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만에 10억년 시간여행···한국의 숨겨진 '지구의 속살'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5:00

업데이트 2021.10.28 11:38

인천 섬 여행⑤ 대청도, 소청도

대청도 서풍받이. 높이 80m가 넘는 해안절벽 위를 걸어다닌다. 산악회가 즐겨 찾는 트레킹 코스다.

대청도 서풍받이. 높이 80m가 넘는 해안절벽 위를 걸어다닌다. 산악회가 즐겨 찾는 트레킹 코스다.

서해5도는 서해 먼바다의 다섯 개 섬을 이른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지리적 개념이라지만, 서해5도는 군사적 맥락에서 더 자주 인용된다. 남한 본토보다 북한 본토가 더 가까운 군사 요충지여서다. 멀리도 있거니와 군사적 이유로 더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섬. 육지 사람에게 서해5도는 물리적 거리보다 한참 더 먼 섬이다.

대청도와 소청도를 갔다 왔다. 형제처럼 두 섬은 지척에 있었다. 두 섬에서 북한은 북쪽에 있지 않았다. 동쪽에 있었다. 동쪽 수평선을 따라 길게 누운 땅이 죄 북한이라고 했다. 북한 땅에서 해가 뜨는 섬이라니. 대청도와 소청도가 얼마나 북쪽 깊숙이 올라가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낯선 일상

대청도 농여 해변. 물이 빠지면 드넓은 모래밭이 펼쳐진다. 반영 놀이를 하기에도 제격이다.

대청도 농여 해변. 물이 빠지면 드넓은 모래밭이 펼쳐진다. 반영 놀이를 하기에도 제격이다.

대청도와 소청도는 먼 섬이다. 멀어서 낯선데, 오랜 시간 육지와 단절돼 더 낯설게 된 섬이다. 대청도와 소청도에는 군인이 많이 산다. 두 섬에 거주하는 민간인 숫자와 군인 숫자가 얼추 비슷하다. 섬에서는 민간인과 군인이 마을 식당 옆자리에 앉아 홍합칼국수를 먹고, 대청도에 하나뿐이라는 카페에서 나란히 아이스 커피를 주문한다. 여기엔 어떠한 위화감이나 어색함도 없다.

농여 해변의 석양. 물 빠진 해변에 저녁해가 길게 드리웠다. 지구의 풍경이라기보단 화성의 풍경 같았다.

농여 해변의 석양. 물 빠진 해변에 저녁해가 길게 드리웠다. 지구의 풍경이라기보단 화성의 풍경 같았다.

섬에서 겪은 낯선 일상은 외려 여행의 재미를 자극했다. 대청도 농여 해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였다. 마침 물이 빠져 풀등이 훤히 드러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붉게 물드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군인 두 명이 다가와 엄포를 놨다. “일몰 뒤에는 해변에서 나가셔야 합니다.” 농여 해변과 붙은 미아동 해변은 군사 보호구역이어서 해가 지면 출입할 수 없단다. 시간에 쫓겨서인지, 떨어지는 해가 더 아쉬웠다. 하여 일몰 직후 잠깐 펼쳐지는 이내의 장관을 놓치고 말았다.

소청도에서 목격한 스티로폼 배. 소청도 주민이 이 배 모양 스티로폼에 모터를 달고 나가 미역을 줍거나 홍합을 딴다.

소청도에서 목격한 스티로폼 배. 소청도 주민이 이 배 모양 스티로폼에 모터를 달고 나가 미역을 줍거나 홍합을 딴다.

섬의 소소한 풍경도 기억에 생생하다. 소청도에 마을은 단 두 곳이었다. 150명 정도 사는데, 평균 연령이 74세다. 포구에 묶인 어선 대부분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였다. 바다가 잔잔하면 스티로폼 배에 모터를 달고 나가 미역을 줍거나 홍합을 딴다고 했다. 대청도에선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대청 중·고등학교가 잊히지 않는다. 엘림여행사 장윤주(50) 대표가 “학생 수가 50명인데 선생님은 20명”이라고 말해줬다.

대청도 마을을 거닐다 발견한 홍어. 대청도는 국내 최대 홍어 산지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쪄 먹는다.

대청도 마을을 거닐다 발견한 홍어. 대청도는 국내 최대 홍어 산지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쪄 먹는다.

