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천·숲·두루미가 어우러진 철원 DMZ 속 화살머리고지를 가다

중앙일보

입력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 옆을 잔잔히 흐르는 역곡천의 모습. 강찬수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 옆을 잔잔히 흐르는 역곡천의 모습. 강찬수

27일 오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비무장지대(DMZ) 안 화살머리고지.
홍정기 환경부 차관을 비롯해 'DMZ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참가자들에게 '금단의 땅' DMZ의 빗장이 열렸다.

하얀색 헬멧에 무거운 방탄조끼를 착용한 20여 명의 일행은 자동차를 타고 남방한계선 통문을 넘어 DMZ로 들어섰다.

DMZ 내부 생태계의 모습을 직접 살펴보고, 지난 6월까지 6.25 한국전쟁 당시 전사자 유해 발굴이 진행됐던 화살머리고지를 찾는 이날 일정에 기자도 함께했다.

도로 양편에는 철조망과 함께 지뢰 지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계속 눈에 띄었다.

DMZ 안 역곡천은 지난해 여름 홍수 때 콘크리트 다리를 쓸어가 버렸지만, 이날 만큼은 임시 교량 아래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6.25 때 치열한 전투 벌여졌던 곳  

DMZ 생태계 탐방에 나선 일행이 감시초소(GP) 시설을 일부 개조한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 입장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DMZ 생태계 탐방에 나선 일행이 감시초소(GP) 시설을 일부 개조한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 입장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육군은 화살머리고지가 건너다보이는 감시초소(GP) 시설을 일부 할애해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으로 꾸며놓았다.

기념관으로 꾸민 실내 공간 한쪽 벽면에는 전몰장병에게 헌화·묵념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다른 벽면에는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철모·대검·소총 등이 전시돼 있었다.

화살머리고지는 6.25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으로 유명한 백마고지(해발 395m)에서 서쪽으로 3㎞ 지점에 위치해 남쪽으로 돌출한 해발 281m의 고지다.

이곳에서도 1953년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 사이 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이 전투에서 국군 180여 명이 전사하고 실종 16명, 770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중공군도 1,300여 명이 사살됐다.

지난 6월 유해 발굴 작업 종료 

홍정기 환경부 차관이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서 전몰 장병에게 헌화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홍정기 환경부 차관이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서 전몰 장병에게 헌화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이곳에서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통해 DMZ 내 시범적 공동 유해 발굴을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6·25 격전지였던 철원 지역의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이 시작됐으나, 북측은 소극적이었고 남측이 단독으로 발굴에 나섰다.
유해 발굴은 2019년 4월에 시작돼 지난 6월 24일 종료됐다.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 전시된 소총 등 유품들.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 전시된 소총 등 유품들.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 전시된 철모와 수통, 대검 등 유품들.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기념관에 전시된 철모와 수통, 대검 등 유품들.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현장.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현장. 강찬수 기자

군은 2년 반 동안 화살머리고지에서 424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9명의 신원을 확인해 유해봉안과 안장식을 거행했다.

또 국군 전사자 이외에 유엔군 추정 유해 1구와 중공군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유해도 발굴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유해 발굴 때 유품을 근거로 아군인지, 북한군·중공군인지를 판단한다"며 "아군의 경우 DNA를 채취해 유가족 DNA와 비교해 신원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중공군 유해의 경우는 매년 한 차례 중국으로 송환한다는 것이다.

유해 발굴된 곳에 화강암 말뚝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현장. 유해가 발견된 장소에 화강암 말뚝을 세워놓았다. 강찬수 기자

철원 DMZ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현장. 유해가 발견된 장소에 화강암 말뚝을 세워놓았다. 강찬수 기자

사단 관계자는 "올 연말까지 통일부 남북협력기금 20억 원을 활용해 유해 발굴 현장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철원군에서도 별도로 283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화살머리고지 평화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에서도 내년 예산에 191억 원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행은 GP에서 나와 화살머리고지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버드나무가 자라고 칡이 덮였던 것을 걷어내고 유해 발굴을 진행하면서, 맨땅이 드러나 있었다.
군데군데 화강암 말뚝이 눈에 띄었다.

