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북섬의 로토루아(Rotorua)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지열 도시’다.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지열 활동이 왕성하다. 덕분에 끓어오르는 머드 풀,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폭포, 뜨거운 물과 수증기를 끊임없이 분출하는 간헐천 등 기상천외한 체험 거리가 가득하다. 온천만 500개가 넘는다.
남다른 환경 덕에 로토루아에는 독특한 음식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항이(Hangi)가 대표적이다. 고기와 채소를 지열과 증기로 익혀 먹는 마오리족의 전통 음식이다. 크게 구덩이를 판 뒤 뜨끈하게 달군 돌을 촘촘히 쌓고, 돼지고기와 닭고기, 감자, 당근 등을 담은 나무 찜통을 올린 다음, 나뭇가지나 잎으로 열을 가둬 푹 익혀 먹는다. 조리시간은 보통 3~4시간. 마오리식 전통 슬로푸드인 셈이다. 대략 1000년의 역사를 헤아린다.
맛은 어떨까. 일단 뚜껑을 여는 순간, 참을 수 없는 훈제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고기는 기름기가 짝 빠져 담백하고 부드럽다. 어떤 나무, 어떤 잎, 어떤 식재료를 얹느냐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달라진다.
요즘은 뉴질랜드 전역에서 항이를 맛볼 수 있다. 오븐을 비롯해 가열 조리기구가 발달하면서 현대식 항이 조리법이 여럿 생겼다. 3년 전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에 갔을 때는 항이를 내는 길거리 음식점도 목격했다. 주문하는 즉시 조리해내는 패스트푸드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단출한 노점이지만, 조리 방식은 전통 그대로였다. 셰프가 노점 옆에 큰 구덩이도 파놓고, 오픈 3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그날의 항이를 조리했다. 꼬박 3시간을 조리하는 길거리 음식. 뉴질랜드에서 난생처음 겪은 음식 문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