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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동반자” 7·7선언, 공산권 수교 물꼬 튼 ‘신의 한 수’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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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방 외교’의 지평 연 노태우 전 대통령

1991년 4월 20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한·소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유엔 가입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유엔 가입이 급물살을 탔다. [중앙포토]

1991년 4월 20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한·소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유엔 가입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유엔 가입이 급물살을 탔다. [중앙포토]

지난 26일 오후 갑작스러운 노태우(향년 89세)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황망했다. 한동안 머리가 비어있는 듯 멍해지고 마음을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허탈감을 느꼈다.

필자가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닿게 된 것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와대에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로 자리를 옮기게 된 박철언 당시 특별보좌관의 대북 특수 업무를 돕기 위해 외무부에서 필자가 긴급 차출됐다. 그 후 198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북방정책과 남북 관련 업무를 계승하기 위해 청와대로 옮겨 정책기획 비서관 직무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보통사람’이란 닉네임처럼 평소 온화한 가운데 미소를 머금고 아래 직원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노 전 대통령 “모스크바·베이징 통해 평양 움직여보자”
북방정책이 힘 발휘할수록 남북관계도 큰 변화 일어나
국제 정세의 흐름 읽고 주도적으로 주변 정세 조성해
전환기에 지혜롭게 대처한 혜안과 통찰 교훈 삼았으면

과거 청와대에서 북방정책과 남북 관계 업무를 담당했던 비서관의 한 사람으로서 고인의 정치 역정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외교·안보 업적을 재조명해 보려 한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은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격 신장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다. 앞선 두 차례의 올림픽(80년 모스크바, 84년 LA)은 동·서 진영 간 냉전과 이념 대립으로 인해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졌다. 역설적이지만 분단된 한반도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88년 동·서가 모두 참여하는 온전한 올림픽이 열리게 됐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북방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그동안 외교 관계가 없어서 접촉이 어려웠던 공산권 국가들의 주요 지도자급 인사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직접 목도하고 체험했다. 그에 따른 파급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러한 주변 정세 변화를 정확히 인식한 노 전 대통령은 남북 관계와 북방정책을 아우르는 특별 선언 작업을 박철언 당시 정책보좌관에게 지시했고, 드디어 1988년 ‘7·7선언’으로 불린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국과 수교하길 내심 원했던 공산권 국가들로서는 향후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7·7선언이 발표되면서 남북관계가 대결이 아닌 협력을 위한 동반자 관계로 규정하고, 남과 북의 주요 우방국 간 교차승인 정책이 포함됐다. 이 선언 덕분에 이들 공산 국가들의 의구심이 일거에 해소되고 헝가리를 필두로 동유럽 공산 국가들의 수교 러시가 잇따르게 됐다. 7·7선언은 타이밍도 좋았고 혜안이 담긴 ‘신의 한 수’였다.

노 전 대통령은 북방정책의 목표를 공산권과의 수교에만 한정하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에까지 두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제대로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모스크바·베이징을 통해 평양을 움직여보자”는 취지의 발언을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의 북방정책이 힘을 발휘할수록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됐다.

무엇보다도 1990년 소련과의 수교와 뒤이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 와중에 우리 외교의 숙원이던 역사적 유엔 가입이 1991년 9월 17일에 이뤄지게 됐다. 한국의 유엔 가입을 저지할 수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결국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엔 가입에 결정적인 변수는 한국이 단독으로 가입안을 제출할 때 과연 소련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거냐는 것이었다.

소련은 한국과 수교를 했음에도 우리의 유엔 가입 문제에서는 공식적으로 남북이 원만하게 협의해 공동으로 가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제주도에서 1991년 4월 열린 한·소 정상회담 직전 이상옥 당시 외무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에게 한국의 유엔 가입안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직접 문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제기하자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은 의례적이 아닌 직설적인 화법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유엔 가입 문제에 더욱더 확신을 갖고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성공적인 북방정책의 추진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인해 남북 관계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관계사에 기념비적인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지게 된다. 북방정책으로 인해 대부분의 공산 국가들이 한국과 수교하게 되자 북한으로서도 외교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공세적인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마침 유엔 가입으로 평화 애호국의 일원이라는 외양을 갖추게 된 북한은 남북 관계를 진전시킴으로써 서방권과의 수교 명분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다. 당시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북한은 서방과의 수교 명분으로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을 착안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답보 상태에 있던 남북기본합의서 논의에 활로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이후 북한의 태도 변화에 기인한다. 남북기본합의서의 각 조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측 입장이 상당히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물을 얻게 된 데에는 국가 지도자로서 노 전 대통령의 남다른 통찰력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7·7선언의 후속 조치로 노 전 대통령은 통일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수시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방향과 지침을 내렸으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담당 비서관이 종합보고를 하도록 하고 중요사항을 직접 메모했다. 지금도 그때 진지하게 보고받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안보 분야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빛나는 업적을 많이 남겼다. 한·미 동맹 관계를 돈독히 했음은 물론이고,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전술 핵무기 철수 방침을 활용해 1991년 11월 8일 ‘한반도 핵 부재 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북한이 1992년 1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이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 안전조치 협정을 미뤄오던 북한이 1992년 4월 협정을 비준해 국제 핵 사찰을 받게된 데도 노태우 정부의 많은 기여가 있었다.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의 채택과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한 끈질긴 정부의 노력이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최초의 IAEA 사찰이 성사되도록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룬 외교·안보 분야 업적의 참다운 가치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면밀히 읽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주변 정세를 조성해 나간 데 있다고 본다. 소련·중국 등 공산권과의 수교와 유엔 가입을 통해 우리 외교를 전방위 외교 체제로 끌어 올렸다. 우리의 경제 활동 영역을 넓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 데에는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외교·안보 업적이 커다란 밑거름이 되고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국제 정세는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핵 무장과 핵 고도화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그 어느 때보다 국가 지도자의 외교·안보 역량 발휘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공허해 보이고 국민의 기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미 동맹은 헝클어져 있고, 이웃인 일본과는 불화가 봉합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는 저자세 외교로 논란이 됐다.

그 와중에 북한은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면서 한국 정부를 조롱하며 조종하려는 듯하다. 내년 3월 새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자들의 정책 슬로건이 국내 문제에 치중해 있고 외교·안보 문제는 무지하고 무관심한 것 같아 안타깝다.

외교·안보는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특히 미·중 패권 대결이 유동적인 상황 속에서 미숙한 대외 정세 판단은 국가적 재앙으로 직결될 수 있다. 공산권의 도미노 붕괴라는 국제 질서 급변 와중에 지혜롭게 대처해 국익을 키웠던 노 전 대통령의 혜안과 통찰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으면 좋겠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시기에 노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애통한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내치 논란과는 별개로 고인의 외교·안보 분야 업적을 기억하고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고인이 남긴 외교·안보 분야 업적이 빛바래지 않고 우리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길 기원하며, 고인의 영면과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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