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주한 중국대사 “한·중 수교는 노태우의 선견지명”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0:02

업데이트 2021.10.2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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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팅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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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팅옌(張庭延·85·사진) 초대 주한 중국대사(1992~98년 재임)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에 “선견지명을 지닌, 지울 수 없는 큰 공을 세운 분”이라며 애도했다.

1992년 한·중 수교 협상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사(亞洲司) 부국장으로 교섭 실무를 담당했던 장 대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92년 9월 15일 노 대통령께 직접 신임장을 제정했다. 이후 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동행하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말했다. 장 대사는 “(신임장 제정)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났다. 모두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영원히 잊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중 수교와 관계 발전은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한·중 수교의 산파역을 맡았던 장 대사는 노 전 대통령의 ‘북방 외교’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주한 대사를 마친 뒤 출판한 회고록 『출사한국(出使韓國)』에서 “노 대통령은 취임 후 국제·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깊이 살핀 뒤 한반도의 오랜 평화와 최종적으로 통일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 ‘북방 정책’을 제시하고 중국·소련·동유럽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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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사는 수교에 앞서 고인을 직접 만났다. 장 대사는 또 다른 저서 『지난 추억을 찾아서(往事雜憶)』에서 “처음 노태우 대통령을 만난 것은 한·중 수교 전인 1991년 11월 첸치천(錢其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수행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제3차 장관급 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중국 외교부장의 서울 방문은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누구도 노태우 대통령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장 대사는 한·중 수교 교섭 과정에서 고인의 공을 강조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수교 담판을 매우 중시해 사안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직접 묻고 (이상옥) 외교부 장관을 통해 직접 지시했다”고 기록했다.

장 대사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인 2000년 중국 산둥(山東)의 노씨 시조묘를 찾은 사연을 소개하며 “중국에 특별한 감정을 품었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장 대사는 98년 이임 직전 노 전 대통령이 마련한 환송연 참석을 위해 연희동 자택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중국을 다시 방문하길 희망했고, 장 대사는 귀임 후부터 그의 방중 준비에 들어갔다. 장 대사는 우선 산둥성의 도움을 받아 역사 자료부터 찾았다. 노씨의 원류가 강(姜)씨의 분파임을 확인했다. 강태공(姜太公)의 11세손인 강희(姜希)가 산둥 루좡(盧庄)에 정착한 뒤 성을 노씨로 바꾼 사실을 확인했다. 다시 1000년여가 흐른 뒤 노씨의 후예가 한국의 신라시대에 광주(광역시)로 이주했다는 것도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의 방중은 2000년 6월 7일 성사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베이징·충칭(重慶)·구이린(桂林)·시안(西安)을 거쳐 산둥성 지난(濟南) 인근 노씨 집성촌 루좡을 방문해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이 방문하자 마을 사람들은 길가에 줄지어 서서 성대한 환영 집회를 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노씨의 후손으로 이곳을 찾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한·중 수교에 공헌한 것이 일생 중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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