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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소포속 '연인'···여친 남궁옥분이 깜짝 놀래킨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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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35〉고마운 여친들 

대한항공은 1970년대 들어 큰 기종의 여객기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국제선 공략에 나섰다. 이를 기념해 가수 초청 공연을 벌였다. 왼쪽 사진 가운데 진한 색상의 옷차림을 한 이가 남궁옥분. 오른쪽 끝이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대한항공은 1970년대 들어 큰 기종의 여객기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국제선 공략에 나섰다. 이를 기념해 가수 초청 공연을 벌였다. 왼쪽 사진 가운데 진한 색상의 옷차림을 한 이가 남궁옥분. 오른쪽 끝이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지난주 나는 제법 멋진 일을 해냈다. 지금까지 30여 주간에 걸쳐 나의 마구잡이식 글을 읽어주신 중앙SUNDAY 애독자님들을 우선 최고로 높은 자리인 전하로 상정해 올려드렸고 금년 연말까지 써내야 하는 원고가 열두 차례쯤 남은 듯해 문득 나의 특기인 소두(잔머리)를 굴려 이순신 흉내까지 내보았다.

“전하! 소인에게는 아직도 만들어내야 할 배가 12척이 남아있사옵니다.”

물론 입장은 달랐다. 이순신 장군은 당시의 진짜 전하 선조께 왜적의 함대수가 무려 300척을 넘지만 염려마시라, 나는 12척만 가지고도 오징어 게임(임진왜란)에 승산이 있다, 이런 늠름한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나는 밀려오는 왜적을 코앞에 두고 당장 쓸 만한 배 12척을 수리(!)해내야 하는 초급박의 상황을 알리는 브리핑을 해냈다. 그러니까 나는 중앙SUNDAY 전하께 심려 놓으시라, 나에게도 이순신 장군 못지않은 책략이 있다, 큰소리까지 쳐낸 것이다.

그럼 책략이 뭐냐. 진시황을 모방하되 병마용갱(진시황제가 자신이 죽은 다음 자신의 무덤을 지킨다는 의미로 수백 수천 명의 병사를 진흙으로 빚어 만든, 흔히 미술 조각에 쓰이는 테라코타 방식의 흙 모형 병사)과 달리 나는 나의 무덤지기를 내가 친했던 여자 친구들로 삼겠다며 10여 년 전쯤 당시 현대미술의 뉴욕에 이은 세계적 메카로 꿈틀대던 중국 북경의 ‘798’ 지역 한 미술관에 전시했던 조영남 작 ‘여친용갱’을 꺼내놓은 것이었다. 그 작품 속에 들어 있는 30명 가까이 되는 나의 여친들을 하나하나 전하께 소개를 드린 다음 당장 내가 만들거나 수리해 내야 하는 12척의 배에 사령관으로 배치하면 이 배는 타이타닉호를 무색케 하는 파워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또다시 큰소리를 칠 참이었다.

박미선·송은이·노영심도 가깝게 지내

여기서 내 글의 애독자 전하께 다시 한 번 강조해본다. 상상해보시라. 진해 앞바다에 떠 있는 12척의 타이타닉호를 말이다. 각 전함의 선장으로는 내 ‘여친용갱’ 출신(?)의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 선배, 그리고 필자의 18번 ‘나 하나만의 사랑’을 부른 송민도 선배 및 천하의 개그우먼 이성미 이경실 등이 나 조영남의 부름을 받고 각 타이타닉(옛날 이름 거북선)의 선장을 맡으면 그까짓 돗단배 수준에 불과한 왜놈들의 300여 척 함대쯤은 상대조차도 안 될 것 아닌가.

