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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다음 타자 대기중…미래 대유행 시한폭탄된 이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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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2㎡ (0.03평).
닭 등 가금류를 밀집해 키우는 미국 공장식 농장의 산란계 케이지 크기다. A4 용지(0.06㎡)만 한 이 공간이 미래 전염병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치명률 높은 8가지 유형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 세계 공장식 농장을 돌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고 보도했다.

수만 마리의 닭을 밀집 사육하고 있는 중국 헤이룽장성의 한 농가. [로이터=연합뉴스]

수만 마리의 닭을 밀집 사육하고 있는 중국 헤이룽장성의 한 농가. [로이터=연합뉴스]

공장식 농장 발 전염병의 위험이 감지된 건 지난 2월이었다. 러시아에서 H5N8형 AI의 인간 감염 첫 사례가 보고되면서다. 당시는 2년 만에 발병한 H5N8형 AI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다. 피해국 중 한 곳이었던 러시아는 감염자까지 나오면서 비상이 걸렸다. 감염자는 7명. 사람 간 전파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다시 경고음이 울린 건 근래 들어서다. 이번엔 중국 내 AI 감염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는 WHO의 발표가 나왔다. 중국은 올해 21명의 H5N6형 감염 사례를 보고했는데, 현재까지 6명이 숨지는 등 높은 치명률을 보인다. WHO는 “인간 간 전파는 없었다”고 발표했지만, 전례 없이 높은 감염자 수에 인간 간 전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르헨티나의 한 농장에서 밀집 사육하고 있는 가금류. [로이터=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한 농장에서 밀집 사육하고 있는 가금류. [로이터=연합뉴스]

이 두 사례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감염자 상당수가 공장식 농장 관계자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미래 전염병의 거점으로 공장식 농장을 지목하는 이유다. 티스 퀴켄 네덜란드 에라스뮈스 대학 병리학 교수는 “이번 H5N6형의 경우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며 “사람에까지 전파될 만큼 농장 안 가금류 사이에서는 토착화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햇볕 없는 곳에서 밀집 사육…바이러스에 최적의 환경

공장식 농장은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출발했다. 초창기에는 육류의 대량 생산을 이끌며 농가의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며 비관적 전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가축 전염병 급증으로 농가의 피해가 커지면서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인수공통전염병 발병 경고가 잇따랐고, 이 우려는 불과 10여년 사이 현실이 됐다. 2003년 아시아에서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H5N1형 AI’를 시작으로 2009년 전 세계를 휩쓴 ‘신종인플루엔자 A(H1N1)’, 네덜란드서 발병한 ‘Q 열병’까지 돼지·소·양 등 가축에 의해 전염되는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했다.

중국 저장성 한 농장에서 사육하는 아기 돼지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저장성 한 농장에서 사육하는 아기 돼지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런 전염병이 공장식 농장에서 시작됐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곳이 바이러스가 생존하기에 좋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가축을 밀어 넣는 방식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꼽힌다. 창문이 없는 농장에는 바이러스 박멸을 위해 필요한 햇볕과 바람도 없다.

오히려 분뇨 더미가 만드는 암모니아 가스에 호흡기 기능이 떨어져 감염에 더 취약해진다. 스트레스도 문제다. 좁고 더러운 철창에 갇혀 먹거나 낳거나를 반복하니 면역 체계는 무너진다. 서로를 쪼아대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닭도 있다. 질병을 막기 위해 무분별하게 투여하는 항생제는 내성을 만들어 돌연변이 가능성을 높였다.

야생→가축→인간 바이러스의 진화, 인류에 대재앙 

2008년 불가리아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관박쥐. [세계자연기금]

2008년 불가리아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관박쥐. [세계자연기금]

더 큰 문제는 야생 바이러스의 출현이다. 파괴된 자연에서 쫓겨나 인간과 가축의 세계로 건너온 야생 바이러스가 공장식 농장에 머물며 더 치명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2002년 사스, 2012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19가 그런 사례들이다. 이들의 공통 병원균인 ‘코로나바이러스’는 모두 야생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자연을 떠나 가축 농가로, 사람으로 이동하며 모양을 바꾸고, 세력도 넓혔다.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 박사에 따르면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숙주)에 기생해야 하는 야생 바이러스에게 공장식 농장은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 됐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가축 수만 마리가 모여있다는 건 바이러스에게는 언제든 새 숙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월러스 박사는 “야생을 떠난 바이러스는 공장식 농장에도 완벽하게 침투하는 등 산업화 환경에 적응을 마쳤다”며 “이제 공장식 농장은 미래 전염병이 들끓는 저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3차원적인 형태. 튀어나온 부분이 인체 세포에 달라붙는 곳이다. [중앙포토]

메르스 바이러스의 3차원적인 형태. 튀어나온 부분이 인체 세포에 달라붙는 곳이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다음 타자가 될 미지의 전염병을 막기 위해선 밀집 사육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중보건 역학자 마이클 그레거는 “공장식 축산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 세계는 언제 발병할지 모를 신종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연을 거스르는 환경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건 인간과 동물 간 관계에 전례 없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이는 코로나19를 뛰어넘는 대유행의 폭발을 불러올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미 공장식 농장에는 사람에게 옮겨갈 준비를 마친 전염병이 많다”며 “야생동물→가축동물→인간을 돌고 돌며 진화하는 바이러스가 결국 인류의 대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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