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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는 아이, 혁신가 될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18일 오후 대전 자택 서재에서 책으로 사람인(人)을 만들어 포즈를 취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재승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18일 오후 대전 자택 서재에서 책으로 사람인(人)을 만들어 포즈를 취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그저 강연을 하나 했을 뿐인데, 뜻밖의 경험이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그의 손을 잡았고, 머리카락을 뜯어갔다. 왜 아이들이 이렇게 하는 걸까. 이 우연한 경험이 그의 10월을 바꿔놨다. 정재승(49·사진)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17~18년 전 한 지방 소도시 도서관에 강연을 나갔다. 그런데 반응이 뜻밖이었다.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왔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300~400명. 그냥 ‘인기’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이 아무도 과학자를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지방에만 가도 아이들이 과학자를 보기 힘들거든요. 과학자를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과학을 꿈꿀 수 있을까요? 너무 충격적이기도 했고 뭉클했어요.”

정 교수는 그 길로 ‘10월의 하늘’이라는 행사를 열고 있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하루, 전국 50개 도서관에서 100명의 과학자가 강연 기부를 한다. 올해로 12년째다. 그는 “우연히 트위터에 이런 경험이 있다고 글을 올렸더니 300명의 과학자가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년의 364일은 재능을 세상에 청구하되, 하루만 재능 기부를 소풍 가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강연하자’는 취지에 화답한 사람들로 매년 기적처럼 10월의 마지막 하루, 전국에서 과학자들의 강연이 이뤄진다. 홈페이지에서 강연 소식을 알 수 있다.

‘10월의 하늘’이란 이름은 영화에서 따왔다. “탄광촌에 있던 꼬마 아이들이 스푸트니크호 발사를 TV에서 보고 로켓을 쏘아 올리는 꿈을 갖게 되거든요. 매번 실패하지만 나중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사이언티스트가 됩니다. 결국 어린 시절에 우주와 자연,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껴봤는가가 중요한 인류의 문제,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애쓰는 일로 이어진다는 얘기잖아요.”

그는 ‘10월의 하늘’을 매년 열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이 ‘책을 계속 쓰는 이유’라고도 했다. 과학자들의 삶을 접하게 된 아이들이 과학을 꿈꾸도록 하게 하는 것,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란 얘기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외에 아이들을 위한 과학서적을 꾸준히 내고 있다. 지난 2019년 내놓은 아이용 『정재승의 인간탐구 보고서』는 최근 7권까지 나왔다. 『정재승의 인류탐구 보고서』도 지난 7월 내놨다.

딸 셋을 둔 그는 부모의 뇌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특히 “말 잘 듣는 아이는 혁신가가 될 수 없다”며 부모의 뇌를 설명했다. “부모의 뇌가 아이들에 관해 가장 중요하게 두는 가치는 ‘생존과 안전’으로, 도전을 격려하고 위험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해보라고 조언하는 부모가 드물어요. 때론 부모의 조언이 아이들의 꿈을 제한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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