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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관 탄핵 억지로 밀어붙인 민주당 사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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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임성근 판사 퇴직 알고도 추진했다 각하      

진보 성향 헌법재판관도 탄핵 찬성 안 해

헌법재판소가 어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을 각하했다. 많은 법률가가 예상한 대로다. 이미 법원을 떠나기로 한 임 전 부장판사를 두고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에서 허겁지겁 탄핵을 밀어붙일 때부터 예견된 결과다.

판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중대한 결격 사유가 생겨 재임용에서 탈락하지 않는 한 파면하지 못한다. 재임용 심사 주기는 10년이다. 판사에게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지만 무거운 형을 받지는 않았을 경우 재임용 심사 때까지 재판을 계속 맡기긴 어려우니 탄핵 절차를 뒀다. 판사의 신분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보완적으로 마련한 제도다. 많은 판사가 크고 작은 물의를 빚었지만, 헌정 사상 법관 탄핵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만 봐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임 전 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 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1심 판결문에 ‘재판 관여는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여당에서 탄핵을 강행했다. 더욱이 임 전 부장판사는 이미 퇴직이 예정돼 있어 탄핵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당은 사법부 독립을 위해 설계한 제도를 ‘판사 망신주기용’으로 전락시켰다.

이 와중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발언 녹취가 폭로돼 충격을 더했다. 사표를 내겠다는 임 전 부장판사에게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라고 하는 김 대법원장의 말은 귀를 의심케 했다.

4월 재·보선을 두 달 앞두고 여당이 탄핵 절차를 밟자 선거용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의 유죄 판결 등으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법원 겁주기라는 해석도 따랐다. 어제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으로 이런 의혹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진보 성향의 헌법재판관들이 일제히 힘을 실어준다고 해도 법관 탄핵에 필요한 재판관 6명의 찬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진보 성향의 문형배 재판관은 ‘심판절차 종료’ 의견을 냈고, 이미선 재판관은 ‘각하’ 의견이어서 탄핵에 찬성한 재판관은 3명에 불과했다.

판사 출신이면서도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밀어붙인 이탄희·이수진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역시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사법부 수장으로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번 사태를 주도하거나 방조한 장본인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정치권은 힘으로 사법부를 찍어 누르고, 법원은 국회 눈치나 살피는 삼권분립의 훼손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