린(26)씨도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배씨는 “자정까지 운영시간이 늘어나서 공부를 더 오래 할 수 있게 됐다”며 “조금이지만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해당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운영시간 제한이 풀리고 20명 정도는 자정까지 공부하다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로 함께 공부하는 문화 부활했으면”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코로나19로부터 일상을 회복한다는 ‘위드 코로나’ 정책을 본격 시작한다. 노량진의 공시생들은 “위드 코로나와 함께 ‘함께 공부하는 문화’도 부활하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학생들끼리 모여 하던 소규모 공부 모임도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홍현수(25)씨는 “코로나19로 같이 공부하는 분위기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며 “확실히 공부 모임을 구하는 데 제약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조승은(22)씨는 “만나서 하는 공부 모임들이 다 없어져서 오픈 채팅에서 겨우 비대면 스터디를 구했다”며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 다른 학생들과 직접 만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의 기대 속에서 ‘위드 코로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의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는 강조한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위드 코로나는 우리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길”이라며 “시민들은 마스크 착용을 필수로 지키고 정부는 위드 코로나 대응 역량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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