2000년대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남궁옥분씨와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2000년대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남궁옥분씨와 조영남씨. [사진 조영남]

나 조영남의 ‘여친용갱’에는 윤심덕 송민도(급히 허락도 없이 죽은 조영남의 시체를 영원히 지켜줄 것을 자청한다는 위조 증서를 만들어 위조 도장까지 찍어 여친 용갱의 신입 멤버가 됨)는 물론 10여 년 전 나의 중국 초청 미술 전시 때 중국 본토에서 중국 본토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출연, 중국인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장나라를 비롯 당시 나와 MBC 라디오 ‘지금은 라디오 시대’라는 인기짱 프로그램을 10년간이나 함께 하고 지금은 TV 홈쇼핑에서 진가를 펄펄 날리는 최유라, 그 위쪽으로 그냥 일밤 방송에 나와 머리 똑똑함으로 그 자리에서 즉시 스카우트되어 TV 방송 진행자로 올라섰던 류시현(시현이는 줄곧 그녀의 사촌 여동생 한 명과 함께 영화광인 내가 봐야 하는 영화를 매번 골라내는 개인비서 역할을 하다가 졸지에 어떤 녀석이 나타나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류시현이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코미디언 이봉원의 부인 되는 맘씨 착한 박미선, 아직도 꿋꿋하게 혼자 사는 송은이, 또 앞쪽으로 말을 그리던 유명화가 김점선, 서강대 영문과 교수 장영희, 맨 앞쪽에 지금은 은퇴한 경향신문 여기자 유인경이 병마용갱답게 갑옷을 입고 위용을 뽐내고 있다.

큰일 날뻔 했다. 당시 나와 끔찍이도 가까웠던 전설의 여가수 노영심도 내가 죽은 다음 나의 시체를 지켜주는 진흙 용사로 내가 끌어들였다. 줄줄이 사탕이다. 노래를 참 잘하는 뉴욕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소프라노 이종미를 비롯, 유명한 현직 아나운서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 밖의 내 여친들도 포함되어 있다. 앗! 행복전도사로 알려진 최윤희를 놓칠 뻔 했다. 앞의 김점선 장영희 그리고 최윤희는 참으로 신비하게도 10여 년 전쯤 잇따라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 나의 진짜 음악선배 윤심덕과 송민도의 하늘 그룹으로 옮겨갔다. 이런 경우 참 웃긴다. 이들이 내가 훨씬 먼저 죽을 것으로 생각해서 우쭐대가며 영남 오빠가 죽으면 자신들이 자진해서 오빠의 무덤지기 용사가 되겠노라고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자세를 잡고 기념사진(?)까지 찍어놨는데 웬걸 지네들이 먼저 벌써 쭈르르 죽어 넘어졌으니 나는 허탈! 지금은 모든 형편이 완전히 뒤바뀐 꼴이 되었다.

중앙SUNDAY 독자님들께서도 상상 좀 해보시라. 그렇다면 이젠 내가 먼저 죽은 그녀들의 무덤을 지켜야 하는 말 그대로 남자 병마용갱이 되어야 하는데, 좋다 기꺼이 병마용갱이 되어주겠다. 그런데 정작 운이 좋아 내가 몇 년 더 산다 해도 그때는 이미 80 노인이 된다. 지금도 허리 팔 다리가 온통 쑤시고 결려오고 몇 개 안 되는 계단도 헉헉대가며 오르는 상노인네가 됐으니 내가 자진해서 병마용갱의 갑옷을 입고 싶어도 뻔하다. 헬멧과 윗저고리만 걸쳐도 갑옷 무게에 짓눌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판인데 남의 무덤을 지켜주는 병마용갱은 개뿔, 할배 용사한테 무슨 역할을 기대하랴!

각설하고 지금부턴 진짜 오늘의 주제를 말하겠다. 나는 앞으로 만들거나 수리해서 왜적 300여 척의 함대와 맞서 싸워야 할 거북선을 새로 만들거나 수리할 거라고 큰소리를 치는 와중에 특히 거북선의 용사를 여성군사로 바꾼다며 ‘여친용갱’ 왈가왈부하는 와중에도 딱 한 명의 여전사를 빼돌려 놓았다. 그게 누구냐. 사실상 오늘의 주역이다. 말하라. 누구냐. 여가수다. 무슨 노랠 불렀느냐.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를 불렀다. 이름이 무어냐. 좀 웃기는 이름이다. 당장 직고하라. 말하겠다. 남궁옥분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왜 웃긴다는 거냐. 보통은 이름은 뭐뭐뭐 석 자이거나 두 자인데 남궁옥분은 하나 더 붙어 넉 자라는 게 좀 특이해서 웃긴다고 얘기했다. 남궁씨 성을 가진 이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남궁옥분한테는 나를 웃게 만드는 사연도 있고 나를 울게 만드는 사연도 있다.

