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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선수가 훈련할 때 치는 건 샌드백 아닌 펀칭백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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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호 28면

콩글리시 인문학

“지금 드신 게 뭔지 아십니까?” 밥 먹는 중에 돌발 질문이 나왔다. “글쎄요, 계란 흰자 같기도 하고….” “그거 바로 원숭이 골 요리입니다.” “예 ~ 잇!” 이건 내가 겪은 실화다. 대만 정부 신문국(우리 공보처에 해당한다) 초청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했을 때 이야기다. 방송사 사장이 우리 일행을 식사에 초대했는데 이런 칙사대접을 받아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12코스 요리에는 애저도 들어 있었다. 1개월쯤 된 새끼돼지 바비큐가 애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요리가 조선 중엽부터 등장했다. 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다 보니까 어미 품에서 젖을 빨다 압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까워서 이를 삶아 먹었다. 그 뒤 애저가 보양식으로 알려지자 고급 요리로 격상됐다.

다음날 우리는 현지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여러 식재료 가운데 우리를 충격에 빠트린 것은 큰 얼음 위에 널려 있는 지렁이였다. 큰 지렁이가 마치 개불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음식은 문화다. 어떤 나라에서는 전갈이, 어떤 곳에서는 굼벵이가 단백질 원이 되고, 어떤 지역에서는 개구리가 보약이 된다.

보신탕 논란이 재연(再燃)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대통령이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한마디 던진 것이 발단이었다. ‘떳떳하게 먹자는 광고까지 나왔던 개고기 왜 샌드백(sandbag)이 됐나.’ 어느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샌드백은 콩글리시다. 샌드백은 글자 그대로 모래주머니를 말한다. 물이 넘치지 못하도록 제방에 쌓아 두든가 폭설에 대비해서 길옆에 모아 둔 모래주머니가 샌드백이다. 권투선수가 연습의 상대로 삼는, 줄에 매달린 무거운 가죽백은 샌드백이 아니고 펀칭백(punching bag)이다.

우리는 먼 옛날부터 개장국을 먹어 왔다. 서울대병원 후문 원남동 골목에는 개장국 집이 여럿 있었다. 의사들조차 입원 환자들의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권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환자들의 원기 회복을 위한 음식물이 많이 있으니까 개장국을 권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특히 궁핍한 시대의 농촌에서 개의 식용은 별식이었다.

나는 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옛날 시골에서 황구를 잡을 때 목격했던 야만적인 광경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나는 개 식용을 반대한다. 손흥민의 dog meat song 때문이 아니다. 무슨 외국 여배우의 시비가 두려워서도 아니다. 반려동물 1600만 시대다. 개 사육의 위생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불법 농장의 잔인성은 뉴스에서 보는 그대로다.

북한이나 중국 동북 3성에 가면 단고기 상호가 눈에 띈다. 단고기는 개장국의 다른 이름이다.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거치면서 국내외 비판이 잇따르자 개장국은 보신탕, 영양탕으로 미화됐다.

천 년의 역사를 가진 개장국을 법만으로 막을 수 있을까? 버나드 쇼의 말이다. Like love for food there is no true love(음식에 대한 사랑처럼 진실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생명존중 사상이 확산되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면 개 식용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인류역사상 제일 먼저 가축화된 개는 이제 우리 가족의 일원이다. 동물복지시대에 우리는 반려견을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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