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로 돌아온 전태일, 그의 꿈이 지금 청년들의 꿈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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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태일 열사 51주기에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선보이는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극중 태일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 캐릭터와 함께 섰다. [사진 명필름]

전태일 열사 51주기에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선보이는 명필름 심재명 대표가 극중 태일과 어머니 이소선 여사 캐릭터와 함께 섰다. [사진 명필름]

토종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 사상 최고 220만 흥행을 거둔 제작사 명필름이 10년 만에 새 애니를 들고 온다. 오는 12월 1일 개봉하는 ‘태일이’(감독 홍준표)는 1970년 서울 평화시장에서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22살 청년 전태일(1948~1970)의 자취를 새긴 작품이다. 그의 삶과 시대상을 어린이 눈높이로 그린 만화가 최호철의 동명 원작을 토대로 배우 장동윤·염혜란·진선규·권해효 등이 목소리 출연했다.

일반 시민이 제작에 투자한 것도 화제였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1억원 모금에 1만명이 넘게 참여했다. 마지막 엔딩 이후 참여 시민들의 이름이 9분간 화면을 꽉 채우며 흐른다.

“자기 몸에 불을 붙여서 노동환경을 바꿔보려 한 전태일의 모습이 고단한 삶을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죠. 고(故) 김용균·이선호씨, 최근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망까지 지금의 20대도 별로 나아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25일 화상으로 만난 명필름 심재명(58) 대표는 ‘태일이’가 현시대에 주는 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태일이’는 ‘마당을 나온 암탉’ 직후부터 추진한 프로젝트다. “‘마당을 나온 암탉’도 대기업 투자가 어려웠는데 ‘태일이’는 영화 주제상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는 그는 “순제작비가 30억원, 마케팅 비용이 15억 정도인데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작에 선정돼 7억원을 받고 전태일 재단 등 공적 기관의 지원에 더해 1만여명의 일반 시민이 1억7000만원 후원(크라우드 펀딩)해주셨다”고 말했다. 명필름은 1970인의 제작위원 신청도 받고 있다.

평화시장 재단사 보조로 일하게 된 태일은 굶주리고 공장 먼지 탓에 폐병에 걸리기 일쑤인 여공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사진 명필름]

평화시장 재단사 보조로 일하게 된 태일은 굶주리고 공장 먼지 탓에 폐병에 걸리기 일쑤인 여공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사진 명필름]

‘마당을 나온 암탉’이 잘됐는데도 투자가 어렵나.
“애니 시장의 규모가 작다. 극장용 장편 애니가 오리지널 대본으로 만들어지는 게 드물고 실제 성과 내기도 어렵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이례적이었다. 이듬해 EBS가 만든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3D’(2012)가 100만 관객을 넘은 정도다. ‘태일이’는 투자자 입장에선 선택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태일이’를 애니로 만든 까닭은.
“전태일은 한국 현대사에서, 노동운동에서 상징적 인물이다. 1960~1970년대를 실사로 구현하면 100억원도 모자란다. 애니가 제작비 면에서 유리하다. 또 최호철 작가의 원작 만화에서 가능성을 봤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청년을 그렸으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 ‘너의 이름은.’ 같은 청춘물로서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실사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보다 더 보편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겠다, 판단했다.”
태일의 캐릭터도 친근한 청년 이미지다.
“초반 캐릭터 디자인은 더 리얼한 톤으로 갔다가 요즘 청소년들한테 ‘올드’할 것 같아 바꿔나갔다. 배우 목소리를 선 녹음한 후 그림을 그리는 할리우드 애니 방식을 택해서 배우의 얼굴하고 비슷하게 되기도 했다.”

데뷔 전 강도를 잡는 선행으로 알려진 장동윤이 태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그린 ‘아이 캔 스피크’에 출연했던 염혜란이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목소리 연기했다. 심 대표는 “염혜란씨는 연기력도 탁월하지만 사회 현안에도 관심이 많다. 장동윤도 전태일에 평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배우들의 이미지를 고려한 캐스팅이라 밝혔다.

극 중 태일은 세상에 존재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법,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목소리를 내며 비극을 맞는다. 심 대표는 “엄혹한 시절이었다”면서도 “지금은 노동환경 차별이 훨씬 더 교묘하고 악랄해졌다”며 배달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었다. “‘태일이’는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명필름은 ‘공동경비구역 JSA’ ‘아이 캔 스피크’ ‘카트’ 등 사회문제를 담은 대중영화를 꾸준히 선보였다. 심 대표는 “‘태일이’의 삶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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