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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32m에 140t…466년 만의 군사기밀, 이순신 장군 '판옥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4년 10월 11일 명량대첩을 재연한 '2014 명량대첩축제'. 맨 앞에 보이는 배가 판옥선이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 11일 명량대첩을 재연한 '2014 명량대첩축제'. 맨 앞에 보이는 배가 판옥선이다. [연합뉴스]

영화 '명량'을 보면 이순신이 탄 판옥선이 일본군의 배에 충돌해 침몰시키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라면 통상 거북선을 떠올리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전투를 진두지휘하면서 거북선에 탄 적은 없다.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서 조선 해군을 지휘한 배는 판옥선이며, 실제로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최대 전력은 판옥선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그 판옥선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3년간 연구 결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학술 연구를 통해 1/30 크기로 복원한 판옥선 [자료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학술 연구를 통해 1/30 크기로 복원한 판옥선 [자료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466년 만에 판옥선을 복원한 결과가 담긴 보고서 ‘판옥선’을 발간·배포한다고 28일 밝혔다. 2019년부터 진행한 학술 연구 결과다.

판옥선은 노를 젓는 인력(노군)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판(防牌板)을 둘러 세웠고, 그 위에 평평한 갑판을 깔아 덮개를 덮은 형태의 전투형 선박이다. 평평한 갚판 위에 널판을 덮은 판잣집이라는 의미다. 다만 조선 시대 명확한 설계도나 실측도가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측은 복원을 위해 조사한 자료만 해도 방대하다. 『조선왕조실록』는 기본이고, 『이충무공전서』·『경국대전』·『해동제국기』·『해사록』·『비변사등록』·『경상도전조선통용조열책자』·『미암집』・『계미수사록』・『동사록』·『각선도본』·『헌성유고』·『일성록』·『승정원일기』·『여암전서』 등 국가의 공식 기록 및 민간 자료를 총동원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학술 연구를 통해 1/30 크기로 복원한 판옥선 [자료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학술 연구를 통해 1/30 크기로 복원한 판옥선 [자료 문화재청]

또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 조선과 수상선』, 김윤겸의 『신행도해선信行渡海船』, 일본 화원이 그린 그림인 일본 사가현나고야 성 박물관 소장 『조선통신사정사관선도』 등의 그림도 활용했다.

이런 기록을 참조한 연구소 측은 기초 설계와 조선공학적 분석, 3D 모델링 실험 등을 거쳐 판옥선의 크기를 내놓았다. 또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30분의 1 크기의 판옥선 모형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판옥선의 규모는 길이 32.16m, 선폭 8.74m, 높이 5.56m이며, 선체 중량은 140.3톤으로 확인됐다. 또한 전투병력을 포함해 140명가량이 탑승했으며 배 내부에는 화장실과 부엌도 마련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판옥선의 재료로는 소나무와 함께 노나무·전나무·느릅나무 등 다양한 목재가 이용됐으며, 쇠못과 나무못이 함께 사용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학술 연구를 통해 1/30 크기로 복원한 판옥선 [자료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학술 연구를 통해 1/30 크기로 복원한 판옥선 [자료 문화재청]

조선 수군이 판옥선을 제작한 것은 왜구 문제 때문이다.
1566년 『명종실록(明宗實錄)』에 따르면 대신과 비변사가 각 진(鎭)·포(浦)의 판옥선에 대해 “옛날 왜적은 모두 상장(上粧·선체 최상층의 갑판)이 없는 평선(平船)을 타고 왔기 때문에 우리도 평선을 가지고 적을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적이 모두 상장이 있는 옥선(屋船)을 타고 오기 때문에 우리도 부득이 판옥선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기록이 나온다.

왜구들이 과거처럼 높이가 낮은 평선이 아니라 상장을 얹은 옥선을 타고 오는 만큼 이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도 방패판 위에 추가로 덮개를 덮어 판옥 구조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순재 학예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노군이 노를 저을 수 있는 공간과 활과 총포를 쏘는 사수·화포장·포수 등이 상갑판 위의 넓고 높은 장소에서 효율적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또 적선과 충돌하여 충파(衝破)할 수 있을 만큼 두꺼운 선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약 30년 후 임진왜란이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사전대비가 된 셈이다.

'각선도본'에 그려진 조선 전선(戰船) [중앙포토]

'각선도본'에 그려진 조선 전선(戰船) [중앙포토]

다만 당시 기록을 통해 판옥선의 단점도 확인했다.
썰물 때에는 판옥선이 쉽게 돌진할 수 없다는 부분, 지형이 좁고 암초 같은 것이 많을 때는 서로 부딪치게 되어 공격하기 어렵다는 점, 둔중하고 속력이 느리다는 점 등이다. 또한 병사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전복된 기록으로 보아 복원성에 결점이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또한 노군이 전후방으로 앉아 노를 저었으며 노는 노착(노의 손 잡는 부분)과 노잎(노를 저을 때 물 속에 잠기는 부분)을 겹쳐 이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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