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북해 바람이 멎자 유럽 에너지 안보가 흔들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0:19

업데이트 2021.10.28 09:00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탈원전 고집하는 탄소중립, 현실성 있나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영국 북해 일대는 거센 바람으로 유명하다. 평균 풍속이 초속 11m 이상이다. 풍력 발전을 위한 최적의 속도다. 세계 최대 풍력발전 사업 ‘혼시 프로젝트’를 가능케 한 자연조건이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은 초속 7.2m 정도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북해는 우리 서남해안보다 풍력 발전량이 세 배 이상 많다.

그런데 올해 유럽에는 기후 이상으로 바람이 줄었다. 지난해 유럽 전체의 발전량 중 13%를 차지하던 풍력 비중이 올해는 5%로 뚝 떨어졌다. 풍력발전 감소는 경제 회복으로 인한 에너지 수요 증가가 겹치며 서유럽 에너지 대란을 불렀다.

풍력발전 줄자 서유럽 전력대란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 떠올라

탄소저감 위해서도 원전 재주목

우리만 공상과학 수준 계획 집착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42%에 달하는 영국. 지난 9월 말 겪은 주유 대란은 그 전조였다. 표면적 이유는 브렉시트에 따른 트럭 운전기사 부족이었지만 저변에는 에너지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국 내 유가는 1월 이후 250%나 치솟았다. “올겨울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다. 영국은 에너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구걸하게 됐다.” 경제평론가 빌 블레인의 말이다.

러시아 입김 키운 재생에너지 가변성

북해에 조성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 올해 북해에 바람이 줄어들자 풍력 발전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재생에너지에 의존하던 서유럽 지역의 에너지 대란의 한 원인이 됐다. [사진 오스테드(풍력 발전기업) 홈페이지]

북해에 조성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 올해 북해에 바람이 줄어들자 풍력 발전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재생에너지에 의존하던 서유럽 지역의 에너지 대란의 한 원인이 됐다. [사진 오스테드(풍력 발전기업) 홈페이지]

북해의 잦아든 바람은 서유럽의 에너지 안보마저 흔들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다섯 배가량 올랐다. 그런데도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40%를 공급하는 러시아는 공급을 늘리지 않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천연가스 송유관 ‘노드스트림-2’의 건설 승인을 압박하려는 의도다. 러시아는 심지어 크림반도 강제 합병으로 촉발된 유럽연합(EU)의 제재를 푸는 데 가스 공급을 이용할 태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에너지 안보 보좌관 아모스 호흐슈타인은 “푸틴이 천연가스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EU에서 생산된 전력 중 38%는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그러나 날씨에 영향을 받는 간헐성이 최대 약점이다. 에너지 안보는 물론 지역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급기야 유럽 국가들은 한때 제쳐 놓았던 원전 카드를 다시 꺼내고 있다.

프랑스가 가장 적극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10억 유로(1조36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프랑스는 원전 의존 비율이 7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다. 2035년까지 그 비율을 50%로 낮추기로 했으나 방향을 돌린 것이다. 환경장관과 재무장관이 EDF(프랑스전력공사)에 15년 내 신규 원전 6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는 르 몽드 보도도 나왔다.

20년 넘게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영국은 2030년까지 12기의 원전을 새로 짓기로 했다. 유럽뿐만 아니다. 상업용 원전을 지은 적 없는 호주는 의회 내에 ‘원전산업 발전 검토 위원회’를 구성했다. 후쿠시마 악몽을 겪었던 일본마저 집권 자민당 안에서 SMR 도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 6배 땅에 태양광 설치?

발전원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발전원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우리는 어떤가. 최근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확정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산업계와 에너지 전문가들로부터 ‘판타지’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시나리오는 지난해 29%였던 원전 발전 비율을 2050년 6.1~7.2%로 줄였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비율은 6.6%에서 60.9~70.8%로 늘렸다. 에너지 전문가라면 생각하기 힘든 비현실적 계획이다. 탄중위 민간위원 중에는 시민단체·노동계·종교계 인사가 30% 이상 포진해 있지만, 원자력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탄중위가 상정한 2050년 우리나라 발전량은 1208~1257TWh(1TWh=1000GWh)다. 이 중 736~890TWh 정도를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의욕이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발전을 위해서는 풍력·태양광 같은 설비가 대략 500GW 이상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 태양광 1GW 설비 설치에는 대략 13㎢의 부지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설비의 절반 정도(250GW)를 태양광으로 충당한다 치면 얼추 3300㎢는 필요하다. 서울시의 6배, 제주도의 두 배 정도 면적이다. 국토의 3%가 태양광 패널로 덮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패널 효율이 높아지면 필요 면적이 좀 줄어들 수는 있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태양광 패널의 수명은 15~20년이다. 쏟아져 나오는 폐 패널 처리도 재앙 수준이 될 공산이 크다.