군 관계자는 "유해가 발굴된 곳에 화강암 말뚝을 세웠다"며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산림청에서 산림 복원 시범 사업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DMZ의 숲. 이곳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평야 숲이 발달했다. 강찬수 기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DMZ의 숲. 이곳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평야 숲이 발달했다. 강찬수 기자

유해발굴이 진행된 이곳에서는 다음 달부터 시범적으로 산림 복원과 산사태 방지 사업이 진행된다.

13만㎡에 대해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돼 654발의 지뢰, 9595발의 불발탄을 제거했지만, 식생도 제거됐다.
이에 산림청은 우선 1억 원의 예산을 들여 화살나무·구절초 등을 심기로 했다.

성과를 봐서 산림복원 사업을 화살머리고지 전체로 확대하고, 현재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백마고지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일행이 이동하는 중간중간에 국립생태원 박진영 보호지역연구팀장이 DMZ 생태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박 팀장은 "이곳은 역곡천을 중심으로 하천 주변 식생이 잘 보존돼 있고, 용암대지에 평야 숲이 펼쳐져 있다"며 "주기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바람에 초지가 발달하는 등 특이한 생태계를 이루기도 한다"고 말했다.

민통선 지역엔 벌써 두루미가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에서 홍정기 차관 등에게 DMZ 생태계 특성을 설명하는 박진영 국립생태원 팀장(오른쪽).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에서 홍정기 차관 등에게 DMZ 생태계 특성을 설명하는 박진영 국립생태원 팀장(오른쪽).

그는 "비무장지대를 다닐 수 없어 GP에서 식생 변화를 주기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곳 GP에는 구렁이가 살고 있고, 주변에서 삵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일행은 통문을 빠져나와 철책선 남쪽 민통선 지역을 통과할 때 수십 마리의 두루미·재두루미가 떼를 지어 먹이를 먹는 모습을 발견했다.
추수가 끝난 후에 다시 물을 댄 논이었다.

공중에도 재두루미가 몇 마리씩 무리를 이뤄 하늘을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이들은 이달 중순 갑자기 몰아닥친 북쪽 찬바람을 타고 예년보다 다소 이른 시기에 철원 지역을 찾았다.

DMZ를 둘러본 환경부 홍 차관은 "비무장지대 일원의 숲이 잘 보존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역 주민에 더 많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DMZ를 흐르는 역곡천의 모습. 강찬수 기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DMZ를 흐르는 역곡천의 모습. 강찬수 기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민통선에서 날고 있는 두루미. 강찬수 기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민통선에서 날고 있는 두루미. 강찬수 기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민통선 무논에 모여든 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 강찬수 기자

철원 화살머리고지 인근 민통선 무논에 모여든 두루미와 재두루미 무리. 강찬수 기자

환경부 주최 국제 심포지엄도 열려

27일 오후 철원에서 열린 'DMZ 보전 국제 심포지엄' 모습. 강찬수 기자

27일 오후 철원에서 열린 'DMZ 보전 국제 심포지엄' 모습. 강찬수 기자

한편, 환경부는 이날 오후 철원군 한탄리버스파호텔에서 'DMZ 보전과 지속가능 이용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정부, 지자체, 환경단체, 지역사회, 독일 정부 등 국내외 관계자 50여 명이 현장과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참여해 비무장지대 일원의 생태계 현황을 공유하고 보전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자연환경국민신탁 전재경 대표는 "DMZ 일원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는 환경부와 국방부 등 관계 부처가 MOU(양해각서)를 맺고 정책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 부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정책을 펼칠 때 나타날 수 있는 혼선을 예방하고, 체계적인 협력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