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전하며 “(문 대통령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차려졌다. 특실이 아닌 일반실이다. 노태우 정부 마지막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를 지낸 최각규 전 부총리는 “노 전 대통령은 ‘보통사람’의 철학을 평생 지키셨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고인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이 조문객을 맞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김옥숙 여사는 건강이 안 좋아 28일께 오실 듯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사의 조문도 잇따랐다. 문 대통령은 직접 빈소를 찾진 않았지만 대신 청와대에선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이 빈소를 찾았다.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는 오후 9시쯤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고인에 대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고 이젠 역사에 기록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방명록에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구했던 마음과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12·12 쿠데타와 5·18 무력 진압은 “중대한 과오”였다면서도 “생애를 두고 사과하고 자제분을 통해 5·18 유족께 용서를 빈 건 그 나름대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고인의 ‘공’을 강조했다. 이날 오후 빈소를 찾은 김기현 원내대표는 “군사 정권부터 국민 정권으로 이어지는 도중의 중요한 교량 역할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싹틔우게 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북방정책을 시행하면서 대북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재임 중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조직폭력배를 전부 소탕한 큰 업적이 있다”고 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6월 항쟁에 이은 6·29선언으로 협의·협약에 의한 민주화로 갈 수 있던 것은 전 세계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일부러 인색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홍구·노재봉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철언 전 정무·체육청소년부 장관 등 노태우 정부 당시 주요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꽤 오랜 시간 고인의 곁을 지켰다. 노태우 정부 때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시간 정도 빈소에 머물다 나서면서 “노 전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가 빠르게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상당한 기반을 갖추게 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고인의 사위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예정된 미국 출장 일정을 늦추고 이날 오전 10시28분 빈소를 찾아 10분여간 조문했다. 이혼 소송 중인 부인 노소영 관장과 세 자녀가 그를 맞았다. 최 회장은 “마음이 상당히 아프다”며 “아무쪼록 잘 영면하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재계도 추모 분위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오후에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없이 빈소를 떠났다.
유족 측은 장지와 관련해 고인의 뜻을 받들어 통일동산이 있는 파주에 모시는 것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긍정적 의견을 밝힌 만큼 파주가 장지로 굳어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