웃기는 사연부터 말해봐라. 좋다. 말하겠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건 한 번 중앙SUNDAY에 써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다. 나의 아버지 조승초씨가 중풍으로 병석에 눕게 되자 우리집 앞채를 팔게 됐는데 새로 이사온 집 딸내미가 나와 나이가 같은 소녀, 이름이 바로 옥분이었다! (성은 잊었다) 옥분이는 이름처럼 무척 착했다. 그런데 옥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소녀로 기네스북에 올릴 만한 소녀였다. 가령 무슨 잔칫날 옥분이 아버지가 손님들이 몰려오면 옥분이를 이런 식으로 찾는다. ‘옥분아! 뭐히여 이X아! 국수 말어오지 않구 뭐히여 이X아 이X아 이X아 이X아 이X아’, 음악적으로 크레센도에서 디크레센도로 길게 늘어진다. 이건 내가 내 입으로 직접 흉내를 내야 제대로인데. 아! 한글의 위대함 속에 가려진 한글의 한계여! 그 ‘이X아’가 옥분이 아버지의 입엔 늘 붙어 있었던 거다.

고향집 앞채에 산 동명이인 옥분도

2009년 베이징 초청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 ‘여친용갱’. 조영남씨의 여자 친구들 얼굴이 보인다. [사진 조영남]

2009년 베이징 초청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 ‘여친용갱’. 조영남씨의 여자 친구들 얼굴이 보인다. [사진 조영남]

현재의 남궁옥분 얘길 하다가 옛날 옥분이 애기로 빠졌다. 그럼 웃기는 얘기의 반대, 울렸던 얘기는 또 뭐냐. 그 얘길 하겠다. 며칠 전 두툼한 소포 한 덩이가 우리집으로 배달되어 온다. 발신자 이름이 남궁옥분이었다. 나는 얘가 느닷없이 웬 소포지? 하며 뜯어 보았다. 두터운 계간지 ‘연인’이라는 표지 제목의 문학잡지였다. 표지에 나온 목차를 대충 훑어보았다. 시인 수필가 소설가 평론가 이름들 속에 아닌게 아니라 남궁옥분이라는 이름이 발견됐고 나는 그러면 그렇지 했다. 나는 일찍부터 옥분이가 노래를 잘할 뿐 아니라 그림에도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제는 책의 앞부분에 보통 종이보다 윤기나는 윗길의 고급용지에 인쇄된 내용은 제목부터 웃겼다. ‘진짜 딴따라 조영남.’ 장장 처음부터 끝까지 조영남 예찬으로 일관되는 내용이었다. 재밌게 썼다. 그럼 뭐가 울린다는 거냐. 서글프다는 거냐. 대답하겠다. 평소 같았으면 소포가 와도 그런가 보다, 책의 내용을 쓱 보고 흠! 쓸 게 없으니까 내 얘길 한 판 쓴 모양이구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어갔을 터인데 믿어주시라! 중앙SUNDAY에 벌써 9개월간 연재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스스로가 많이 사람처럼 변해 온 것 같다.

그러다 내 맘 속엔 이런 경우 최소한 예의의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생긴 게 웬지 서글퍼보이고 그동안 내가 옥분이한테 너무 무심했다는 것도 서글프게 느껴진다.

옥분아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네가 이렇게 못생긴 영남 오빠를 그렇게 큰 아티스트로 생각하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장장 10페이지에 달하는 긴 조영남 예찬 중에 이 세상에서 너만 알고 있는 나의 온갖 너저분한 사생활을 단 한 마디도 안 까밝혔더구나. 이점 특히 고맙다. 내가 최근 인간이 마음씨를 곱게 쓰면 결국 복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실감했다. 엄영수(용수에서 영수로 바꿨다)가 그런 예다. 잘 버텨라. 이만 총총.

추신. ‘여친용갱’에 등장한 인물들이 뒤늦게 무단 인물 사용죄로 고소를 해올 경우 나는 또 쫄딱 망한다. 사방에서 들려온다. 배 수리는 언제 할 거냐. 돌멩이 짱돌 연탄재 날라오는 소리, 획획 픽 피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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