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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선

스스로 발목 잡힌 소시오패스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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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신경정신과 전문의 강윤형씨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해 “소시오패스 경향이 있다”는 발언 논란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강씨는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아내다. 이와 관련 원 전 지사는 28일 라디오에 나와 “사과할 뜻이 전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여권의 공세도 여전하다. 신현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막말 내조, 보기 흉한 부창부수”라고 했고, 진성준 의원은 “명백한 의료윤리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한때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던 황교익씨는 아예 강씨의 의사면허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가 프레임 전쟁의 기본임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소시오패스 공방은 이 후보로서도 골치 아픈 일이다.

이재명 구해준 대법원 판결로 #소시오패스 발언 처벌 어려워 #널리 전파되는 이유 살펴봐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8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주질의를 마친 뒤 웃음짓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8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주질의를 마친 뒤 웃음짓고 있다. 뉴스1

 아무리 대선판이 막무가내 전쟁터라도 상대 후보를 향해 소시오패스(sociopathㆍ반사회적 인격 장애)라고 규정하는 건 일종의 인신공격이다. “사과하라”고 했음에도 “안 하겠다”고 버티면 이제 남은 건 고소ㆍ고발밖에 없다. 실제 현근택 전 이재명 캠프 대변인은 원 지사와의 설전에서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이나 민사상 불법 행위도 될 것 같다.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의사로서 직접 검진하지 않은 채 의견 표명을 했고, 경쟁 후보의 가족으로서 상대를 비방했다는 점 등이 근거다.

 구체적으론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등에 해당할 수 있다. 문제는 허위사실, 즉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이 후보가 직접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대선이 고작 4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신과 진료를 거쳐 정상으로 판명 난들 무슨 정치적 이득이 되겠는가. 물론 3년 전 배우 김부선씨의 “신체 특정 부위에 점이 있다”는 폭로에 이 후보가 직접 아주대병원에서 신체검증을 받고 반박한 사례가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분야 논쟁은 조금 더 미묘하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 부인 강윤형 씨. [유튜브 캡처]

원희룡 전 제주지사 부인 강윤형 씨. [유튜브 캡처]

 설사 ‘이재명은 소시오패스가 아니다’가 불가역적이며 확고부동한 팩트라 해도 강씨를 처벌하는 건 또 요원하다. 그건 공교롭게도 이 후보를 소생시켜준 지난해 7월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앞서 이 후보는 2018년 지방선거 때 TV 토론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했느냐”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 “제가 (입원을) 최종적으로 못 하게 했다”고 답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시절 보건소장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었다. 따라서 당시 답변은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될 수 있었고, 2심은 이를 인정해 경기지사직 박탈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은 “해당 발언은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드러내어 알리려는 의도에서 한 공표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즉 계획된 공개 연설이 아니라 TV 토론에서 돌발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에 거짓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의미다. 소극적ㆍ즉흥적 발언은 거짓말이 아니라니, 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발상인가. 당시 대법관 의견이 5대5로 팽팽히 맞설 때 이런 ‘기적의 논리’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게 권순일 대법관이다. 그는 훗날 화천대유 고문으로 월 1500만원을 받았으며, 해당 판결 전후에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권 대법관을 8번 찾아가기도 했다. ‘재판 거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왼쪽)과 권순일 전 대법관. 뉴스1·뉴시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왼쪽)과 권순일 전 대법관. 뉴스1·뉴시스

 하여튼 아무리 황당해도 대법원 판결은 이제 판례가 됐으니 강씨의 소시오패스 발언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 강씨는 기자회견을 한 게 아니라 유튜브에 나와 진행자가 “이재명은 야누스나 지킬앤하이드 같다”고 하자 “소시오패스나 안티소셜(anti-social) 경향이 있다”고 답했을 뿐이다. “이런 사람은 언뜻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말도 했다. 설사 거짓이라 해도 적극적이며 계획적인 발언이라고 하기 힘들다.

 이 후보는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파상 공세에 현란한 말솜씨로 유유히 빠져나가며 만만치 않은 맷집을 보여줬다. 민주당에서 “압승했다”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자신이 성남시장으로 결정권자였고, 측근이 깊게 관여했으며, 민간 업자에게 1조원 가까운 이익을 몰아준 비리가 터졌음에도 반성하고 낮추기보다 “국민의힘 게이트다” “5500억원을 환수했다. 딴 사람이라면 이렇게 못했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특히 여러 차례 “흐흐흐”라며 조롱하는 듯한 태도에 섬뜩했다는 사람이 많았다. 선거 기간 상대방을 향한 막말은 숱하게 있었다. 그럼에도 소시오패스란 지적이 지금처럼 회자하는 건 단지 프레임에 불과할까. 오늘도 ‘식당 총량제’를 꺼냈다가 하루 만에 뒤집는 이 후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민우 정치에디터

최민우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