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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레오는 레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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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30대가 된 레오는 수염을 길렀다. 대포알 같은 스파이크는 20대 시절같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30대가 된 레오는 수염을 길렀다. 대포알 같은 스파이크는 20대 시절같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6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쿠바 폭격기’ 레오(31·OK금융그룹)가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레오는 역시 레오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남자배구 OK금융그룹은 2020~21시즌을 마친 뒤 선수단을 재편하는 리빌딩을 계획했다. 주전 세터 이민규와 간판 공격수 송명근이 나란히 입대했기 때문이다. 살림꾼이었던 심경섭도 팀을 떠나는 등 전력 손실이 컸다. 당장 우승을 노리는 게 아닌 미래 전력을 만들어가는 편이 나아 보였다.

하지만 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과 구단 스태프는 생각을 바꿨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OK금융그룹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레오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레오는 V리그 최고 외국인 선수 중 하나다. 2012~13시즌부터 3년 동안 삼성화재에서 뛰며 두 번 우승했다. 3년 연속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다. 지치지 않고 뛰어올라 블로킹 위에서 스파이크를 때리는 모습은 상대팀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키(2m7㎝)가 큰 데도 몸무게가 80~90㎏에 불과했던 깡마른 쿠바 청년은 ‘코리안 드림’을 이룬 뒤 유럽과 중동 등에서 뛰었다.

이번 트라이아웃에서 레오는 모든 구단이 1순위로 생각한 선수였다. 다만 30대 나이가 되면서 체중이 100㎏를 넘어 걱정이었다. 예전 같은 점프력과 체력을 보여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레오는 복귀전인 현대캐피탈과 경기에서부터 존재감을 발휘했다. 56.1%의 높은 공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35점을 퍼부었다.

레오의 장점은 서브 리시브에 참여하는 레프트라는 것이다. 다른 팀 외국인 선수들의 포지션이 공격만 전담하는 라이트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레오의 팀 기여도가 높지만, 상대팀이 레오에게 집중적으로 서브를 넣는 건 부담이었다. 우리카드전이 그랬다. 하지만 레오는 서브 21개를 받으면서도 양 팀 통틀어 최다인 38점을 올렸다. 26일 KB손해보험전에서도 31점을 올려 지난해 득점왕 케이타와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개인기록도 화려하다. 26일 기준으로 레오는 득점 2위(104점), 공격종합 4위(54.07%), 후위공격 2위(61.90%), 서브 2위(세트당 0.692개)에 올랐다. 젊은 외국인 선수들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은 OK금융그룹에 입단한 것도 레오에겐 행운이었다. 석진욱 감독은 선수 시절 레오와 같이 뛰었다. 둘은 단단한 신뢰를 기반으로 허심탄회하게 소통한다. 남균탁 통역원과 오정대 트레이너도 삼성화재에서 함께 지냈다. 한국에 복귀 소감을 묻자 “부대찌개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다”며 웃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

올 시즌 다크호스로 꼽힌 OK금융그룹도 순항하고 있다. 개막전에선 졌지만 2연승을 달리며 3위(2승 1패·승점 5)에 올랐다. 조재성과 차지환 등 공격력이 좋은 선수들이 레오를 돕고 있다. OK금융그룹 관계자는 “처음 왔을 때부터 레오가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다. 구단에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프로 생활을 오래 하면서 성숙해진 느낌”이라고 귀띔했다. 레오는 “우리 팀 선수들이 어리다. 내가 한 경험들을 많이 전해주려 한다”고 했다. 곧 쿠바에 있는 그의 어머니와 아들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레오에게 남은 과제는 두 가지다. 시즌 끝까지 폭발력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세터 곽명우와 호흡을 더 잘 맞추는 것이다. 두 가지 목표를 위해 레오는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하고, 곽명우와 자주 대화한다. 레오가 밝힌 올 시즌 목표 ‘캄페오니스(campeones·스페인어로 챔피언)’는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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