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연 감독의 ‘한창나이 선녀님’은 강원도 삼척에 살고 계신 임선녀 할머니의 일상을 담는다. 손주들이 있으니 분명 할머니가 맞지만, 그의 하루하루는 노인의 조용하고 잔잔한 삶이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소를 돌보고, 먼 길을 달려가 한글을 배우고,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고, 지붕 위에 생선을 말리고, 새로 짓는 집 건축 현장에서 못질까지 하는, 노동으로 가득 찬 시간이다. ‘한창나이 선녀님’은 나이와 상관없이 말 그대로 ‘한창’(어떤 일이 가장 활기 있고 왕성하게 일어나는 때)인 주인공을 통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이 다큐멘터리엔 수많은 사연이 있지만, 가장 흥미로운 건 새집을 짓는 주인공 모습이다. 진작부터 새집에 살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던 임선녀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후 결심한다. 결혼한 후 50년 동안 살았던 낡은 집을 버리고 직접 지은 새집으로 옮기기로 한 것. 이 결심은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의미를 넘어선다. 주인공은 그 집에 있었던, 시간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사물들과 이별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옷 한 벌이 등장한다. 시집올 때 입었던 저고리다. 이삿짐 정리를 하던 중 발견한 주인공은, 새집으로 가기 전에 그 옷을 태운다. 종교적 느낌마저 드는 인상적 장면. ‘한창나이 선녀님’은 어쩌면 칠순이 다 된 나이에 어떤 깨달음을 얻은 한 노인의 초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