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흑인 할머니 "난 비행청소년 아니다"…슬픈 투쟁 66년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15:19

업데이트 2021.10.28 15:28

15세에 몽고메리 버스 분리 정책에 도전했다가 최초로 체포됐던 클로데트 콜빈 2009년 모습. AP=연합뉴스

15세에 몽고메리 버스 분리 정책에 도전했다가 최초로 체포됐던 클로데트 콜빈 2009년 모습. AP=연합뉴스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했다가 체포됐던 15세 흑인 소녀가 66년 만에 무죄를 요구하고 나섰다. 몽고메리 버스 분리 정책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최초의 인물, 클로데트 콜빈(82)이다.

콜빈은 26일(현지시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카운티 소년법원에 범죄기록 말소 청구서를 접수했다. BBC는 27일 “콜빈은 (66년이 지나도) 보호관찰을 공식적으로 끝내지 않은 법원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콜빈은 이날 신청서를 제출한 뒤 지지자들과 만나 “이젠 ‘나는 비행 청소년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며 “범죄기록이 말소된다는 것은 손주들과 증손주들, 그리고 다른 흑인 아이들에게 의미가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계속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로데트 콜빈(오른쪽 아래)이 26일(현지시간) 변호사와 함께 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소년법원에 범죄기록 말소 청구서를 접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클로데트 콜빈(오른쪽 아래)이 26일(현지시간) 변호사와 함께 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소년법원에 범죄기록 말소 청구서를 접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콜빈은 스무살 때 몽고메리를 떠난 후 수십 년간 뉴욕에서 살았지만, 앨라배마에 남아있던 가족은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법원에서 콜빈의 보호관찰이 끝났다는 통지가 없었고, 콜빈이 가족을 만나러 고향에 올 때마다 무슨 이유로 언제 체포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콜빈 측 필립 엔슬러 변호사는 “그동안 콜빈의 이야기를 알리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그의 범죄 기록을 지우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로자 파크스보다 9개월 앞서

콜빈 사건은 흑백 인종차별 철폐의 상징이 된 로자 파크스의 체포 사건보다 9개월 앞섰다. 1955년 3월 콜빈은 학교를 마친 뒤 친구와 함께 버스에 탔고, 백인 좌석이 부족해지자 버스 기사는 콜빈과 친구에게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콜빈은 그러나 “정당한 요금을 지불했고 이 자리에 앉는 건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며 거부했고, 버스 기사는 경찰에 신고했다. 콜빈은 훗날 “어르신이 아니라 젊은 여성이어서 비켜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로데트 콜빈(오른쪽)이 26일(현지시간) 몽고메리 소년법원에서 범죄기록 말소 청구서를 접수한 뒤 기자회견에서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클로데트 콜빈(오른쪽)이 26일(현지시간) 몽고메리 소년법원에서 범죄기록 말소 청구서를 접수한 뒤 기자회견에서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저항하는 콜빈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이 그를 데리고 간 곳은 청소년 구금센터가 아닌 성인 감옥이었다. 매트리스도 없는 침대와 부서진 싱크대만 있는 독방에 홀로 갇힌 콜빈은 3시간 만에 풀려났지만, 불안한 생활은 계속됐다. 마을 사람들은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 KKK단의 보복을 우려해 콜빈의 집 보초를 섰고, 콜빈의 아버지는 총을 장전한 채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콜빈은 이후 항소 끝에 경찰 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이와 함께 콜빈의 비행이 확인됐다며 ‘좋은 행동을 할 때까지’ 보호관찰 처분을 내렸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버스 분리 정책에 저항했다가 체포된 15세 소녀는 그러나 사회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흑인 인권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CCP)가 이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벌 철폐운동을 벌일 경우 콜빈이 미혼모라는 점이 부각돼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9개월 후인 1955년 12월 NACCP 몽고메리 지부에서 활동하던 로자 파크스가 콜빈과 같은 이유로 체포됐고,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의 주도로 보이콧이 이어진 끝에 1956년 몽고메리의 인종차별 정책은 위헌 결정을 받아 철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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