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10화
레이나에서 이틀을 잤다. 첫날은 공원에서 나는 텐트를 쳤고 동훈이는 야숙했다. 좋은 말로 야숙이고 비박이다. 그냥 침낭만 뒤집어쓰고 잤으니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이른 아침에 비가 내리는 데 비박 거지는 그것도 모르고 잔다. 침낭이 젖는 줄도 모르고 코를 골다니. 결국 우리는 알베르게(여행자 숙소)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레이나를 떠나 롤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도착 바로 전에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개울은 작았지만 흐르는 물이 당차고 시원해 보였다. “우리 이 물 좀 마시고 갈까?”
갈증을 이기지 못해 목이 타던 참이었다.
“안돼요. 아부지. 옛날에 이 물을 마시고 말이 죽었대요.”
누구한테 들었는지 근거 없는 말 같지만 사실이라고 했다.
“예전에 말을 타고 이 개울을 건너던 여행가가 있었대요. 마을 사람들이 말에게 이 개울물을 먹이면 좋다고 했는데 물을 마신 말이 죽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죽은 말을 달라고 하더니 잡아먹었대요.”
무슨 납량특집 같지만, 개울 옆에 십자가와 함께 한 남자의 추모비가 서 있어 동훈이 말을 뒷받침하는 것 같았다.
동키호택이 목이 마른 지 자꾸 코를 벌렁거리며 물가 쪽을 바라보았다.
“안 돼. 저걸 마시면 너도 죽을지 몰라. 동네 사람들이 잡아먹는데. 아이고 무서워라.”
경쾌한 물소리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세이렌의 노래처럼 달콤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유혹을 이긴 호택이가 자랑스러웠다.
개울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바로 마을이다.
“마을에 가면 물도 있고 풀도 있을 거야.”
호택이는 내 말을 믿었는지 가뿐하게 언덕을 올랐다.
마을은 작았다. 입구에 있는 오래된 성당 옆에 아늑한 공터가 보였다. 공터의 왼쪽과 뒤쪽이 성당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른쪽은 멋진 집의 철제 울타리였다. 게다가 공터 가운데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호택이가 놀기에는 최상의 환경이었다. 작은 공간에는 나무 탁자가 놓여 있어서 저녁을 해 먹거나 글을 쓰기에 좋아 보였다.
성당을 돌아 물을 찾아가는데 자판기가 설치된 무인 가게를 발견했다. 전기와 와이파이도 있어 밧데리 충전 걱정도 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증과 기력 보충을 위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뺐다. 와퍼라고 쓴 에너지바를 사려고 하는데 진열이 이상했다. 에너지바 하나가 나오다 중간에 걸렸는지 위태롭게 진열되어 있었다.
“동훈아. 저거 혹시 하나 사면 밀려서 떨어지지 않을까?”
“한번 해 볼까요?”
1유로를 넣고 33번을 누르자 두 개가 떨어졌다. 60살 넘은 아이와 20살짜리 어른이 부둥켜안고 좋아 죽었다.
“재미는 봤으니 주인이 오면 이야기하자.”
“그럴 필요 있을까요?”
“우린 순례자잖아.”
“아부지. 이건 다 신의 뜻이에요.”
말로 마음의 부담은 덜었다.
마을에서 한 가지 문제라면 호택이가 먹을 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택이를 데리고 풀밭을 찾아 막 나서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승용차 트렁크에 빵을 싣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루에 담긴 빵을 건물 안에서 계속 가지고 나왔다. 따라 들어가 보니 빵 공장이었다. 우리가 머물 공터와 불과 2십여 미터 거리다.
‘무얼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 창공의 이름 없는 새들도 먹여 살리시나니. 아멘’
할아버지는 나와 당나귀를 보고 큼지막한 빵 4개를 건네주셨다.
“도스 부로 도스 우스테디.”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당나귀와 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두 개는 당나귀, 두 개는 너 먹어라’
일용할 양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젊은 사장이 나오더니 막 구운 빵을 내게 주며 먹으란다. 따끈한 빵이 입에서 녹아내리자 하루의 피로가 사라졌다.
‘이렇게 맛있는 빵을 당나귀에게 주라고? 흥. 호택이는 한 개만 주고 우리가 다 먹어야지.’
순례자에게 욕심이 생겼다. 작은 빵 몇 개에 말이다. 순례 여행 최대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때 갑자기 ‘따다다다닥’ 호택이가 오방떡을 난사했다. 내 변심을 알아차린 호택이의 반격이다.
“알았어. 너 3개 줄게.”
빵집 사장님이 황급히 빗자루와 삽을 가지고 나와 똥을 치우셨다. 명색이 빵집인데 당나귀 똥이라니. 그런데도 사장님은 싱글벙글한다. 호택이의 만행을 보며 사람들이 놀이동산 청룡열차를 타는 것처럼 꺄아아악~깔깔깔깔 큰소리로 웃었다. 이제는 호택이가 마음대로 싸질러도 미안하지 않다.
저녁이 되니 옆집 발코니에 두 모녀가 나타났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나 당나귀와 함께 산티아고까지 갈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잠시 후 사과를 손에 든 두 모녀가 다시 나타났다.
“사가라”
‘사가라’는 바스크어로 ‘사과’다. 사과 4개가 담장 너머로 날아왔다.
“동훈아. 오징어 게임이다. 떨어뜨리면 실패하는 거야.”
죽기에 아까운 나이여서일까? 동훈이는 다이빙까지 하며 사과를 받아냈다.
쟤는 진짜 오징어 게임을 하는 줄 아나 보네? 낄낄낄.
“오늘 밤에 비가 온대요. 우리 집에서 주무세요.”
아이 엄마가 자신의 집 처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새벽에 비가 내렸지만 포근한 아침을 맞았다.
“동훈아. 우리가 먹을 복은 타고났나 봐. 그렇지?”
그러고 보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호택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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