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실에 차린 노태우 빈소…"'보통사람' 철학 끝까지 지켰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27 18:34

업데이트 2021.10.27 21:49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 왼쪽엔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화환이 오른쪽에는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 왼쪽엔 문재인 대통령의 근조화환이 오른쪽에는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은 출마 때 구호처럼 ‘보통사람’의 철학을 평생 지키셨어요.”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최각규(88) 전 부총리가 27일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노 전 대통령 조문을 마친 그는 복받친 모습이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오전 10시 무렵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오늘날 우리가 빠르게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상당한 기반을 갖추게 하신 분”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전 정무·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비롯해 노재봉ㆍ이홍구 전 총리,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노태우 정부 당시 주요 각료들도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제법 오랜 시간 고인의 곁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차려졌다. 3층에 위치한 특실이 아닌 한층 아래 일반실이다.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한 한 인사는 “빈소 접객실이 생각보다 너무 좁았다”며 “유족들이 다른 장례식장의 특실을 고려했을 수도 있을 텐데, ‘보통사람’이란 고인의 철학을 마지막까지 받든 모습 같다”고 말했다.

잇따른 정치권 조문 행렬

이날 노 전 대통령 빈소엔 정치권 인사의 조문도 잇따랐다. 청와대에선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이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다. 유 실장은 “대통령께서 대신 전해달라는 메시지를 유가족께 전해드렸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상주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9시쯤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가족 등과 인사를 나눴다. 조문 뒤 김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고인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고 이젠 역사에 기록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 총리는 노 전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데 대해선 “고인이 과거 12ㆍ12라든가 5ㆍ18에 관련된 과오 자체는 이젠 뒤엎을 순 없다”면서도 “그동안 유족 측이 고인께서 진 여러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수차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준 것, 이런 부분들은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저희들의 판단 근거였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여야 정치인들은 공통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함께 언급했다. 오후 2시 50분쯤 빈소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조문 뒤 기자들과 만나 “(조문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한 것이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며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러나 결코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한 점을 저는 평가한다. 가시는 길이니까 같이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 빈소 방명록에 별도의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

이어 오후 5시쯤 조문한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방명록에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구했던 마음과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여권 정치인 중에선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상희 부의장,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둘째)가 27일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둘째)가 27일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의 ‘공’을 강조했다.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준석 대표는 조문 뒤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은 12ㆍ12 반란 등에 참여한 큰 ‘과’가 있다”면서도 “전두환 대통령 일가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의미로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 현대 사회에서 큰 이정표를 남긴 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후에 빈소를 찾은 김기현 원내대표는 “고인의 평가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라며 “군사정권부터 국민 정권으로 이어지는 도중의 중요한 교량 역할을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를 싹틔우게 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강원 지역 대선 경선 토론회에 참가한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도 이날 오후 늦게 빈소를 찾았다.

조문 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편안히 영면에 드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은 “노 전 대통령께선 북방정책을 시행하면서 대북정책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재임 중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조직폭력배를 전부 소탕한 큰 업적이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의 ‘과’는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공통된 질문에 각각 “이 자리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유언에 모든 걸 용서해 달라고 밝혔고, 또 자제분들도 여러 차례 국민께 사과 발언을 했기 때문에 그걸로 국민들께서 평가하시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6월 항쟁에 이은 6ㆍ29선언으로 협의ㆍ협약에 의한 민주화로 갈 수 있던 것은 전 세계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일부러 인색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