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독

모형 러 첨단로켓서 전율의 발견…누리호 개발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1.10.29 00:37

업데이트 2021.10.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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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나로호 주역 조광래에게 듣는 누리호 개발 비사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 기자,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 기자,논설위원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첫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 발사 후 일주일이 지났다. 21일 발사 첫날의 흥분은 가라앉았지만,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나로우주센터와 제주·팔라우 추적소에 수신된 누리호 데이터 분석에 여념이 없다. 발사체 1,2단 리뷰도 중요하지만, 막판 실패로 끝난 3단의 조기 연소 종료 원인을 찾아야 한다. 조광래(62)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의 ‘맏형’이다. 2009~2013년 세 차례 발사됐던 첫 한국형발사체(KSLV-1) 나로호 발사추진단장을 맡았을 뿐 아니라, 1989년 항우연 입사 이후 지금껏 우주발사체 개발에만 몰두해온 ‘로켓맨’이다. 지난 26일 대전 항우연에서 만난 조 전 원장은 한국 우주발사체 개발의 비사(秘史)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나로호 책임자로서, 누리호 1차 발사를 지켜본 소감이 궁금하다.
“상당히 아쉽다. 기술적으로는 꽤 만족스럽지만,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는 바람에 궁극적으로 실패가 된 거다. 개인적으로는 연구원 입사 이후 1993년 KSR-1(1단형 고체 과학로켓) 두 번 발사를 시작으로 이번이 총 열 번째 발사다. 사실 이번엔 기대를 많이 했다. 과거에는 발사 준비 과정에서 자꾸 뭔가에 걸릴 때가 있었는데, 이번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어려운 일인 줄 알았지만, 원샷에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3단 후반에 속도 상승이 예측에 못 미치기 시작했다. ‘속도가 안붙네 안붙네’ 걱정하던 차에 컴퓨터가 자동으로 연소 중단을 알렸다.”
‘모형’이라던 엔진 알고보니 진품

나로호 없었으면 누리호 개발못해

누리호 발사 때 ‘병풍논란’ 사실

외국은 발사 때 대통령 현장 안 와

조광래 전 항공우주연구원장이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 중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75t 로켓엔진을 배경으로 섰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누리호 모형이다. 조 전 원장은 33년간 발사체에 몰두해온 국내 최고의 로켓맨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조광래 전 항공우주연구원장이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 중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75t 로켓엔진을 배경으로 섰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누리호 모형이다. 조 전 원장은 33년간 발사체에 몰두해온 국내 최고의 로켓맨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원인이 뭐로 생각되나.
“3단 산화제인 산소 탱크의 압력이 저하된 것이 팩트다. 문제는 원인인데, 탱크 자체의 이상이라기보다는 배관 등 연결부위나 밸브류에서 누설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팔라우 추적소에 수신된 데이터들을 분석해보면 정확한 원인이 나올 거다. 데이터 양이 많아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조사위원회가 구성된다고 들었다.
“그게 또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나로호 때도 그랬지만, 조사위가 열리면 항우연은 사실상 피고가 된다. 대통령의 위로도 소용없다. 발사체 경험이 전무한 조사위원들이 점령군처럼 와서 무리한 보고서를 내라고 한다. 나로호 1, 2차 발사 실패 때 조사위원 중 한 사람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그따위로 하니 실패했지’라는 말까지 하면서 수모를 줬다. 당시 ‘이런 게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는 거구나’라고 느꼈다. 일본이 H 로켓을 개발하다 실패했을 때, 내부조사는 있었지만 외부 조사위 같은 건 없었다. 외부에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부 인사가 조사위에 참여하는 이유는 연구원 내부 전문가들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로호 실패 땐 조사위 외에도 정부 감사관실에서 내 은행계좌까지 털었다고 들었다. 다행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번에는 항우연 주도로 조사를 하겠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최근에도 여러 차례 감사를 받고 중징계 요구까지 받았는데.
“전 원장과 연결된 현 정권 고위층의 입김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과기정통부 독립사업 형태로 구성된 우주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전 원장이 못마땅해했다. 결국 2019년 연말 회식자리에서 원장이 발사체본부 연구원의 팔을 깨무는 등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내용이 국민신문고에 올라가고, 국정감사장에서 그 원장이 질책을 받았다. 이후 발사체본부의 최고참 겸 전 원장이 나와 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무리한 감사가 내려왔다. 최종적으로 지난 7월 징계위원회에서 ‘징계 불가’로 결론이 났지만, 누리호 발사 준비를 앞두고 발사체개발사업본부가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난번 나로호 발사 경험이 누리호에 도움이 됐나. 나로호는 1단을 러시아에서 그대로 들여오고, 2단은 고체엔진을 썼기 때문에 1, 2, 3단 전부를 자력으로 개발한 액체로켓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로호가 없었으면 누리호를 개발하지 못했다. 우선 나로호 발사 당시 그런 문제로 추력 30t 액체엔진 개발을 비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그때 터보펌프·연소기·가스발생기 등을 개발했다. 나로호도 단순히 러시아 1단을 우리 2단에 붙인 게 아니다. 1, 2단을 붙이려면 전체 체계종합에 대한 이해가 돼야 한다. 나로호에 쓴 케이블 길이만 38㎞에 달한다.”
대전 항공우주연구원 조립동 1층에 보관 중인 나로호 1단 로켓엔진. 러시아어로 모형이라고 적혀있지만, 러시아 우주기업 흐루니체프의 추력 210t 첨단 다단연소사이클엔진 그대로다. [사진 항공우주연구원]

