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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법관 탄핵 '각하'…헌재 "퇴임 임성근 탄핵소추 부적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재판 개입 의혹' 관련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에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피청구인석에 앉아있다. 뉴스1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재판 개입 의혹' 관련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에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피청구인석에 앉아있다. 뉴스1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심판 사건이 심리 8개월 만에 '각하'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이미 퇴임한 법관에 대한 부적법한 소제기(탄핵소추)라는 게 이유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헌법재판관 5명 각하…인용 3명, 심판절차 종료 1명 

헌법재판소는 28일 재판 개입 의혹을 받는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서 임 전 부장판사를 파면해달라는 국회의 청구를 각하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다수인 재판관 5명(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이 각하 의견을 낸 데 따른 결정이다.

각하 결정은 탄핵소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임 전 부장판사의 파면은 이뤄지지 않는다. 헌재는 "이미 임기만료로 퇴직한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본안 판단에 나아가도 파면 결정을 선고할 수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 탄핵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문형배 재판관은 임 전 부장판사가 임기 만료로 퇴직한 경우 더 이상 탄핵 심판의 피청구인이 될 자격을 보유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탄핵심판 절차를 종료해야 한다는 ‘심판절차 종료’ 의견을 냈다.

다만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주심인 이석태 재판관, 김기영 재판관 등 재판관 3명은 인용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은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인정해 본안 판단에 나아가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직무집행에 있어서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헌재 탄핵 각하 결정으로 이번 탄핵소추를 밀어붙인 여당은 '법원 길들이기'를 시도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그간 법조계 일각에선 "김경수 전 경남지사,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여당이 법관 탄핵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 "파면 결정 통해 해당 공직 박탈 불가능"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4~2015년 3가지 재판에 개입한 의혹으로 지난 2월 탄핵소추됐다. 국회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의 재판 개입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의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집회 사건 판결 내용 수정 지시 ▶프로야구 선수 원정도박 사건 재판 개입 등을 탄핵 사유로 들었다.

국회 측은 변론 과정에서 "헌법 질서 확립을 위해 전직 법관이라도 위헌 선고가 필요하다"며 "임 전 부장판사의 임기가 만료된 올해 2월 28일로 소급해 파면을 선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수의 재판관은 이러한 국회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각하 의견을 낸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파면 결정을 통한 해당 공직 박탈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예외적 심판 이익을 인정해 탄핵 사유의 유무만을 확인하는 결정을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임기가 이미 만료된 만큼 소급 파면 결정은 기각 혹은 각하해야 한다는 임 전 부장판사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셈이다. 임 전 부장판사 측은 이외에도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개인적 친분을 토대로 한 조언에 불과하고 의혹이 불거진 담당 판사들이 모두 형사재판에서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를 관여나 압력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왔다.

임성근 "합리적 결정에 경의"…'탄핵 주도' 이탄희 "극히 유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를 각하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를 각하했다. 뉴스1

임 전 부장판사는 이날 헌재 결정에 대해 "법리에 따른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준 헌법재판소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초래해 많은 분들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탄핵소추안 발의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다수 의견은 본안 판단을 회피함으로써 헌법 수호 역할을 포기했다"며 "극히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같은 내용의 사건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 재판도 받고 있다.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형사 재판 판결과 헌재의 파면 여부 판단은 서로 독립된 결정인 만큼 최종 결과는 엇갈릴 수 있다.

고(故)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이어 세 번째 탄핵심판

탄핵은 헌법상 지위가 보장된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 헌법재판관·법관 등이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어긴 경우 파면하기 위한 절차다. 법관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탄핵에 의해서만 파면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2004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대통령이 아닌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임 전 부장판사가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기각됐고, 박 전 대통령은 헌정 최초로 인용 결정이 내려져 파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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