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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선량한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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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김현예 P팀장

‘설렁탕과 육개장, 장국밥에는 흰쌀을 50%, 잡곡을 25%, 면을 25% 섞는다. 일본 음식점에서 파는 카레라이스나 덮밥류엔 잡곡을 25% 넣는다. 외국인이 찾는 관광호텔 음식점과 초밥인 경우에는 흰쌀 사용을 허가한다. 단, 서민이 이용하는 1인당 50원 이하의 정식에 대해서는 면을 빼고 25% 이상의 잡곡만 섞도록 한다.’

손님 밥상에 뭘 올려야 할지를 결정한 것이 국가였다면 믿겠는가. 1960년대 정부는 쌀이 부족하자 행정명령을 통한 절미(節米) 운동에 나선다. 부처 간 갈등도 상당했는데, 당시 농림부는 음식점에서 파는 식사에서 아예 쌀밥을 빼자고 나선 반면, 보건사회부에선 보리 등을 밥에 섞는 비율을 25%에서 50%로 높이자고 다툼을 벌였다. 말하자면 쌀밥, 보리밥 싸움이었다.

절미통도 생겨났다. 하루에 한 숟가락의 쌀을 모아 아끼자는 것으로 쌀통엔 ‘절미 저축’ 같은 글씨를 큼지막하게 써 붙였다. 가정집에선 이틀에 한 번 밀가루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7일 “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코로나19로 문 닫는 음식점이 많다는 데서 시작한 이야기였다. 요지는 이랬다. “하도 식당을 열었다 망하고 해서….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못 하긴 했는데 총량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마구 식당을 열어서 망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선량한 국가에 의한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

이후 선거캠프 측에서 “고민 차원의 이야기”라고 빠르게 뒷수습을 하긴 했지만, ‘선량한 규제’라는 이 후보의 음식점 허가 총량제 발언에 잊혔던 절미운동을 떠올렸다. 쌀이 없고,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던 시절의 고통을 없앤 건 절미운동 규제가 아닌 통일벼였다. 1971년 허문회 서울대 농대 교수의 연구로 다른 벼보다 생산성을 월등히 높인 통일벼가 등장했고, 점차 재배면적이 늘어나면서 1976년 절미운동은 자취를 감췄다.

문 닫는 음식점이 많은 것은 단순히 음식점 수 때문만은 아니다.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먹고 살 궁리를 하다 가게를 여는 사람들이 늘어서다. 여기에 코로나19 광풍마저 닥쳐 눈물의 폐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영업자 이야기는 도처에 깔려 있다. 마구 식당을 열어 망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문제는 경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