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네 참 이상해"…차가 긁혀도, 지하철 없어도 좋다는 그들[더오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아 키우려면 인프라가 갖춰진 아파트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자란 내가 어쩌다 개발제한구역인 부암동에 신혼집을 구하고 아이 낳아 키우게 됐다. 마트 하나 없는 동네에서 좌충우돌 육아를 하며 몸부림치며 발견한 부암동의 매력을 공유한다. 조금 느리게 살아도, 손해 보고 살아도 삶은 안 망하더라. 공간이 주는 여유를 통해 온전하게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사는 것도 괜찮더라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편집자〉

“마트가 없어 불편하죠? 익숙해지면 그냥 있는 데로 먹기도 하고, 딱히 뭐 안 해 먹기도 해요. 안 해 먹어도 괜찮아져요.”

부암동에 이사 온 지 2년쯤 되었을 때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이 동네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이웃에 사는 어르신이 그런다. 요즘은 온라인에서 아침에 장을 보고 주문하면 저녁에 문 앞까지 배달을 해주지만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 장을 보려면 차를 타고 어디든 나가야 했다. 참 불편했다. 그런데 이웃들이 하나같이 “살다 보면 괜찮아져요”, 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때는 뭐가 괜찮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암동 목인원에서 내려다본 부암동 전경. [사진 김현정]

부암동 목인원에서 내려다본 부암동 전경. [사진 김현정]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주차장도 마땅하지 않아 차도 여기저기 긁히기가 쉬운 동네다. 그런데 다들 차가 좀 긁혀도 뭐 그렇게 화내지 않는다. 한 번은 이웃집에 새 차가 긁혔다. 누가 긁고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차 주인 왈 “자진해서 자기가 긁었다고 얘기하면 좋은데 뭐 어쩔 수 없죠, 많이 긁힌 것도 아니고 살짝 스친 건데요. 이 동네 살며 차 가지고 다니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러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블랙박스 파일이랑 골목길 CCTV를 보면 찾을 수도 있을 텐데 답답했다. 왜 다들 ‘도라도 닦은 사람’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런 모습인지, 그때는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알지 못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개발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변에 인접한 신영동, 평창동, 구기동 다 그런 분위기다. 보통은 자기 동네를 개발하려고 애쓰지 않나. 지하철이 생기고, 도로가 닦이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땅값이 올라가고. 그런데 개발이 된다고 하면 ‘싫다’고 하는 동네가 바로 우리 동네다. 살고 있는 집 앞에 도로를 넓혀준다고 하는데 극구 반대한다. “도로 닦이면 차가 많이 다닐 텐데, 시끄럽고 귀찮아. 지금이 좋아” 지하철이 생긴다니 플래카드를 들며 반대한다. 지하철 다니면 사람이 많아져서 번잡하고 시끄러워진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옆 신영동 역시 재개발한다는 말만 30년째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신기하기도 해서 “정말이지 이 동네, 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다 모였나 보네”하고 말았다.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사람들이 지키고 싶었던 조용함이 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나 역시 이 동네 사람이 다 된 걸까? 어느 순간부터 없으면 없는 데로 그냥 살게 됐다. 꼭 다 갖추지 않아도 삶은 그럭저럭 잘 돌아갔다. 간장이 없으면 소금으로 대신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그냥 다른 거 해 먹으면 된다. 뭐 차가 조금 긁히는 일이 있어도 ‘그래, 어쩔 수 없지’ 불편한 일이 좀 있어도 ‘그래, 내가 손해 좀 보고 말지’ 그러고 말게 됐다. 하나하나 따지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며 쫓아다닐 수도 있지만, 그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동네에 조용함을 너무 좋아하게 됐다. 그러게, 이게 말이 쉽지, 이렇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네를 개발하려고 애쓰지 않나. 지하철이 생기고, 도로가 닦이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땅값이 올라가고. 그런데 개발이 된다고 하면 '싫다'고 하는 동네가 바로 우리 동네다. [사진 pixabay]

동네를 개발하려고 애쓰지 않나. 지하철이 생기고, 도로가 닦이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땅값이 올라가고. 그런데 개발이 된다고 하면 '싫다'고 하는 동네가 바로 우리 동네다. [사진 pixabay]

부암동이란 동네가 외지인에게 처음부터 쉽게 자리를 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밀당하듯 마음을 몇 번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이 동네에 젖어 들게 된다. 확실히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동네임에는 분명하다. 토박이가 아니더라도 직장이 가까워 혹은 나처럼 남편 손에 이끌려 자리를 잡은 사람도 몇 년 만 버티고 살다 보면 다른 동네를 못 가게 된다. 높은 건물이 있고, 시끄러운 곳이 어느 순간부터 어색해지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심에 나갔다가도 자하문 터널을 지나 산 능선을 보며 ‘우리 동네에야, 돌아왔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걸까?

부암동 옆 동네, 서촌이라고 불리는 통인동에는 서촌을 동경한 60대 건축주가 의뢰해 ‘brickwell’이란 건축물을 지었다. 공공시설이나 문화시설도 아닌데 1층 공간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정원으로 설계하고 중앙을 텅 비워놓았다. 난 이 건축주가 어떤 마음으로 그 건축물을 의뢰했을지 이해가 된다. 부암동에 사는 사람들도 이에 못지않은 동네에 대한 애정이 있다. ‘참 이 동네 이상해, 사람들도 이상한 것 같아’라고 했던 나 역시도 이곳에 살면서 그 이상한 사람이 되었으니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