대전 항공우주연구원 조립동 1층에 보관 중인 나로호 1단 로켓엔진. 러시아어로 모형이라고 적혀있지만, 러시아 우주기업 흐루니체프의 추력 210t 첨단 다단연소사이클엔진 그대로다. [사진 항공우주연구원]

조 전 원장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갑자기 인터뷰를 중단했다. 설명을 더 하기 위해서 보여줄 것이 있다고 했다. 항우연 본관 옆 조립동 1층으로 내려갔다. 평소 찾는 사람이 없어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은 듯한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조 원장이 바지 주머니에서 구릿빛 열쇠를 꺼내 낡은 철문을 열었다. ‘덜컹’ 소리와 함께 높이 25m의 조립동 1층을 3분의 1로 나눈 한쪽 공간이 드러났다. 직경 2.9m, 길이 10m 남짓의 로켓이 누워있었다. 낡은 흰색 동체 위에 ‘교육과학기술부’와 ‘KHRUNICHEV STATE RESEARCH AND PRODUCTION SPACE CENTER’라는 글씨가 적힌 마크가 선명했다. 나로호 1단을 만든 러시아 우주기업 흐루니체프였다. 동체 끝에 거대한 첨단 액체로켓이 달려있다. 엔진 연소기 위에 러시아어로 ‘MAKET-НЖ’라는 붉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진짜가 아닌 모형이라는 뜻이다.

2013년을 마지막으로 올라갔던 나로호가 왜 항우연 창고에 있나.
“이건 과거 나로호 때 썼던 1단 지상검증용 발사체(GTV)다. 당시로써는 처음 만들어보는 우주발사체 조립동과 발사대 인증시험을 위해 실제 기체가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2008년 8월에 가장 먼저 러시아에서 1단 지상검증용 발사체를 들여온 거다. 2009년 8월 나로호 1차 발사에 앞서, 4월에 1차 발사장에 세워 언론에 공개했던 그 나로호다.”
그때는 지상검증용 발사체는 로켓 엔진이 없는 상태로 한다고 하지 않았나.
“당시엔 우리도 GTV 1단부에 노즐 정도만 달린 모형 엔진인 줄 알았다. 러시아 흐루니체프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3차 발사까지 끝나고 대전으로 가져와서 분해해 보니 첨단 다단연소사이클의 앙가라 엔진이 완벽한 모습으로 달려있었다. 그걸 처음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당시는 두 번째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 개발 프로젝트가 이미 4년 차에 들어갔을 때다. 하지만 기본설계도 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이후 누리호 75t 엔진 개발에 이 앙가라 로켓이 큰 도움이 된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로호 프로젝트 당시 항우연은 미국·러시아 등 우주 선진국들은 우주로켓의 핵심인 엔진 기술은 절대로 유출하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GTV에 대해 실물은 똑같지만 1단 엔진은 없는 상태라고 언론에 밝혔다. )
러시아가 왜 GTV에 실제 엔진을 그대로 달았을까.
“추정하건대 모형 엔진을 일부러 만드는 게 더 번거롭고 비용도 더 들어가 기성 엔진 그대로를 달아놓은 것 같다. 이 때문에 3차 발사가 끝나고 러시아가 이 GTV를 가져가려고 했는데, 우리가 ‘계약에는 GTV도 포함된 것 아니냐’며 막았다. 그렇게 GTV는 한국에 남았지만, 그 때문에 당시 흐루니체프사의 사장이 해임되는 일까지 있었다. 러시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라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왜 이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나.
“굳이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다. 나로호 발사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고, 이후에 알았지만, 그땐 다들 큰 관심이 없었다. 이번 누리호를 발사하고 나서 다들 개발 비사를 궁금해하니 중앙일보에 공개하게 된 거다.”
앞으로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에도 도움이 되겠다.
“그렇다. 러시아 앙가라 로켓은 추력 210t의 최신형 다단연소사이클엔진으로, 미국도 최근 수입하려고 했던 강력하고도 첨단의 엔진이다. 누리호 75t 엔진은 연소시험 때 봤겠지만, 터보펌프에서 불완전 연소한 시커먼 배기가스가 나온다. 다단연소 사이클은 이걸 엔진 내부에서 다시 한번 태워주는 방식이다. 엔진 효율이 높고 힘도 훨씬 뛰어나다. 이제 곧 시작해야 하는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도 다단연소사이클엔진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21일 누리호 발사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할 때 과학자들을 동원, 병풍 논란이 있었다.
“당시 현장 분위기가 실제로 그랬다. 통제동이 발사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쁘고 신경줄이 잔뜩 조여진 상황이었는데, 청와대 의전팀·경호팀들뿐 아니라 이벤트 기획사 사람들까지 돌아다녔다. 발사 당일 아침에는 통제동 출입까지 일일이 통제해서 연구원들이 들고나기 힘들었다. 게다가 발사 후 본부장을 비롯한 항우연 엔지니어들을 40분 이상 뻗치기(대기) 시킨 게 결정타가 됐다. 애초 항우연에서는 발사 현장에 대통령이 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보냈다. 대통령이 발사 현장에 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통제가 많이 이뤄지고, 방해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발사 현장에 직접 오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그친다.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조광래
1959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동국대에 진학,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직장은 천문우주과학연구소였지만,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생기면서 창립 멤버가 됐다. 중형로켓개발그룹장, KSR-3(액체로켓)사업단장, 우주발사체 사업단장,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을 거쳐 2014년 원장에 올랐다. 현재는 우주발사체개발사업본부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2013년 2월 나로호 개발 책임자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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