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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왕세자 "왕따 만든다"던 바이든의 유가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78)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세자(36)의 ‘어색한 상견례’는 성사될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간) 바이든 미 정부의 사우디 정책에 “문제적 왕세자의 망령”이 드리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권ㆍ민주주의 문제로 사우디에 비판적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31일부터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빈살만 왕세자를 환대하는 것으로 그의 존재를 인정할지, 아니면 정치적 손실을 감안하고 회피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제기된다면서다. 현재 사우디의 국왕은 85세의 살만 왕이지만, 그의 아들인 빈살만 왕세자가 거의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취임 이후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는 국왕”이라며 빈살만을 의도적으로 냉대해왔던 바이든이지만, 미 정부로서는 그를 계속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 되고 있다. 최근 치솟는 국제 유가 안정화를 위해 세계 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사우디를 빼놓을 수 없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21일 미 CNN 방송의 타운홀 인터뷰에서 “외교 정책과 연관된 유가 문제는 단순히 비용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며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중동 사람들이 많다. 내가 대화할지 확신이 안 선다”고 밝혔다. 이어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데, 사우디와 다른 문제들에 약간은 달려있다”며 사우디를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빈살만 왕세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2018년 10월 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컸다. 사우디 국적의 카슈끄지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됐다. 카슈끄지 살해 사건과 관련해 빈살만 측은 “연루된 바가 없다”며 극구 부인했지만, 미 정보국은 그가 배후에 있었다고 결론 지은 상태다.

2019년 민주당 토론회에서 바이든은 카슈끄지 사건을 거론하며 “사우디에 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더이상 사우디에 무기를 팔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을 국제적으로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도 강조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최근에는 캐나다로 망명한 전직 사우디 정보국의 2인자 사드 알자브리가 “빈살만은 사이코패스”라는 폭로를 더했다. 알자브리는 이달 미 CBS 방송의 ‘60분’에 출연해 “빈살만이 2014년 러시아에서 입수한 독반지로 당시 국왕이던 압둘라 왕도 죽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빈살만이 “나는 악수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면서다. 살만 현 국왕은 2015년 1월 이복형 압둘라 국왕이 자연사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알자브리는 또 “카슈끄지가 사망했던 때와 비슷한 시기 나 역시 살해 위협을 받았다”며 “캐나다로 사우디 요원들을 파견해 나를 살해할 것이니 사우디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 주재 사우디 대사관은 “알자브리는 믿을 수 없는 전직 관리”라며 “자신의 금융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잘못된 것을 조작하고 만들어냈다”며 제기된 의혹을 일축했다.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요동치는 국제 유가다. 코로나19 경기 회복을 위해선 유가 안정이 필요한데, 이달 들어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하는 등 국제 유가는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배경으로 세계 2ㆍ3위 산유국인 사우디와 러시아가 생산량을 줄여 담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석유 생산은 미국(17.1%), 러시아(12.6%), 사우디(12.5%) 순으로 많다.

사우디ㆍ러시아는 지난해 초에는 석유 생산량을 대폭 푸는 방향으로 ‘석유 치킨게임’을 벌인 적이 있다. 이 때는 유가가 장중 10달러대로 폭락해 이들 국가에 비해 채산 비용이 높은 미국 셰일가스 기업들이 줄도산 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빈살만과 푸틴 양쪽에 전화를 걸어 중재에 나섰다.

빈살만 측에선 트럼프 정부 때와 같은 구도를 바랄 수 있다. 정작 바이든 대통령이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우디 측 고위 관계자들과 면담했지만, 글래스고 회의를 앞두고 바이든·빈살만의 회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OPEC+를 상징하는 두 인물: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왼쪽)와 러시아 블라드리미 푸틴 대통령.

OPEC+를 상징하는 두 인물: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왼쪽)와 러시아 블라드리미 푸틴 대통령.

예멘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제럴드 페이어스타인은 가디언에 “MBS(빈살만)은 비판에 민감한 것으로 유명하다”며 “그가 갖고 있는 지렛대(석유)로 바이든 행정부의 비판 기조를 뒤집으려 할 것인가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행사에서 정상들의 껄끄러운 만남은 종종 일어나곤 한다. 2014년 6월 크림반도 사태 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영국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어색하게 한 공간에 머무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2009년 G8(주요 8개국) 회의에 아프리카연합 의장으로 참석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와 어정쩡하게 악수하는 모습이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카다피는 2년 뒤 민중 봉기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지원을 받은 시민군 손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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