대청도가 홍어의 고장이란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청도는 흑산도보다 홍어 어획량이 더 많은 섬이다. 대청도 홍어가 목포로 팔려 나가 목포에서 삭힌 뒤 ‘국내산 홍어’란 이름으로 서울의 남도 음식점에서 팔린다. 대청도에선 홍어를 삭히지 않는다. 생홍어회를 먹거나 말린 뒤 쪄 먹는다. 대청도 ‘돼지식당’ 서응택(59) 대표가 “생홍어회는 볼살이 제일 맛있다”고 알려줬다. 대청도에선 빨래보다 홍어 말리는 풍경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10억 년 전 지구

소청도 분바위.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얀 바위다. 이름은 바위지만, 하얀 대리암 지형이 700m나 이어진다.

소청도 분바위.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얀 바위다. 이름은 바위지만, 하얀 대리암 지형이 700m나 이어진다.

대청도와 소청도는 10억 년 전 지형이 보전된 땅이다. 고립과 단절이라는 조건이 낳은 뜻밖의 결과일 테다. 두 섬에는 국가지질 명소 다섯 곳이 있다. 대청도에 앞서 소개한 농여 해변과 미아동 해변,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서풍받이 등 4개가, 소청도에 분바위와 월띠 한 곳이 있다.

분바위 아래 홍합 밭. 이렇게 많은 홍합을 본 것은 처음이다. 물이 빠져야 드러나는 비경이다.

분바위 아래 홍합 밭. 이렇게 많은 홍합을 본 것은 처음이다. 물이 빠져야 드러나는 비경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 박테리아 화석이다. 굴딱지가 굳어 돌이 되는 모습이 생생히 남아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 박테리아 화석이다. 굴딱지가 굳어 돌이 되는 모습이 생생히 남아있다.

분바위는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얬다. 이름은 바위지만, 하얀 바위가 해안을 따라 700m가량 이어진다. ‘월띠’란 이름은 달빛에서 나왔다. 바다에 나가면 달빛 받은 분바위가 섬에 하얀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인단다. 산호 같은 생물이 쌓여 석회암을 이뤘고 10억 년의 시간을 거치며 대리암이 됐다. 일제 강점기 마구 파헤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분바위 옆에 박테리아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다. 소청도에선 ‘굴딱지 돌’이라 한다는데, 정말 돌에서 굴딱지 흔적이 보였다. 돌 이전의 돌이라고 할까. 정말 10억 년 전 지구를 탐험하는 것 같았다.

분바위 아래는 온통 홍합 밭이었다. 노진호 지질공원해설사가 “물이 빠진 시간에만 드러나는 비경”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홍합은 생전 처음 봤다. 홍합은 1년에 6㎜ 정도씩 크는데, 8㎝가 안 되는 홍합은 못 잡는다고 한다. 섬에서 홍합은 홍어만큼 흔했다.

농여 해변의 풀등. 국내 최대 규모의 풀등이다. 물이 빠지면 장장 2㎞나 모래밭이 펼쳐진다.

농여 해변의 풀등. 국내 최대 규모의 풀등이다. 물이 빠지면 장장 2㎞나 모래밭이 펼쳐진다.

대청도 풀등을 한없이 걸어 들어갔다. 모래밭 너머로 보이는 땅이 바다 건너 백령도다.

대청도 풀등을 한없이 걸어 들어갔다. 모래밭 너머로 보이는 땅이 바다 건너 백령도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농여 해변에 펼쳐진 풀등이었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모래톱을 풀등이라 하는데, 대청도 풀등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다고 한다. 일부러 물 빠진 때를 기다려 풀등으로 나갔다. 해안에서 모래톱이 장장 2㎞나 이어졌다. 바다 건너 백령도가 코앞에 보일 때까지 걸어 들어갔다. 지금 밟는 이 모래가 몇 시간 전엔 바다였다는 사실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이 넓은 세상이 전부 내 것인 양 바다 한가운데 모래밭에서 반나절을 활보했다. 생경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바닷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콸콸콸콸,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몰려왔다. 밀물은 소리로 먼저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행정보

인천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 백령도 들어가는 배가 뜬다. 인천에서 3시간 10분쯤 달리면 소청도고, 3시간 40분 달리면 대청도고, 4시간쯤 달리면 백령도다. 여행사들은 보통 2박3일 여정으로 백령도와 대청도 여행상품을 만든다. 백령도는 빼고 대청도와 소청도만 들어가려면 다음의 여정이 제일 알차다. 오전 7시 50분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소청도에 들어갔다가 반나절 소청도를 돌아본 뒤 오후 5시 배를 타고 대청도에 들어가 2박을 하고 사흘째 되는 날 오후 1시 배를 타고 대청도를 나온다. 소청도는 민박도, 식당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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