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때마다 서로 물어뜯는다…검찰·법원에 휘둘리는 정치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5:00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7일 오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대기하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7일 오전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대기하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또 한 번 영장 기각 후폭풍이 정치권을 쓸고 지나갔다. 고발사주 의혹 ‘키맨’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이날 새벽 기각되면서다.

‘입맛대로’ 해석→정쟁

여야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물어뜯었다. 여당이 고발사주 윗선으로 지목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수처인가, 공작처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공수처 수사는) 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에 상처를 입혀 이재명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치졸한 수작”이라면서 “사법부가 공수처의 속보이는 정치공작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8년 자신이 이끌던 사법농단 수사 관련 영장이 법원에서 무더기 기각됐을 때 “많이 실망스럽다”고 공개 발언했던 것과는 판이한 태도다. 이날 판사 출신인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발사주 사건이 아니라 공익제보 사건”이라면서 “(애초에) 공익제보를 받은 것을 가지고 ‘고발사주’(라니) 태어나서 그런 용어도 처음 들어봤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 일상회복 TF 4차회의에 송영길 대표가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10.27 임현동 기자

27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 일상회복 TF 4차회의에 송영길 대표가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10.27 임현동 기자

반면 공수처 수사를 옹호하려는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영장 기각=혐의 인정’이라는 초월적 논리가 등장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법원 판결의 분명한 점은 범죄혐의 유무에는 전혀 시비걸지 않았다는 점”이라면서 “혐의가 인정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전날 법원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을 고려했다”고 낸 60자 짜리 영장 기각 사유를 혐의 인정 메시지로 해석한 거다. 변호사(사시 36회)인 송 대표는 “법원이 ‘출석해서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한 걸 믿고 (영장을) 기각한만큼 손 검사는 즉시 수사에 협력해 사상 초유의 총선 개입 국기문란 진상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술 더 떠 “범죄 성립에 대한 소명을 기각 사유로 삼지 않아 범죄 혐의는 입증됐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공수처가) 구속하려고 한 것으로 보아 윤석열 후보의 혐의를 찾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 백혜련 최고위원도 라디오에 나와 “그 부분(영장 기각)을 크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檢·法에 널뛰는 與野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운데)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10.25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운데)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10.25 임현동 기자

여야가 영장 기각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 건 불과 12일만이다. 지난 15일 성남 대장동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구속영장 기각 때도 여야는 종일 “검찰” 타령을 했다. 이용빈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은 김만배, 남욱, 유동규, 정영학 등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들의 오락가락 말만 쫓는 수사로 카더라식 의혹만 키웠다”며 “부실 수사, 늑장 수사라는 오명을 얻지 않도록 실체적 진실에 집중하는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가까운 김병욱 의원도 라디오에서 “검찰이 너무 여론에 편승해서 한 사람의 녹취록과 자술서에 근거해 수사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검찰은 봐주기 수사쇼를 하면서 뭉개고, 법원은 이에 장단 맞춰주는 그야말로 아수라판이 돼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김기현 원내대표)는 비난이 나왔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김씨 영장 기각으로 특검을 해야 할 이유는 더욱 명확해졌다”고 했고, 윤 전 총장은 “검찰이 이대로 가면 이재명 캠프 서초동 지부라는 말까지 듣게 생겼다”고 반발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재소환돼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재소환돼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내 민주당이 주도한 ‘검찰개혁’ 드라이브가 정치의 사법화를 오히려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많은 말이 나오고, 정국을 보는 국민들도 더 혼란스러워 하는 상황”이라면서 “검찰개혁의 중요도를 떠나서, 국민적 상식과 부합하는 개혁이 이뤄졌는지는 현 정부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는 지난해 11월 30일~12월 2일 검찰 개혁 추진 방향을 물은 설문조사에서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졌다”는 응답이 55%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하지만 여당 내 검찰개혁 강경파는 이날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시즌2 검찰개혁 연속세미나’를 열었다.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발언자로 나서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검찰이 전면에 등장하는데 검찰의 수사방향과 결정에 따라 선거가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검찰개혁을 조속하게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30여분 전 민주당 최고위에서 2분간 대장동·고발사주 수사 얘기만 늘어놓은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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