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노태우 사죄 유언, 화해·통합의 빈소 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00:02

업데이트 2021.10.2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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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씨(오른쪽)가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인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가운데)과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을 위로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오는 30일 거행된다. 장례위원장은 김부겸 국무총리가 맡는다. 사진공동취재단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씨(오른쪽)가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인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가운데)과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을 위로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오는 30일 거행된다. 장례위원장은 김부겸 국무총리가 맡는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27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서 자주 들린 문구다. 이날 빈소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빛과 그림자가 있고, 그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한 점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과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선제로 선출된 후 북방정책 등 공헌이 있다”고 말했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다가 민주화운동 진압 후 사형 선고를 받았던 박남선(67)씨는 이날 직접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재헌씨는 “(고인이 직접 사과하지 못한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숙였고, 박씨는 “편히 영면하셨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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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측에 따르면 두 사람은 구면으로, 지난해 5월 29일 재헌씨가 광주를 찾았을 때 박씨가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조문 후 박씨는 “5·18항쟁 41년이 됐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이 희생자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은 아드님을 통해 수차례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이나 계층, 정치 세력이 이제는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해 오늘을 기점으로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씨의 바람처럼 적어도 이날 빈소 풍경은 사과와 용서, 화해에 가까웠다. 재헌씨는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고인의 생전 유지에 대해 “국가에 대해 잘했던 일, 못했던 일 다 본인의 무한책임이라 생각하고 계셨다”며 “특히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 그 이후의 재임 시절 일어났던 여러 일에 대해 본인의 책임과 과오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조문하진 않았지만,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 슬픔을 당한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뜻을 전했다. 또 일부 반대 목소리 속에서도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날 저녁 빈소를 찾은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가장’과 관련해 “오늘도 광주에서 5월 단체 등이 유감을 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 현대사가 거쳤던 굴곡에 대해서 이것(국가장)도 한 단계를 넘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1노3김 땐 상대 진영 지도자 의견 경청…현 정치권, 응징서 벗어나 대화로 풀어야”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공(功)과 과(過)를 평가하고 화해와 화합으로 나가자’는 분위기가 움트게 된 것은 먼저 고인과 유족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서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내치지 않고 큰 틀에서 받아들인 광주와 진보진영의 포용이 더해졌다. 여기에 진영 논리를 떠나 국가를 바라보고 펼친 ‘노태우 정책’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한국공법학회장으로 문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위 부위원장을 지낸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평가는 이렇다.

“군부 출신의 우파임에도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통일에 적극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좌우 정권에 관계없이 국가 단위에서 추진해야 할 과제에 대해 고인의 치적이 있다.”

좌파 이론가로 활동해 온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는 “토지공개념을 처음 말한 이가 고인으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문 대통령 할 것 없이 노태우 정부 부동산 정책의 100분의 1도 못 따라갔다”며 “가장 진보적인 경제 정책을 편 이가 고인”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보여준 경청의 리더십은 현재 정치권과 대비된다는 분석도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특히 고인의 남북 문제 접근은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견을 들어서 풀어냈던 것으로, 진영 논리에 집착해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지금과 달랐다”고 말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런 소회를 밝혔다.

“교훈을 갖되, 잊지는 말되, 되갚으려거나 응징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신이 사람에게 정의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르라고 한 적은 없다. 이번을 계기로 그런 자세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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