통념과는 다른 원전 안전성

세계가 다시 원전에 주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현실적 대책이기 때문이다. 원자력노동조합연대에 따르면 한국은 1kWh의 전력을 생산할 때마다 이산화탄소 520g을 배출한다. 그러나 원전 비율이 75%에 달하는 프랑스는 61g만을 배출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자료는 원전이 가장 우수한 저탄소 에너지원임을 보여준다. 발전소 건설, 연료 공급, 발전소 정지 후 폐쇄·해체까지 포괄하는 발전 생애주기(life-cycle) 전체를 따졌을 때 원전은 kWh당 12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원 중 육상풍력(11g)과 함께 탄소 배출이 가장 적다. 석탄은 820g, LNG는 490g, 태양광은 27g, 해상풍력은 24g이다.

원전은 대형 사고에 대한 공포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스리마일 원전사고 등이 소환되곤 한다. 그러나 과학적 데이터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국제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는 전력 1TWh를 생산할 때마다 여러 발전원의 사망률(사고나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원자력은 0.07명으로, 풍력·수력·태양광과 더불어 가장 안전한 에너지원에 속했다. 원전보다 갈탄은 467배, 석탄은 352배, 석유는 263배, 가스는 40배 높다.

‘하면 된다’식 탄소중립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정책 길라잡이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정책 길라잡이

탄소 저감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원전임에도 정부는 고집스레 외면한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에너지·환경 기술의 ‘획기적’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ESS(에너지 저장장치), 수소환원제철 기술 등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은 아직 기초 연구 혹은 개발 초기 단계다. 상용화까지 드는 비용과 시간은 가늠하기 힘들다. 실용화 자체가 의심스러운 기술도 있다.

예를 들어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할 때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보자. 이 부문 선두주자를 표방하는 포스코조차 현재로선 상용화를 장담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40조원을 들여 관련 기술과 100만 톤급 실증설비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30년 포스코의 글로벌 조강(粗鋼·강철 덩어리) 생산 능력 목표는 6000만톤. 계획이 달성돼도 이 기술로 생산하는 양은 전체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정에 드는 엄청난 ‘그린 수소’를 어떻게 확보할지도 미지수다.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은 ‘하면 된다’ 식이다. 군사 정권 시절의 구호마저 연상된다. 애초 26.3%로 잡았던 2030년 온실가스 감축(2018년 대비) 목표는 35%로 높아지더니, 영국 글래스고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참석을 앞둔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40%가 됐다. 현실적 방안은 무시된 채 막연한 희망과 가정으로 가득한 시나리오만 제시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책임마저 엿보인다.

막연한 희망에 미래 맡기나

기후 변화 대응은 국가와 인류의 과제다.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정부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봐야 한다. 불확실한 가정이 아니라 실증에 기초한 과학이 필요하다. ‘탈(脫)탈원전’의 명분을 탄소중립에서 찾는 선진국의 전략 수정을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원자력 학계의 교수 10명이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정책 길라잡이』라는 책(사진)을 냈다. 유튜브 ‘핵공감 클라쓰’를 운영하는 교수들이다. 차기 정부에 대한 에너지 정책 제안서인 셈이다. 저자 중 한 명이 답답함을 호소했다.

“탄소중립이 화석화된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벗어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탄중위의 로드맵을 보고 기대를 접었다. 신재생에너지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유지된다. 이 보조금과 얽힌 ‘이권 네트워크’에 대통령이 자신도 모르는 새 포획된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금 다시 계몽』을 쓴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커는 “원전은 인류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에너지 중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고 단언한다. 그는 “친환경 에너지 경제로 가는 길에서 원전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막연한 공포 위에서 불투명한 희망으로 ‘2050 탄소중립’을 기다리기엔 남은 30년이 너무 짧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