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26년 전 부여 간첩사건의 상처
1995년 10월 24일 오후 충남 부여경찰서. 당시 순경이던 송균환(54) 경감과 황수영(55) 경위가 안내방송을 듣곤 깜짝 놀랍니다. ‘간첩이 나타났으니 총을 받아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겁니다.
송 경감 등은 M16과 카빈총을 챙겨 동료 경찰 14명과 함께 경찰 트럭에 올랐습니다. “이런 시골에 무슨 간첩이라고”, “훈련 상황이겠지”라는 말도 주고받았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해마다 한 차례 치르던 ‘독수리 훈련’의 첫날이었습니다.
출동 장소인 부여군 석성면에 이르자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오후 4시가 넘어서면서 정각사 인근에 땅거미가 지고 음산한 기운이 감돈 겁니다. 당시 총을 들고 2인 1조로 산기슭에 매복한 송 경감 일행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이때 5m 정도 떨어진 숲속에서 정체불명의 괴한 2명이 나타납니다. 정각사 부근에서 총을 쏘며 달아난 간첩 김동식과 박광남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날 고정간첩과 만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검문을 하자 야산으로 도주했답니다.
"권총 총구가 대포 포신만큼 커 보여"
이들과 가장 먼저 마주친 경찰은 송 경감과 나성주(당시 30세) 순경입니다. 간첩 김동식이 먼저 권총을 쏘자 송 경감 등도 실탄 10여발을 정신없이 발사합니다. 당시 김동식의 권총에는 소음기가 달려 있어 ‘틱 틱’하는 발사음이 났다고 합니다. 송 경감은 “소음기를 단 총구가 대포 포신만큼 커 보였다”고 회상합니다.
총성이 나자 인근에 매복했던 황 경위와 장진희(당시 31세) 순경이 달려옵니다. 이를 본 김동식 일당은 달아났지만 이미 나성주 순경이 총을 맞고 쓰러진 뒤였습니다. 나 순경은 결국 일주일 뒤 순직했답니다.
송 경감이 나 순경을 돌보는 사이 황 경위는 장진희 순경과 함께 일당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산을 타고 달아나던 김동식은 도랑으로 빠진 후 장 순경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그가 갖고 있던 마지막 실탄 한 발에 장 순경은 복부를 맞고 쓰러져 순직했습니다.
“빗발치는 총알, 간첩과 육탄전”
이를 본 황 경위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합니다. 황 경위가 “총 버려”라고 외친 후 실탄 1발을 발사하자 김동식은 다리를 잡고 쓰러집니다. 황 경위는 김동식 옷을 잡아 도랑으로 떨어트린 다음 20여분간 육탄전을 벌인 끝에 김동식을 제압합니다. 달아났던 박광남은 사흘 뒤 인근 야산에서 사살됐습니다.
황 경위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김동식은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다부진 몸이어서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답니다. 동료 경찰이 쓰러진 것을 본 후 무조건 그를 생포하거나 사살해야겠다는 각오로 온 힘을 다해 싸운 겁니다. 당시 공로로 송 경감과 황 경위는 각각 인헌무공훈장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입은 부상 후유증과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동료를 잃은 충격에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탓입니다. 사건 후로는 집에 들어갈 때 낯선 신발이 있는지부터 살필 정도가 됐답니다.
실탄 어깨 박힌줄 모르고 13년 살아
송 경감은 사건 당시 어깨에 총알이 박힌 줄도 모르고 13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총격전 당시 김동식이 쏜 총알 1발이 어깨에 박혔는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겁니다.
송 경감은 “날씨가 흐리거나 추운 날이면 가끔 어깨가 결리고 욱신거렸지만, 단순 후유증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사건 발생 13년이 흐른 2008년 12월에야 정밀검사를 통해 실탄 제거 수술을 받았답니다.
송 경감은 몸에 박힌 총탄 제거보다 올해 더 뜻깊은 일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26주년 추모식을 앞두고 지난 16일 황 경위와 함께 경찰충혼탑에 참배한 겁니다. 사건 현장 인근에 세워진 충혼탑은 고(故) 장진희·나성주 경사(1계급 특진)를 기리기 위해 1997년 12월 정부가 건립했답니다.
26년 만에야…함께 참배한 두 경찰관
이날 참배 현장에서 송 경감이 한 말은 또다른 울림을 주는 듯합니다. 그가 13년이나 총탄이 어깨에 박힌 채 살게 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교전 중 어깨에 상처가 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진) 장진희 순경 모친을 뵀다. 죄인 같은 심정이어서 곧장 병원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