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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방촌의 세계-철농의 전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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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권위와 신용의 상징으로 관료의 문서에나 찍던 도장이 전각(篆刻) 예술로 승격된 것은 원나라 말기인 14세기 문인화가 왕면이 돌에 전서(篆書)를 새기면서부터였다. 금석학이 발전한 청대, 서화가들은 자신이 새긴 전각을 낙관으로 사용했고, 전각은 문인 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아 갔다. 긴 획과 짧은 획, 획이 촘촘한 글자와 성긴 글자,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의 장단(長短)·허실(虛實)·개합(開合)의 어우러짐은 인간사와도 닮았으니 전각을 ‘방촌지계(方寸之界·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세계)’라 칭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로부터 본격화한 우리나라 전각의 명맥은 20세기 독보적 전각가 철농 이기우(李基雨·1921~93)에 이르러 만개했다. 이응노·장우성 등 유명 서화가는 물론 김구·백낙준·윤보선 등 정계 인물들도 그의 전각을 즐겨 사용했다. 왕성히 활동하던 40대 초반 갑작스레 파킨슨병에 걸렸지만, 그는 도자 표면에 글자를 새겨 도자와 전각을 결합한 ‘도각(陶刻)’, 석고판에 글자를 새겨 찍는 탁본 작업 등 전각의 경계를 넓히는 실험을 이어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이기우의 예술 역정은 이천 시립월전미술관 ‘철필휘지(鐵筆揮之)’ 전시(12월 19일까지)에 나온 서예·전각 100여 점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기우, ‘철도인(銕道人·왼쪽)’과 ‘여원(如願)’. [사진 이천 시립월전미술관]

이기우, ‘철도인(銕道人·왼쪽)’과 ‘여원(如願)’. [사진 이천 시립월전미술관]

25세에 해방을 맞은 철농은 이듬해 서화·전각계의 거목 위창 오세창을 찾아가 아호 ‘철농(鐵農·철필의 농부)’을 부여받고 한·중·일 대가들의 전각이 담겨있는 인보(印譜)를 공부하며 안목을 넓혀간다. 국전에 서예부가 신설되고 전각계도 부흥기를 맞자, 1955년 한국 최초로 전각 개인전을 열어 독자적 작풍을 선보였다. 자신의 호를 새긴  ‘銕道人(철도인)’은 글자를 음각한 백문인(白文印·글자가 희게 찍힌 인장) 이다. ‘道’를 간략화한 것은 16세기 중국 전각가 하진을 떠올리지만, 두텁고 거친 ‘銕’의 획과 각진 ‘人’의 직선은 철농 특유의 굳세고 정적인 구성미를 드러낸다. 이에 반해  ‘如願(여원·바라던 대로 되다)’은 글자를 양각한 주문인(朱文印)이다. ‘願’을 대전(大篆)으로 새긴 것은 중국 근대 전각가 조지겸과 닮았으나, ‘如’의 곡선과 원형이 만들어낸 동적 공간은 철농의 미감을 잘 보여준다.

이같이 양각(陽刻)·음각(陰刻), 주·백(朱白), 방·원(方圓), 곡·직(曲直), 정·동(靜動)이 상응하는 그의 전각 미학은, 만물의 생성을 陰(--)과 陽(-)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주역』의 세계관과도 통한다. 공존을 거부하는 이분법이 아닌, 상호보완을 중시하는 조화의 미학이다. 강한 쇠칼이 단단한 돌과 충돌해서 만들어낸 철필휘지의 전각은 우리에게 단절과 전유가 아닌 상생과 나눔의 미학을 전하며, 전각의 불모지 한국에서 일궈낸 철농만의 세계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