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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종전선언 논의 조건…한·미훈련 올스톱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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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광물 수출 허용 등을 한반도 종전선언을 논의하기 위한 만남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국가정보원이 28일 밝혔다. 그러나 박지원 국정원장은 북한이 조건 없이도 대화에 나설지 여부에 대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이날 국정원에 대한 비공개 국정감사를 마친 뒤 가진 여야 간사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종전선언 논의를 하려면 만나야 하는데, 만남을 위한 선결 조건을 북한이 제시했다”며 “선결 조건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했는데, 내용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 광물 수출 및 석유 수입 허용 등이다”고 말했다.

북한이 요구한 광물 수출과 석유 수입 허용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염두에 둔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2016년 북한의 고강도 도발로 진화를 거듭해 제재사를 통틀어 역대 가장 강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 시작점이 된 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인 2016년 3월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 2270호였는데, 여기서 석탄·철·철광석의 수출을 대부분 금지했다. 금·바나듐광·티타늄광·희토류 수출도 전면 금지됐다. 대북제재에서 특정 분야 자체를 옥죄는 분야별 제재(sectoral ban)가 도입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광물 수출을 통해 북한이 통치자금 대부분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데 주목한 결과였다.

북한은 그간 제재로 인한 괴로움은 인정하면서도, 2018년 대화 테이블로 나온 게 제재와 압박의 효과라는 한·미의 주장은 한사코 부인해 왔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위한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당장 광물 수출부터 허용해 달라고 한 것은 결국 당시 안보리가 광물을 타깃으로 한 게 북한에는 가장 큰 피해를 준 치명타였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회의장서 김일성·김정일 사진 없앤 북, 김정은주의 용어 써”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8일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에 출석해 감사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28일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에 출석해 감사 준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날 정보위 여당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북한의 선결 조건 제시와 관련, “북한이 적어도 한·미 훈련은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선결 조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사실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선결 조건 없이 북한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박지원 원장은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가능성이 없지 않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가 열려 있다면서도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 전에는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박 원장은 개인 생각을 전제로 북한이 선결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미국의 이런 입장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이 대놓고 선결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은 한국을 향해 미국을 설득해 보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 또 종전선언 관련 논의가 무산됐을 때 책임을 한·미에 돌리고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에 몰두하는 명분을 마련하는 것일 수 있다.

국정원은 아울러 최근 해외 언론이 제기한 ‘김정은 대역설’ 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신변 이상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국정원이 일부에서 제기된 김정은 대역설은 근거 없고,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보고했다”며 “김정은의 체중이 2019년 약 140㎏에서 현재 20㎏가량 감량된 것으로 보이며, 건강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 같은 보고에 대해 “안면 체적 분석과 체중 추정 모델, 초해상도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라며 “초해상도 영상은 얼굴의 피부 트러블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김정은

김정은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최근 독자적 사상체계를 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도 보고했다. 김 의원은 “김정은이 집권 10년을 맞아 당 회의장 배경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을 없애고, ‘김정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독자적 사상체계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고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북한의 핵 동향과 관련해서는 “2018년 말 가동 중단된 영변 5㎿급 원자로가 최근 재가동 중인 동향이 포착됐으며, 영변 재처리 시설은 올해 상반기 2~7월 가동 징후가 식별됐다”며 “이 기간 동안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이 같은 동향에 대해 “플루토늄을 추가로 확보해 핵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영변이 전략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또 김 위원장이 최근 ‘미국이 주적이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고도 전했다. 하태경 의원은 “국정원은 북한의 대미 관계와 관련해 지난 9월부터 그간 신중 모드에서 벗어나 무력시위와 담화전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다만 김정은이 국방발전전람회에서 ‘미국은 주적이 아니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란 메시지도 동시에 말했다고 한다”고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의 식량난에 대해 “살얼음을 걷는 심정”이라며 “나락 한 톨까지 확보하라. 밥 먹는 사람은 모두 농촌 지원에 나서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날 이른바 ‘제보 사주’ 의혹으로 최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데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고,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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