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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소중한' 나만의 보물이 깨졌을때 쿨한 아이는 이렇다 [오밥뉴스]

중앙일보

입력 2021.10.29 06:00

업데이트 2022.03.02 15:31

· 한 줄 평 : 아이 안의 철학자를, 어른 안의 아이를 깨운다.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요시타케 신스케의 다른 책  
『뭐든 될 수 있어』  아이가 몸으로 흉내 내기 놀이를 하면서 자꾸 맞추라고 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벗지 말 걸 그랬어』 머리에 옷 좀 끼었다고 못 할 쏘냐!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는 것이다.

· 추천 연령 :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30개월 무렵부터 이야기에서 철학을 건져 올릴 수 있는 8세, 9세까지.
(※그림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추천 연령은 서사의 구조나 주제 등을 고려하여 제안하는 참고 사항일 뿐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오늘 소개할 책『고무줄은 내 거야』. 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은 고무줄 하나를 가지고 여기까지도 상상할 수 있구나 싶어진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오늘 소개할 책『고무줄은 내 거야』. 이 책을 읽으면 아이들은 고무줄 하나를 가지고 여기까지도 상상할 수 있구나 싶어진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당신에게 소중한 보물은 뭔가요? 너무 질문이 크다면, 소중한 물건을 떠올려 보세요. 벼르고 벼르다 어렵게 결제 버튼을 누른 프라모델? 마음 속에 담아둔 지 몇 년만에 산 명품가방? 비싼 건 아니지만 추억이 묻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께 물려 받은 스카프나 배우자가 아직 연인이던 시절 받은 커플링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길에서 주운 병뚜껑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리 같은 걸 품고 다는 게 그리 이상한 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중한 물건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일지 모르지만, 내겐 더 없이 소중하다. 『고무줄은 내 거야』 본문 중에서. 사진 위즈덤하우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중한 물건이 있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일지 모르지만, 내겐 더 없이 소중하다. 『고무줄은 내 거야』 본문 중에서. 사진 위즈덤하우스

『고무줄은 내 거야』는 바로 그런, 사실은 별것 아닌 물건이지만 아이에겐 세상 소중한 (엄마 눈엔 그저 '소중한 쓰레기'인) 물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아이에겐 그런 물건이 고무줄입니다. ‘오빠한테 물려받은 것 아니고 다 같이 사이좋게 쓰는 것도 아니고 잠깐 빌린 것도 아닌 나만의 것’이죠. 아이는 이걸로 뭘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고무줄 하나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다니요. 고무줄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이건 책에서 확인하세요!).

그런데 그 소중한 고무줄이 툭 하고 끊어지고 맙니다. 아이는 어떻게 했을까요? 쿨하기 짝이 없게 곧바로 다른 소중한 보물(클립!)을 찾아냅니다. 보물이란 이런 걸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으로든 대체할 수 있죠. 정말 소중한 건 나만의 특별한 보물을 찾는 마음, 그리고 그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일지도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보물을 갖고 싶어 한다. 어른이건 아이건. 『고무줄은 내 거야』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보물을 갖고 싶어 한다. 어른이건 아이건. 『고무줄은 내 거야』 본문 중에서

이 책을 그리고 쓴 요시타케 신스케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별것 아닌 이야기 안에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비단 이 책만이 아닙니다. 그의 책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벗지 말 걸 그랬어』에는 목욕하려고 혼자 옷을 벗다 얼굴에 옷이 걸려버린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벗을 수 없다면 안 벗으면 되지!”

“옷이 걸려 있어도 훌륭하게 자란 사람은 많을 것(왜냐하면 옷이 걸려 있다뿐이지 남들과 다른 게 하나도 없으니까)”이니까요. 누구나 약점이 있는 법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가족이 없는 사람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뿐이지 남들과 다를 게 없으니까 훌륭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안 하면 그만입니다. 그저 화장실 앞에서 혼자 옷을 벗다 머리에 걸린 아이의 말이라고 할 수가 없네요.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의 아이도 발군입니다. “내 친구가 어른한테 들었는데 미래 세계는 무시무시할 것”이라는 오빠의 말에 절망에 빠진 아이는 할머니에게 고민을 토로합니다. 할머니가 말하죠.

“어른들은 툭하면 이렇게 말하지. ‘미래는 이렇게 될 게 분명해.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해.’ 하지만 거의 맞지 않아.”

아이는 생각합니다. 미래는 두 개나 세 개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 많이 있다고요. 그리고 상상합니다. 날마다 소시지를 먹는 미래, 온종일 잠옷을 입어도 되는 미래, 매주 토요일이 크리스마스인 미래를요. 맞습니다. 미래란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죠. 저희집에 사는 8살 어린이는 이 책을 읽고 독서록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미래를 모른다.’

요시타케 신스케가 아이 안의 철학자를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며 저는 제 안의 아이를 불러냈습니다.

걸어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게 무서워 반경 5㎞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 배경은 대부분 집이거나 넓어 봐야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입니다. 동네를 잘 벗어나지 않죠. 하지만 거기 서 있는 아이의 상상력은 끝이 없습니다. 고무줄 하나를 들고서 세계의 모든 동물원을 여행하는 수준입니다. 코로나 시대, 갈 수 없다고 상상력마저 구속 당하는 건 아닐 겁니다. 제약이 존재할 때 오히려 창의력은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의 주인공 아이는 말합니다. ″미래가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내 맘대로 미래를 그려냅니다.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의 주인공 아이는 말합니다. ″미래가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내 맘대로 미래를 그려냅니다.

※추신 : 저는 8세, 37개월 두 아이와 『고무줄은 내 거야』를 읽고 각자의 보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뭐든 될 수 있어』를 읽고 나선 아이들은 흉내를 내고 저는 맞추는 놀이를 한 시간(!)이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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